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 키운 정치권, ‘정치 테러’ 부메랑 우려…“코로나때도 포옹, 대책없다”

김효성 2024. 1. 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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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사건이 벌어진 지 하루가 지난 26일 정치권은 파장으로 들끓었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정치 테러’에 경악하는 동시에 정치권이 부추긴 ‘정치 혐오’가 불러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당혹감도 읽힌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과연 무엇이 자라나는 소년이 국회의원에게 증오가 담긴 폭력을 행사하게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정치가 상대를 증오하고, 잘못된 언어로 국민에게 그 증오를 전파하는 일을 끝내지 않는 한, 이런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 의원이 당한 일은 명백한 정치테러”라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테러에 반대한다. 혐오를 반대하는 국민과 연대를 더 크게 넓혀가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동혁 사무총장, 윤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치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폭력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며 “속히 서로를 적대하는 극단의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 모두가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피의자 A군이 만 15세로 중학교 2학년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받은 듯하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특정인에게 두 번이나 신원을 확인하고 난 뒤 뒤에서 가격한 잔인한 모습에서 봤을 때, 기본적으로 정치혐오와 같은 정서가 깔려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양 극단의 지지층이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과잉 대표된 정치 현실이 이런 문제를 초래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극단적인 정치의 대립 때문 아니겠냐”며 “여야가 갈라져 싸우니, 지지자도 갈라져서 과격하게 싸운다. 그렇다보니 정치혐오감에 의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 여성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혐오 정치를 종식하고 사회적 갈등을 봉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년전부터 일부 정치인이 ‘개딸’ ‘태극기’ 등 극단적인 지지층에 기대면서 상대진영을 몰아세우며 반대급부를 얻는 ‘쉬운 정치’를 해온 것이 정치혐오감을 부추긴 원인”이라며 “송영길 전 대표를 향한 테러 등 부작용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그널이 있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언사가 반복돼다 보니 곯고 곯은 것이 터져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5시18분 서울 강남구에서 만 15세 A군에 머리를 가격당했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관련 CCTV 화면. 뉴스1


그렇다면 해법은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4·10총선이 걱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다수의 유권자를 접촉하게 되는데 폭행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를 구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의장은 YTN라디오에서 “후보 입장에서는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을 부렸던 지난 총선에도 지지자가 와서 악수를 청하거나, 포옹하면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뿌리치겠느냐”라고 했다.

총선 후보는 경호인력이 별도로 붙을 수도 없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경내에서는 경위 등에 의해 국회의원의 안전이 보장되지만, 국회 밖에서는 보호 규정이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안전 확보와 유사 범죄 예방에 전력을 쏟아달라”고 긴급지시하면서 경찰청이 신변강화를 추진하지만, 역부족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60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뒤 쓰러져 있다. 뉴스1


전국 253개 지역구에 나서는 수백명의 후보를 한명한명 보호하기에는 예산과 인력도 부족하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이재명 후보에 대한 근접경호 및 차량 지원 예산은 7억6200만원, 인력은 한 후보당 30여명이었다. 1인당 약 1200만원가량이 소요되는 셈이다. 출마자가 지난 21대 총선 수준에 달한다면 경호인력을 한 명씩만 배치해도 168억원(지역구 1101명, 비례대표 301명)이 소요된다.

선거운동 기간 경찰은 대중집회나 연설현장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보 개인의 개별 선거운동을 어떻게 경찰이 다 보호하겠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인 신변보호를 위해 다수 경찰이 투입되면, 일반 시민을 위한 경찰의 치안유지 기능이 약화할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남은 방법은 정치인 개인이 사설 경호인력을 대동하는 것인데 유권자의 불편한 시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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