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으로 김치를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임태희 2024. 1. 26. 17: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창의적이지 않은 아이는 없다... 함께 있는 부모가 먼저 자유로운 태도 보여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임태희 기자]

창의적이지 않은 아이를 본 적 없다.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교사로서, 동화작가로서, 그리고 자녀를 기르는 엄마로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겪어보고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이다. 

혹시 아이가 창의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 아이가 너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왜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엉뚱한 짓이나 뚱딴지같은 소리는 바쁠 때가 아니라 심심해 좀이 쑤실 지경일 때 정점을 찍는다. 창의성의 발현도 마찬가지다.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에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모든 아이들은 창의적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창의적이어서 한 시간만 아이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 혼이 쏙 빠질 지경이다. 아이들은 최고의 놀이 개발자다. 지루할 땐 언제나 새로운 놀이를 뚝딱 만들어 낸다. 또한 동화 속 여우와도 비슷하다. 기똥찬 벌칙으로 남들 골려 먹을 궁리에 신이 나서 웃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만화 주인공보다 더 만화 같은 꿈을 꾸고,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술술 지어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딱지'를 5초 만에 쓱쓱 그려낸다. 그뿐인가. 그 근본 없는 괴물의 울음소리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 책상, 지우개, 양말 등등 오만가지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의 이름 대신 굳이 별명을 지어 부른다. 엄마 배를 만져 보고 "엄마 배는 '포살' 하네~" 라며 세상에 없는 낱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을 오랜 세월 관찰하며 내가 세운 명제가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의 싹을 가지고 태어난다.' 

명제가 참이라면, 창의성은 '싹'이니까 뽑지만 않으면 자라는 것이 순리일 게다. 정말 그런 작고 소중한 싹이 아이들 내면 어딘가에 심겨 있는 것이라면, 온실까지는 필요 없지만 추우면 해롭다는 것쯤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 냉소(冷笑)와 창의(創意)는 상극이라는 것 역시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정원사처럼 물을 주며 가꾸고 보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의성을 죽이는 행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본다. 그건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알면서도 저지르는 것이다. 왜일까? 창의성은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 아닐까. 대다수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요즘, 만일 정말 창의적인 사람만이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다면 창의성을 죽이는 짓은 절대로 안 하려 들지 않을까. 
 
 아이들의 창의적 유희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 임태희
 
이번엔 조금 다른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어 보자. 창의성을 죽이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행위의 주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얘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창의성이라는 게 몇 번 밟힌다고 그리 쉽게 사라지는 건가? 나쁜 교육 속에서도 예술가는 탄생한다. 창의성의 진짜 위기는 우리가 즐거운 상상을 제 스스로 그만둘 때 찾아올 것이다. 예컨대, 새끼손가락 옆에 어미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초콜릿으로 김치를 담그면 무슨 맛이 날지. 이런저런 상상 나래를 펼쳐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쓰잘 데 없다며 내던질 때 창의성은 빛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창의성은 남이 억지로 길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 잃지 않게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꺼진 가로등 같은 회색빛 사람들이 거리에 많아져 결국 사회 전체가 어두침침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사람들이 자기 안의 창의성을 좀 더 소중히 여겨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사로서 부모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를 대하는 말과 행동이 아이의 창의력을 해칠까 봐 염려하는 부모님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 역시 자녀가 있기에 그런 부모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조언해 드리고 싶다. 

"아이의 창의력을 지지하는 강력한 방법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부모님이 창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물론 대단한 창의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과 조금 다른 생각을 자신 있게 드러내거나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식을 스스로 즐겁게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부모를 통해 아이는 자기 안의 창의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고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일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창의교육 프로그램에 아이를 밀어 넣는 것이 딱히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게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아이를 잠시 심심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더 이로울 수도 있다. 오히려 당신에게로 초점을 옮겨, 함께 경직된 뇌 근육을 살살 풀어보자.

한때는 아이였던 당신에게도 '창의성 고수'였던 시절이 있었기에,당신 안에 잠재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당신의 엉뚱 발랄한 창의성으로 인해 당신 아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는 그날까지, 모든 부모들이여, 파이팅 하소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