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책보다는..." 속초 독립서점 운영자의 바람
[김민준 기자]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몰려들고 지방에 있던 것들도 끌어당기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지방소멸 역시 모두의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와중에 다른 방식의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당연히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 서울이 아니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당연한 삶'에 질문하는 이들에게 주목하던 와중, 속초의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스테이를 알게 됐다. 몇 개의 언론 기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 중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부부가 NGO 활동가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이들이 어떤 활동을 했고 그것이 북스테이 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궁금했는데,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속초 <완벽한 날들>로 찾아갔다. 지난 12일 오전, 1층 북카페에서 최세연씨를 만났다.
▲ 속초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 전경 사진 |
ⓒ ⓒ 최세연 |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그냥 '완벽한 날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최세연입니다'라고 보통 소개합니다. 속초에서 책방을 하는 건 지금 7년이 조금 넘었네요. 해가 넘어갔으니 이제 만 8년이 됐고요."
- 북스테이의 이름을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 동명의 산문집에서 가져오셨다고요. 어쩌다가 그 이름을 선택하게 됐는지, 어느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할 것 같아요.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주로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2층은 숙소잖아요. 이 공간의 성격을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이 공간을 구성할 때는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책이 판매되는 장소보다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표방했어요. 그래서 북토크나 강연, 낭독회, 전시회 같은 걸 많이 하고 있거든요.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서 자유로운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라는 책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사람들이 이 공간을 시간과 공간이 같이 공존하는 곳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에 연락해서 허락을 받고 그 이름을 쓰게 됐습니다."
- NGO 활동가 출신이라는 점이 독특한 이력이에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천의 '아시아인권문화연대'라는 단체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했습니다. 부천은 이주의 역사가 오래된 동네인데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도 전인 1990년대에 산업연수생 제도로 외국인을 받아서 고용했던 공장들이 많았죠.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주 여성들이 정착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성장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들이 생길 무렵에 제가 가서 그런 다양한 이슈들에 대처하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아내는 청소년 단체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속초로 내려왔죠."
- 그렇다면 활동을 하시다가 결국 활동을 접으신 건데요, 특정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사실 속초는 제 고향인데요, 단체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대학원에서 NGO에 관해 공부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속초에 내려온 건 고향에서 가족의 일을 돕게 돼서였고, 그 시점에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권보다는 소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떠나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내려오게 됐네요."
- 북스테이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궁금해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가 2008년~2009년 그때였는데 그즈음에 서울에 이런 식의 서점들이 몇 개 있었어요. 길담 서원, 책방 이음, 레드북스가 대표적이죠. 그 공간의 매력을 느껴서 그걸 소재로 논문을 쓰던 시기였어요. 그곳에서는 늘 세미나나 모임, 저자 초청 북토크 등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런 지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활동가로 살다가 그만두고 집안일을 돕던 시기에 아내가 그런 공간을 꾸리는 일을 지금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 활동가로 살다가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완벽한 날들> 내부 전경 |
ⓒ ⓒ 최세연 |
- 그러면 활동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렇죠. 현장에 몸담고 있었을 때 쌓았던 감 같은 것들도 있고, 활동하면서 느꼈던 한계나 저 스스로 느꼈던 문제점들도 되돌아보죠. 하고자 하는 건 비슷하지만 방식을 바꾸고 싶을 때, 과거의 경험이 토대가 되니까 가능한 것 같네요. 이 공간이 그저 커피나 빵을 파는 공간일 뿐이라면 그런 경험들이 별것 아니겠지만, 그때 당시의 저의 경력이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한편으로는 지금은 장사를 하는 거기도 하잖아요. 내 사업을 하는 차원으로 넘어가면 내가 해봤던 일이 아닌 일을 해본다는 점에서 고민이 되는 점은 없었나요?
"이미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방식으로 참여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차원인 건데, 물론 저는 그렇게 딱 구분을 하고 있진 않아요.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어야 하고, 그렇지만 돈만 벌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아예 발길을 끊고 외면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일에 적극적인 것 같아요. 어쨌든 고향이다 보니 속초라는 공간에 애정이 더 있으시겠네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속초에 정착하게 되지 않았더라도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목소리를 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제 세대의 활동가들이 많이 줄고 있고, 특히 지방은 더 줄고 있거든요. 자기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두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시도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요. 지방의 경우 특히 그런 분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 옆에서 같이 하고 배워 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그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부천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40대 초반의 분들이 허리 세대를 맡고 있었는데, 저희 세대로 넘어오면서 운동의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래서 속초로 이사 왔을 때도 지역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분들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이전부터 같이 힘을 보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부채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본인의 생계도 뒤로 하고 열심히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손을 보태고자 했던 겁니다."
점차 명확해지는 공간의 색깔, 와야 할 이유가 분명한 이들이 오는 게 좋아
- SNS에 보이는 문구를 보면 '뚝심'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유명인사나 작가에 기대거나 유행을 좇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 있는 책", "큰 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제외", "기득권의 목소리나 베스트셀러를 반복해서 전달하지 않는 것") 분명 유행이나 흐름을 통해서도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요?
"그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주류적인 것이라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니까,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가치를 책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계시고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더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런 책들을 모두 취급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소개하는 것이 서점원인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이슈는 처음 서점 문을 열 때부터 계속 논의되던 이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 비거니즘 관련 책들이 계속 많아지고 있어요. 결국, 잘 팔리는 책보다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책 위주로 같이 읽으려고 하는 거죠."
- 사실 사회적인 발언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업이 활동가라면 자연스러운데, 어쨌거나 소규모 공간과 자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책방 사장'의 정체성으로 '소비자'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걱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특정한 프레임으로 이 공간을 가둬두는 시선에 대해선 우려하진 않으시나요?
"오히려 더 잘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곳에 오는 손님을 먼저 규정을 한 번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곳이 좋은 공간으로 기억될 수는 없고, 또 그런 욕심도 전혀 없거든요. 모든 사람이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사러 여기 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공간을 구성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건 또 아니에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본인의 관심사가 겹쳐서 반가워하는 사람들, 평소에 읽지 못한 분야의 책을 만나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계속 접하고 있거든요. 혹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고 싶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다른 색다른 책을 알게 됐을 수도 있고요. 그런 전반적인 경험들이 이 공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특정한 시선에 갇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꼭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렇게 한 번 규정을 하고 손님들을 만나 보니까 어떻던가요?
"7년의 초반에는 공간의 색깔이 지금만큼 짙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디저트들도 팔고 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것들을 입고해보기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공간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성격도 명확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여기를 와야 할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분들이 찾아 와주시면 저는 너무 좋죠(웃음)."
-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됐는데요, 그런 와중에 작은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방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사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인 건 맞아요. 여기서 독서 모임도 여는데, 저희 모두 '이 모임 안 했으면 이 책 끝까지 안 읽었을 것 같다', '독서 모임 안 했으면 1년에 이만큼 책 안 읽었다' 이러거든요.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동네의 작은 서점이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는 있어요. 결국, 꾸준히 활동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정기구독 서비스도 하는 중입니다. 반응이 좋나요?
"계속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기간이 끝나면 연장하고 또 연장하는 방식으로요. 그런데 사실 책은 취향이잖아요? 드라마도 아무리 누가 재밌다고 한들 다른 사람은 재미가 없을 수 있잖아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소설, 에세이를 골라서 보내드리기도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책도 골고루 큐레이션하다 보니 재미없을 수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 받아서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이 공간이 오래 남았으면 한다면서 책을 사고 공간을 방문하신다고 말씀하기도 해요.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프렌차이즈 카페에 갈 때 '이 카페가 우리 동네에 계속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으로 가진 않잖아요? 여기 오는 분들은 그런 감정을 가져주시니 과분하게 감사드린 마음입니다."
- 책방을 계속 운영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이 궁금해요.
"그냥 열심히, 잘 하려고 노력해요. 책방이라는 공간은 신경을 조금이라도 안 쓰면 티가 많이 나거든요. 주인인 저뿐만 아니라 오시는 분들한테도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구성이 허술하고 신간이 별로 없으면, '이 책방은 지금 서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해요. 사회적인 이슈에 빠르게 대처하는지 아닌지 역시 책방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죠."
- 공간을 열심히, 잘 꾸려 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 강의가 진행 중인 <완벽한 날들> 내부 |
ⓒ ⓒ 최세연 |
- 기획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여기서 지내면서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그때그때 도모해요. 예전에는 다양한 걸 많이 해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진 못하고, 꼭 해야 하는 것들 위주로만 하고 있어요. 지원사업도 지금 한림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만 하고 있어요, 그렇게 지원금을 받으면 대부분 강사료로 드리는데요, 복잡하게 서류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요.
예전에 일할 때는 결과보고할 때 개요부터 줄줄이 다 써야 하고 성과도 명확해야 했거든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원사업을 하거나 단체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기가 어렵잖아요. 지금 기획을 할 때는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지를 먼저 따져요, 인문학 서적을 주로 다루는 공간에서 정량적인 평가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 이 공간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프랑스의 셰익스피어 같은 서점은 어떤 유명한 작가가 와서 글을 쓴 곳이라거나 하는 등으로 기억이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도 아닐뿐더러, 속초에 이미 유명한 서점들이 많아서 저희가 막 '속초를 대표하는 서점!' 이렇게 홍보하기도 어렵죠(웃음). 거창한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고요, 지역에 소박하게 계속 존재했고, 적은 수의 손님과 모임 참석자들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면 될 것 같아요. 유명하진 않지만 필요한 일을 계속했던 서점으로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 단기적인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다른 서점과 도서관, 관련 기관과 함께 우리가 책으로 지역에서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의논하고 있어요. 올해는 그걸 본격적으로 해나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 보니 좀 더 많이 읽고 싶네요. 독서 모임을 하나 정도만 더 해볼까 싶기도 해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기획해나가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계획이죠(웃음)."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김민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coolboy95)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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