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읍소? 우리는 김건희의 '위법'을 보았다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파열음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혹자들은 약속된 대련이라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전초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사흘간의 초유의 갈등이 정권과 여당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동훈 위원장이 갈등의 시작이고 원인이기도 했던 국민의힘 김경율 비대위원의 출마를 발표했던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이 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맞붙을 것이라며 두 팔을 추켜세웠다.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던 자신의 말과 배치되는 행동이고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인사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내 민주화와 공정한 경쟁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독단적 결정과 행동.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 사실을 빌미로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보내 전국위원회 추인을 거친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하루 이틀의 폐해가 아니다. 이준석 전 대표를 향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문자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 역시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던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고,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에도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한 위원장의 시스템을 무시한 공천과 대통령의 법을 위반한 당무 개입은 닮았다. 정당 민주주의도, 법이 정한 대통령의 당무 개입 금지도 무용지물이 됐다. 윤·한 갈등에서 보여준 권력의 민낯이다.
▲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왼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 남소연 |
본질적 문제는 더 그렇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한 당내 사과 요구를 통제하지 못한 책임 추궁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다른 목소리를 낸 데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이 대부분 언론의 분석이다. 한 위원장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졌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전향적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디올백 같은 경우 함정이긴 했지만, 부적절했다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는 하태경 의원. '김 여사가 경위를 설명하고, 만약 선물이 보존돼 있다면 준 사람에게 돌려주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쉽게 해결될 방법'이라는 이수정 국민의힘 총선 예비후보 등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로 비유하며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김경율 비대위원의 주장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사과 요구를 곧이곧대로 보기 힘들다. 다른 형태의 감싸기이고 위기 모면용일 뿐이다. 대통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진실 규명과 법에 의한 심판 요구는 디올백 수수로까지 확대되었다.
출마 예정자, 특히 수도권 예비 후보자들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사과라도' 해달라는 읍소형 요구였다. 보수 언론들도 사과와 제2부속실 설치 정도의 대책이라도 내놓으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마저도 불쾌해했고 여당 내 사과 요구 확산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갈등으로 분출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일부의 사과 요구는 해결책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많은 언론에서 디올백을 받은 행위를 '의혹'이라고 하지만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하는 장면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의혹이 아니라 온 국민이 본 위법 행위다.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수사해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왜 대통령 부인 금품 수수를 법의 심판도 없이 사과로 마무리하려 하나? 그런 사과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어이없지만 국민의힘 일부의 사과 요구는 법적 심판 대상을 도덕적 흠결 정도로 희석시키려는 얄팍한 정치 술수와 총선을 앞둔 보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해되지 않는 주장도 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해자를 나무라는 격이라며 김건희 여사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이철규 국민의힘 공동인재영입위원장. 그러나 300만 원 디올백은 김영란법을 위반하며 김건희 여사에게 건네졌고 반환되지도 않았다. 윤리에 어긋나는 취재라 하더라도 수수한 사실을 면죄받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철규 위원장 주장대로 대통령 부인이 개입된 교통사고라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가려내는 수사는 더 급함을 요하는 일이다. 장관의 핸드폰을 찾자고 수사관들을 총출동시킨 정권에서 대통령 부인이 개입된 교통사고(?)는 왜 모두가 뒷짐을 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디올백이 국고로 귀속되어서 반환이 어렵다는 주장 또한 뇌물을 수수해 국고로 귀속시키는 나라라는 궤변과 다를 바 없다.
▲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부끄러움을 모른다.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국회의원 선서를 했던 의원들, 앞으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 국가이익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안전이 우선이다.
사과를 요구했던 국민의힘 인사들, 계획된 공작이며 사과는 필요 없다는 대통령 호위무사들,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사과해라' '불가하다' 양측의 줄 달리기는 약속된 대련이든 권력의 암투이든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흘간의 윤·한 갈등, 벌어진 틈새로 드러난 여당과 정권의 모습은 추하고도 나쁘다.
25일 한 위원장은 '제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라며 사과 요구에 선을 그었다. 얄팍한 언변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던 한 위원장이었다. 김경율 비대위원 역시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더 이상 밝혀질 것 없다'며 구애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승자로 보일만 하다. 진정한 승자는 윤 대통령 뒤에 숨은 김건희 여사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만하다.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뒤에서 섭정하는 풍자가 국민들의 우픈 미소를 짓게 하고 여당 의원들이나 장차관들이 대통령보다 김건희 여사의 심기를 먼저 살핀다는 소문도 파다할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는 의혹이 아니라 확인된 위법 행위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은 화재 현장을 화제 현장으로 만들며 봉합되었을지 모르지만 드러난 추한 모양을 국민들은 다 봐 버렸다.
여당 내 사과 요구는 당분간 보기 힘들 수 있겠지만 수사와 법의 심판을 요구하는 여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과를 읍소하듯 청할 일이 아니다. 사과로 법의 심판을 퉁치는 것은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공정과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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