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가스가 덮친 도시, 목숨 걸고 사람 살린 역무원들

김형욱 2024. 1. 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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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레일웨이맨>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마라 시리즈 <더 레일웨이맨> 포스터.
ⓒ 넷플릭스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참사가 40년 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났다. 이른바 '보팔 가스 참사'다. 보팔은 인도의 정중앙 마디아프라데시주의 주도로 1960년대 농업 발전이 전망되는 곳이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글로벌 화학회사 '유니온 카바이드'가 보팔에 농약 공장을 세운다.

처음에는 원재료를 수입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자체적으로 제조한다. 문제는 공장이 인구 밀집 지역의 지근 거리에 위치했다는 점과 농약의 원재료가 독극물인 '메틸 이소시아네이트(MIC)'라는 점이었다. 매우 조심스럽게 잘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농업 시대가 저물고 있었고 회사는 적자에 시달리며 각종 비용을 절감하고자 용을 쓰고 있었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판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더 레일웨이맨: 1984년 보팔,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가 40년 전 그때 1984년 보팔 가스 참사의 전말을 전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참사 당시 큰일을 해낸 역무원들이 극의 중심이다. 가스 참사로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역무원들이 기차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 사건 자체로도 극적이지만 또 다른 극적 요소가 있으니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유독 가스가 유출되다

보팔 교차역의 역장 이프테카르 시디퀴는 10년 전 일어났던 기차 탈선 사고의 생존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아이를 눈앞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린다. 한편 그 사고 이후 누구보다 철저하게 보팔 교차역을 관리하고 있다. 한편 철도청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이마드 리아즈는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일한 경험으로 기자한테 MIC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그의 형이 가스 유출 사고로 사망했기에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의 MIC 탱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온도와 압력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캄루딘 관리자가 겨우 수습한 후 공장장에게 심각성을 보고하지만 매몰차게 묻힌다. 미국 본사에서 온 미국인 공장장은 모든 탓을 본사 윗선으로 돌리며, 이대로 두면 MIC 탱크에서 유독 가스가 유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무마해 버린다.

오래지 않아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MIC 탱크가 터지면서 유독 가스가 유출되어 버린 것이다. 가스는 빠르게 인근으로 퍼지며 순식간에 사람들을 죽여 버린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보팔 교차역은 공장 인근에 있었다. 역장은 경관 행세를 한 강도와 의기투합해 이마드를 만나 지역 주민들을 구하고 다른 지역에 연락을 취하려는 한편 보팔역으로 오는 급행열차를 세워 또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사람이 저지른 참사가 사람을 덮친다
 
 넷플릭스 <더 레일웨이맨>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참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들은 끊이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공통적인 소구점이라면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일 테고, 작품이 그리고자 하는 바라면 참사에 대응하는 인간군상일 것이다. 놀람, 안타까움, 답답함, 분노, 슬픔 등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을 유발한다. 그런 면에서 <더 레일웨이맨>은 참사 실화 콘텐츠로서의 문법에 충실했다.

공장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참사의 시작점과 위험성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즉 보팔 가스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1만 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 만 명의 직간접적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 드라마는 그 지점을 시작부터 끝까지 명확히 짚는다.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나아가 인간군상도 그렸는데 참사가 일어나기 전 캐릭터들의 일상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차근차근 빌드업 후에 참사 현장으로 따로 또 같이 모여든다. 아니 참사가 그들 각각을 덮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그러니 무작정 도망치거나 어딘가로 숨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분쟁이 있고 무분별한 분쟁은 또 다른 위험을 낳기도 한다.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분투하는 철도원들

와중에 <더 레일웨이맨>의 특장점이라면, 여타 대다수의 참사 실화 콘텐츠처럼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내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과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하는 철도 역무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유독 가스가 유출되었거니와 공장의 시설과 처우가 터무니 없이 열악했기에 참사가 시작되자마자 공장 내부 사람들은 거의 전멸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장 인근에 기차역이 있었는데 기차역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가 드나드는 공간이 아닌가. 위기이자 기회의 공간일 테니 극적 장면 연출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인들이 가스에 노출되지 않게끔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내부인들은 가스로부터 도망가야 했으며, 또 다른 외부인들이 도움을 주고자 오고 있다. 기차라는 게 외부로부터 최소한으로 고립되어 있는 한편 레일이 깔려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고 또 기차끼리 연결도 할 수 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순간순간 해야만 하는 선택들의 모양새가 모두 나와 있다. 외부와 연결되어야 하지만 외부에서 준비 없이 들어오면 안 되고, 고립되어 있어야 하지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만히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게 맞는지, 뭐라도 하고자 뛰쳐 나가는 게 맞는지. 난생처음 겪는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역무원들은 한없이 이타적이다. 자신 한몸 던져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지체없이 뛰어든다. 그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일까, 개인적인 신념 또는 상황에 의해서일까. 나라면 그때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실화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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