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고령자 많은, 中企 83만곳 대혼돈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1년 이상 징역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가 부족'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적용되면서 중소기업계와 영세 소상공인들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준비를 못 한 채 경영 위기 상황을 떠안게 됐다. 사망 또는 2명 이상 전치 6개월 이상 부상 등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가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현장은 전혀 정비되지 않았다. 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대비가 불가능한 데다 아예 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기업도 많다. 작업 현장의 사고는 아무리 조심해도 부지불식간에 발생할 수 있어, 당장 이날부터 영세 기업의 대표가 잡혀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전국 83만개 이상 중소기업 곳곳에서 경영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번에 중대재해법이 추가 적용되는 5~49인 중소기업에서 지난해 1~9월 발생한 사고재해자 수는 3만6336명, 사망자 수는 264명이었다. 각각 전체 기업 사고의 43.1%, 44.7%를 차지한다.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기업에도 적용되면서 이 법으로 처벌받는 사례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종별로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사고사망자 수가 가장 많다. 제조업 세부 업종을 보면 기계기구·금속·비금속광물제품제조업, 식료품제조업, 화학및고무제품제조업, 선박건조및수리업 등에서 재해가 자주 발생했다. 해당 업종 기업은 대부분 영세한 탓에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거나 안전 인력,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노상철 한국프레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적용되면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당장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사고가 나면 사업주는 무조건 범법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기업들에선 고령의 근로자가 많아 재해가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사고 재해자는 50세~54세 1만218명, 55세~59세 1만2178명, 60세 이상 2만6645명으로 고령일수록 많았다. 사망자도 60세 이상이 27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50대가 177명이었다. 50인 미만 기업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는 것도 재해 발생에 취약한 이유 중 하나다. 통계청의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외국인 취업자는 92만3000명이고 이 중 56.9%가 5인~49인 규모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 소통 능력 부족 등으로 재해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중대재해 발생으로 대표가 처벌되면 경영 중단,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800만 명 이상의 일자리도 흔들리게 된다. 5인~49인 기업 근로자는 지난해 9월 기준 893만 명으로, 근로자 수로 기업 규모를 분류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중대재해법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아그럼에도 중대재해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영세 기업도 많다. 아예 법에 대해 인지하지 못 한 채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영세한 산업용품 제작 업체들이 모여 있는 종로 3가 장사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십여곳의 업체에 물어본 결과 중대재해법에 대해 안다고 답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여기서 산업용품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법이 시행되더라도 알아서 조심하는 거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대응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수원에서 유리병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조처를 하지 못했다. 강씨는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당장 인력을 줄여도 모자랄 정도로 사업이 어려운데 추가 채용은 말도 안 된다”라며 “주변 업체 사장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부족
중소기업계가 가장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부족’이다. 컨설팅을 받고 싶어도 이를 수행해줄 인력이 제한적이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컨설팅을 받았지만 노무사가 하는 행정 관련 컨설팅이 대부분이라는 평이다. 김영석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중기중앙회 등에서 하는 교육 및 컨설팅을 다 받고 있는데 미진하다"며 "노무사들이 와서 하는 건 예방 대책보다 사후 대처 쪽이라 이보다는 실질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용도 문제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돼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채용이 의무화되지 않지만 재해 예방에 전문성이 없고 별도 조직을 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으로선 안전관리자를 선임해 안전 업무를 일임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업체는 당장 추가 인력을 고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채희태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은 인력·재정적 여건이 부족해 중대재해법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준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 시행에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는 전문 인력 양성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데 2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노동부 또한 지난해 12월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에서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교육 과정 운영, 산업안전 전공학과 추가 신설, 안전관리자 자격인정 요건 완화 등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전문인력을 2만 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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