마세라티 그레칼레와 함께한 하루
“지금 주행 중인 거 맞아요?”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Maserati Grecale Trofeo) 운전석에 앉아 동승한 드라이빙 인스트럭터에게 물었다. 분명 달리고 있는데 이리도 고요하게 바닥에 착 붙어서 달릴 수 있는 건지. 전기차도, 스포츠 모델도 아닌 중형 SUV인데. 그렇게 반듯한 도시 도쿄에서 마세라티 주행 경험이 시작됐다. 우리가 도쿄로 넘어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세라티 아태 본사(APAC)가 있고,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이 활발히 활동하는 도쿄는 마세라티의 인기가 대단한 도시이기 때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넘어간 하네다 공항에서 곧바로 향한 쓰키지 혼간지 주차장에는 그레칼레 GT와 트로페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군밤처럼 명확한 갈색이지만 무광이라 더 고급스러운 GT, 가을하늘처럼 청명한 컬러에 젊은 감각의 트로페오. 잘했다며 ‘팡팡’ 쳐주고 싶은 매끄럽고 둥근 후면, 반면 삼지창을 형상화한 마세라티 엠블럼이 장착된 그릴 디테일과 전면부는 날카롭고 카리스마가 있다. 내부는 GT와 그레칼레의 차량 색상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GT 모델은 베이지 톤의 중후함을, 트로페오 모델은 검정 가죽에 새빨간 스티치로 섹시미를 선사했다. 마세라티 차량은 최고급 천연 가죽에 수작업 스티치로 마감되며, 카본 파이버나 우드 같은 소재에서는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이전에는 마세라티의 아날로그적 실내디자인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레칼레 실내는 꽤 미래지향적이었다. 실내에 장착된 두 개의 디스플레이는 운전자를 위한 인체공학적 조작을 돕는데, 간단한 제스처로도 조명과 시트 · 공조 · 시계 등의 설정 제어가 가능하다.
첫날의 미션은 도쿄 긴자에서 치바 현까지 두 차량으로 왕복하기. 그레칼레 트로페오를 타고 출발해 돌아올 땐 GT로 갈아탔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몇 미터만 직접 운전해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지만, 그레칼레는 상황에 따라 너무 다른 감상을 선사했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길에는 부드럽고 순조로운 인상, 하지만 도심을 빠져나가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날렵해졌다. 운전자와 뒷좌석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는지 아이스링크에서 달리듯 부드러웠다. “지금 주행 중인 거 맞아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던 바로 그 순간이다. 한편 본격적으로 울퉁불퉁한 노면에 닿자마자 또 다른 신선함이 다가왔다. 크고 작은 요철 위를 지날 때, 꽤 심각하게 팬 도로를 지날 때 발생하는 어떤 충격에도 이 차는 당황하지 않았다. 몸을 잡아주지 않아 앞뒤 좌우로 튕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었다. ‘여자들은 작은 차를 좋아한다’는 맞는 말인 동시에 옛말이기도 하다. 작은 차는 운전하기 편하고, 보기에도 귀엽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자동차 중에서 여자들의 차로 특정된 차는 없고, 여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차도 없다. SUV는 커서 주차하기 어렵고 좁은 구역을 지날 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만, 거대한 차를 당당히 컨트롤하는 자신감,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며 차와 소통할 때의 뿌듯함, 나를 안전하게 모셔주는 안정감. 이 모든 감각을 마세라티 그레칼레와 함께 느꼈다.
둘째 날은 일본 도쿄에 온 궁극적 이유가 밝혀지는 날.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 회장 신이치 에코와의 만남과 ‘그란투리스모’가 새롭게 공개되는 아시아 프리미어 행사가 진행됐다. 신이치 에코 회장은 30년 전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 재팬을 창립했다. 전국에 수백 명이 활동하는 클럽으로, 마세라티 소식을 전하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한다. 회장은 마세라티의 역사를 담은 차량 컬렉션 책도 쓸 만큼 마세라티를 아낀다. 오랜 세월의 흔적 없이 깔끔하게 유지된 3500 GT를 보유한 그는 “마세라티를 타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는 나의 모습이 확실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마세라티를 활용한다고 생각한다”며 마세라티를 선호하는 궁극적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인상적인 만남을 머금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란투리스모는 역사적으로 ‘그란투리스모’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두 번째 차량이라고 한다. 낮게 자리 잡은 그릴과 높은 헤드라이트는 MC20의 전면과 비슷하다. 그란투리스모는 레이싱 차량과 일반 도로 차량을 통합한 차다. 그러니까 트랙에서 열띤 레이스를 즐긴 후 그대로 집으로 타고 올 수 있다는 말. 차량 그릴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마세라티의 F1 레이스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날렵함과 유려한 볼륨감을 자랑한다. 아시아 프리미어 행사장에서는 전 세계에 75대밖에 없는 그란투리스모 A6 1500의 75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에디션이 공개됐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어제는 그레칼레, 오늘은 그란투리스모. 만일 두 차량 중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걸 고를까?’ 첫 차 구매를 앞두고 고민이 깊어진 나는 상상을 못 멈췄다. 신이치 에코 회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첫 차를 골라야 하는데 기준을 모르겠어요”라는 내 질문에 그가 말했다 . “실제로 차를 만져보세요. 냄새도 맡아보시고요. 그게 마음에 들고 좋으면, 그것은 차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냄새와 촉감으로 직접 느껴봐요.”다시 한번 생각에 잠긴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