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째 가게를 유지하는 엄마에게서 배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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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무엇이든 시작할 때, 처음 가지게 되는 마음이 초심이다. 나는 두 달 전 초등학생 대상 학습지 공부방을 시작할 때 욕심 없이 그저 일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즐겁게 하자고.
▲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하신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모처럼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들어간 동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나에게도 주문을 권했다. 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남이 사줄 때는 무조건 비싼 게 정답이다'는 어느 카페에 슬로건도 있지만 달거나 비싸기만 한 차를 굳이 즐기지 않기에 "저는 커피 대신 따뜻한 물 한잔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카운터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동료들이 괜히 나서서 다른 차라도 시키라고 했지만 청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괜찮다며 우리 일행을 안심시켰다. 1인 1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 카페에서 쫓겨났다는 뉴스가 유행이라 온수 주문에도 환하게 웃어주던 청년의 친절이 고마웠다. 주문한 차가 나왔는데 온수를 커피와 동일한 찻잔에 담아낸 정성에 마음까지 '매우 만족'이다. 많고 많은 카페를 지나 굳이 이 카페에 온 이유를 동료에게 물었더니 커피가 맛있다고 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설령 그렇다 쳐도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초심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창업이 넘쳐나고 폐업도 넘쳐나는 요즘, 창업하는 가게 대부분 처음엔 매우 친절하다. 그 친절에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불친절 해지다가 폐업의 길을 걷고는 한다. 그런 가게를 꽤 보았다.
주관적 시선이긴 해도 내가 사는 근처에 닭갈비 집이 처음 생겼을 때 1인분도 포장해 주고 맛, 서비스, 모든 게 다 좋아서 반가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1인분 포장은 안되고 홀에서 먹을 때도 '1인 1주문 필수' 문구가 벽 곳곳에 붙어있었다. "손님들이 약간 부담스러울 텐데"했었는데, 그 후 어느 날 보니 폐업해 '임대' 문구가 붙어있었다. 나로선 맛집을 잃어 아쉽고 어쩌면 조금 예상했던 터라 안타까웠다.
가게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유는 엄마도 가게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린 학생에게도 언제나 "고맙습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게 못마땅해서 한 번은 불만을 표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는 "너는 내가 인사하는 것까지도 불만이니?"라며 웃었다.
솔직히 나는, 나이 든 엄마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겸손한 게 싫었다. 시대가 변했으니 엄마도 변해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 손님들도 뭔가 필요해서 온 거고 금액도 적은데 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냐며 항변했다. 그러자 엄마는 '많은 가게를 두고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며 그게 지금까지 당신을 있게 만들어준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사람이 겸손해야지, 초심을 잃어선 안된다"라고 하셨다.
이런 엄마는 58년째 가게를 유지하고 계신다. 나는 줄곧 엄마와 같이 생활하다 마흔이 넘어 도시 생활을 시작했는데 엄마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화가 좀 났었다. 엄마는 우수리는 깎아주고 덤도 잘 주고 인정도 많아 사정을 많이 봐주시는 분인데 도시에선 그런 인정을 찾기 힘들어서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 번은 터미널에 갔다가 근처 볼일이 있어 가게에 짐을 잠시 부탁했더니 매몰차게 거절을 했다. 사정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아 너무 야속하다 싶었다. 먹지도 않은 음료를 산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냉정하게 말하던 여주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 처음 이사 와서 동네 슈퍼에 가볍게 들렸다가 주인이 권하는 걸 사는 바람에 100원이 모자랐다. 당시 카드를 지참하지 않아 현금밖에 없었다. 안 사도 그만인 물건이었지만 내 딴엔 이왕 산거 반품 보단 주인에게 더 이익일까 싶어 예의를 지키려 "미안하지만 백원은 내일 갖다 드리면 안 될까요?" 했더니 주인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물건을 권했다며 아르바이트생을 핀잔주는 것이다. 굉장히 불쾌하면서도 참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먼저 선심을 써도 그게 다였고 맛집 단골이 생길라 치면 무슨 이유인지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익을 좀 덜 남기면 된다'던 엄마의 계산법, 존경스럽네요
엄마는 단골이든 아니던 우수리, 즉 거스름돈은 잘 안 받았다. 얼마 전에 갔을 땐 이젠 손님들도 엄마를 닮아 서로서로 잔돈은 받지도 거슬러주지도 않는 재밌는 광경을 보고 놀라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옛날엔 깎아주긴 해도 손님돈은 단돈 1원도 안 받더니 이젠 막 받네... 왜 그래" 했더니, "이젠 손님들도 잔돈 싫다고 안 받아가, 아무리 줘도"라고 하셨다. 참 갈수록 재밌고 웃긴 가게라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원래 엄마의 계산법에 늘 불만이 많았다. 엄마는 내가 불만을 표할 때마다 "밑지는 게 아니고 이익을 조금 덜 남기면 되는 것이니 굳이 야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욕심 없는 계산법인데, 나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마음에 엄마를 이해하기 싫어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욕심 내지 않는 엄마가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동네 많은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져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먹거리가 넘쳐나는 엄마를 볼 때면 사람을 대하는 엄마의 변함없는 초심이 비결인 거 같다. 엄마는 이익을 많이 남기는 거보다 사람들이 변함없이 찾아오는 것이 더 좋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변하라고 닦달한 내가 부끄러워 이젠 엄마를 오롯이 신뢰하며 받아들인다.
엄마가 존경스럽다고 느낀 것도 도시 생활을 하면서다.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늘 강조하시는 겸손한 '초심'이 당시는 그저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면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라는 생각이다.
초심은 신뢰와 직결되는 것이라 초심을 잃으면 외면을 받는다. 어느 영역에서나 마찬가지인 거 같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해도 초심을 잃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다 보면 더 많은 걸 놓칠 수 있다.
'초심을 잃지 마!' 이제 내게 소리쳐본다. 일이 하고 싶었던 초심에서 시작한 공부방을 셈법에 저울질하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내 초심은 여전히 흔들리며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믿어주면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결코 추락하지 않는 어름사니의 균형 속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그러다보면 안전하게 바닥을 디디고 또 일어설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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