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일 만에…'사법농단' 양승태 47개 혐의 모두 무죄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1심에서 양승태(76)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꼬박 5년이 걸린 재판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26일 양 전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함께 기소된 박병대(67)·고영한(69)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은 각종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모두 47개 범죄 혐의(직권남용·직무유기·공무집행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모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2019년 2월 11일 서울중앙지법에 공소장을 접수하며 시작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재판은 1심 결과가 나오는 데만도 1810일이 걸렸다. 한 때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며 사법행정권 남용 여부에 대한 첫 법적 판단으로 주목받던 재판은 어느새 ‘재판 지연의 교과서’란 비판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판 초기만 해도 적시처리주요 사건으로 지정하고, 주 2회씩 재판을 진행하며 속도를 올렸다. 증인신문 때는 저녁 식사 시간을 넘기며 재판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구속기간(1심 최대 6개월) 내 선고가 힘들어 보이자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 직권 보석 결정하긴 했지만, 이때만 해도 5년 가깝게 재판이 진행될 줄은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검찰 역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취임 후 첫 지시에 따라 ‘특별공판팀’을 설치하며 공판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2020년 1월 양 전 대법원장 폐 절제 수술로 재판이 주춤하고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등 돌발변수가 생기더니, 2021년 2월 법원 인사로 그간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들이 모두 떠나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본격화했다. 재판갱신 절차에만 7개월을 보내면서 그 기간 동안 법정에선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됐다. 검사들도 혐의를 헷갈리거나 엉뚱한 얘기를 해 재판부가 “착오한 것 같다”며 고쳐주는 일도 있었다. 검찰은 그해 6월 특별공판팀을 해체했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소송 지연을 초래하는 피고인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있다”, “이미 증언을 마친 증인을 검사가 다시 신청하거나 우리가 동의한 증거에 검찰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4개월 넘게 진행됐다”며 재판지연의 서로의 탓으로 돌렸다. 재판부를 교체한 사법부 역시도 지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세기의 재판은 결국 지난해 9월 총 290차례 공판(공판준비기일 포함) 끝에야 종결됐다. 지난해 12월 선고가 예정됐다가, 한 차례 연기돼 해를 넘겨 선고했다.
이날 무죄가 선고된 나온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다음달 5일 선고가 예정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외하고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다른 10명의 전·현직 판사들은 그사이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만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각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각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500만원으로 감형됐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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