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 튜터처럼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임경욱 기자]
숲속을 걷듯 조심조심 <행복한 사람, 타샤 튜터>의 책장을 넘기니 타샤 튜터가 왜 행복한 사람인지를 금방 알겠습니다. 미국 동부 버몬트주의 한적한 산골에 18세기 풍의 농가를 짓고 생활하는 작가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녀의 일상은 늘 호수처럼 고요하고 조용하지만, 그 속에서는 예술과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묻어나곤 했습니다.
1915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녀는 30세에 뉴햄프셔의 시골로 들어가 2남 2녀의 아이들을 혼자 키워냅니다. 56세에는 더 깊은 산골 버몬트주로 옮겼습니다. 2008년 92세의 나이로 그의 비밀의 정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36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 〈행복한 사람, 타샤 튜터〉 책 속에는 작가가 가꾼 정원 풍경과 직접 그린 삽화가 가득합니다. |
ⓒ 윌북 |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어요.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어릴 때부터 정원을 가꾸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열심히 화초를 키우던 분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꽃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덕분에 꽃들의 모양과 감촉, 토속적으로 부르는 이름까지 죄다 알았습니다. 수염패랭이꽃, 투구꽃, 연잎꿩의다리, 이런 구식 이름은 훨씬 예쁘장하고 소박해서 정원을 소담스럽게 합니다.
겨우내 오래된 난로 옆에서 동화를 짓고 삽화를 그리며, 인형을 만들던 작가는 땅에서 피어오르는 대지의 온기를 느끼고 정원으로 나섭니다. 봄이 되면 집의 남쪽 양지에서는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아네모네와 솜털이 난 버드나무가 나옵니다. 그다음에는 수선화 무리와 돌능금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거위와 닭, 염소, 고양이, 개, 앵무새 등 그녀와 함께 사는 동물들도 긴 겨울의 동면에서 깨어납니다. 작가가 잡초를 뽑고 구근을 심는 사이사이로 동물들이 같이 놀아주라고 보챕니다. 싱그러운 봄 햇살에 생기를 찾은 정원은 그녀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지상 낙원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텐데.
작가는 정원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만끽합니다. 혼자 있으면 완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지낼 수가 있답니다. 인생이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심각하게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답니다. 그러니 홀로 지내는 것마저도 큰 특권입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해마다 별이 한 번만 뜬다고 가정해보세요. 어떤 생각이 드는지,
정원을 가꾸면 헤아릴 수 없는 보상이 쏟아집니다.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가 아직도 맞고, 턱걸이도 할 수 있답니다. 평생 우울하거나 두통을 앓아본 적도 없습니다. 과일과 채소를 손수 기르고, 당근과 무, 순무도 길러 먹습니다. 되도록 자급자족하려고 애쓴 덕분입니다.
작가의 정원을 코티지 가든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많은 꽃이 뒤섞여 자라는 무계획한 정원일 뿐입니다. 장미, 난쟁이은쑥, 아이리스, 패랭이꽃, 으아리, 작약, 물망초가 풍성하게 섞여 자랍니다. 그녀는 꽃이 많은 게 좋답니다. 꽃 속에 묻혀 사는 것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고 떼어둔 시간보다 즐거운 때는 없지요.
남서풍에 향기가 실려 오고, 귀뚜라미 울음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밤하늘의 별자리가 바뀌는 때는 늘 아름답습니다. 봄에 태어난 병아리와 오리 새끼들이 통통하게 자랐고, 거위들은 사과나무 아래 모여 빨갛게 익은 첫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호박, 감자, 당근, 양파도 풍성합니다. 채소는 나무 태운 재를 뿌린 흙을 좋아하기에 언제나 재를 듬뿍 뿌립니다. 수확한 양파는 말린 다음 엮어서 처마에 걸어둡니다. 9월 한낮에는 해가 더 낮아지면서 아름다운 빛이 비춰들어 벽에 새장의 그림자를 근사하게 새깁니다.
그녀에게 골동품은 생활용품입니다. 상자에 넣어둔 채 간직하느니,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그녀가 1830년대 드레스를 입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멋진 걸 갖고 있으면서 즐기지 않는담?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합니다.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러워요.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답니다.
첫눈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아직 나뭇가지가 얼지 않아 눈이 잘 쌓이기 때문입니다. 밤중에 조용히 폭설이 내려서 아침에 깨면 세상이 변해버리는 게 특히 좋습니다. 밖에 눈이 많이 쌓인 것은 아침에 침대에 누워서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눈이 내린 날은 침실에 비춰드는 햇빛이 아주 다르니까요.
물레질, 뜨개질, 직조를 하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답니다. 자급자족하고 싶고, 본인이 쓰는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익히고 싶었답니다. 물레질을 하노라면 그리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답니다. 고양이 그르렁대는 소리와 비슷한 물레 도는 소리가 위안을 준답니다.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특별히 해줄 이야기는 없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신조입니다. 그녀의 삶 전체가 늘 그러했습니다.
숲속의 집의 매혹적인 정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담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에게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책이어서 설레었어요. 늘 가슴 속에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내가 늘 그리던 모습이 타샤와 같은 전원생활입니다. 30만 평의 넓은 농장은 아니라도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이 내 남은 생의 소망입니다. 마당 가득 과수와 화초를 가꾸며, 동물들의 재롱 속에서 타샤 튜터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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