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이선균은 떠났지만 영화는 남았다
위약금 30~50억…예상액 100억의 절반 수준
배우 고(故) 이선균은 떠났지만, 영화는 남았다. 고통은 유족의 몫이 됐고, 죄책감에 휩싸인 문화예술계 동료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단체로 목소리를 냈다. 마약 혐의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그가 떠난 자리를 들여다봤다.
300억 영화, 극장 개봉 가능한가
그가 생전 촬영해놓은 유작은 두 편. CJ ENM 영화 '탈출: 사일런스'(감독 김태곤·이하 '탈출')와 NEW의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다. 두 영화에 투입된 돈은 300억원에 달한다. 배급사 CJ ENM과 NEW는 올해 두 영화를 개봉하지 않을 계획이다. 제작비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제작사와 배급사가 공동으로 떠안게 됐다.
'탈출'은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직전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예기치 못한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영화를 만드는데 투입된 제작비는 약 180억원. 여기에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들어간 돈이 200억원을 웃돈다. 재난을 표현한 특수효과(CG)에 큰돈이 투입됐다. 이선균이 주인공으로 그가 스토리를 이끄는 분량이 상당해 사실상 편집과 재촬영이 불가하다.
약 90억원이 든 '행복의 나라'는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 속에 휘말린 한 군인(이선균 분)과 그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변호사(조정석 분)의 치열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선균은 군인 박태주 역을 맡았다. 상대역인 조정석 분량이 더 많아 한때 편집, 재촬영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숙고 끝에 이선균 촬영분으로 영화를 완성하겠다고 결론짓고 후반작업 중이며, 3월 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탈출'은 후반작업이 끝나 칸영화제에서 상영됐고, '행복의 나라'도 올 봄 마무리되는 만큼 이선균의 유작 두 편은 결국 극장에 걸릴 수 있다. 다만 CJ ENM과 NEW는 올해 개봉 계획에 두 편의 영화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배급사가 연내 개봉 시기를 연초에 대략 정해놓고 마케팅을 준비하는 만큼 올해 두 영화의 개봉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선균의 아내 전혜진이 출연한 영화 개봉도 연기됐다. 영화 '크로스' 측 관계자는 당초 새해 2월 극장에 걸릴 예정이던 '크로스'의 개봉일을 늦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개봉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개봉 예정작들이 정해져 있어 한 번 미뤄진 작품의 개봉은 당분간 어렵다.
위약금은 출연료 2~3배…100억 절반수준 추정
유명인은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위약금 부담을 안게된다. 일반적으로 위약금은 출연료의 2~3배 수준. 작품이 많은 유명인일수록 위약금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뛰는 이유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배우 고 이선균도 예외는 아니다.
이선균은 영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4관왕을 휩쓸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적당한 연령대에 깔끔한 외모, 가정적인 남편·아빠 이미지까지 더해져 맡길 수 있는 배역 스펙트럼이 넓어서다. 출연한 광고(CF)도 여러 편이다. 한 통신사 서비스 광고와 건강 기능성 식품 브랜드 광고에 출연했지만, 이니셜로 마약 의혹이 불거지자 각 회사는 바로 광고를 내리고 바이럴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모델 이미지가 매출로 직결되는 만큼 더 엄격하다. 따라서 유명인이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빠르게 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청구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민법상 위약금이란 손해배상금을 말한다. 위약금의 경우 비공개 계약이 전제되기에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광고나 작품 계약 시 법령을 위반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약 2~3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물게 된다. 계약서에 ‘법령 위반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를 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 명시된다.
이선균 출연 예정이었던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8부작으로, 그가 지난해 출연한 SBS 드라마 ‘법쩐’에서 회당 2억원대 출연료를 받은 것을 참작하면 드라마에서만 16억 정도 배정됐다. 그가 남긴 미개봉 영화 두 편은 비중과 규모가 다르지만, 편당 10억 수준의 특급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영화 출연 계약과 광고 등 위약금이 100억원대로 추산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실제로 발생하는 위약금 규모가 추정치 100억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 30~50%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물의를 일으킨 배우에게 위약금을 요구한 사례가 없다. 영화가 크랭크업한 만큼 이후 적절한 시기에 개봉이 가능하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까닭이다. 이선균 주연의 미개봉 영화 ‘탈출’은 이미 칸영화제에서 상영됐고, ‘행복의 나라’도 올봄 후반작업이 마무리되는 만큼 이후 적절한 시기 개봉이 가능해 위약금을 부과하기는 어렵다.
‘이선균 방지법’ 슬픔에 팔 걷은 문화계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선균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한 공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배우 인생 정점에서 48세 나이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아왔다. 세 차례 경찰에 소환됐으며, 사망 직전 경찰 조사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했다. 또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한 증거가 강남 룸살롱 실장 A씨(29·여)의 진술밖에 없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이선균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동료들은 그가 떠나자 검은 옷을 입고 마이크를 들었다. ‘기생충’을 함께한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냈다. 경찰과 언론에 각성을 요청하고, 이른바 ‘이선균 방지법’ 제정을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이선균 사건 관련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 보도 윤리에 어긋난 기사 삭제,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개정 등을 요구했다. 박찬욱 감독, 배우 윤여정 등도 관련 성명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성명서에는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삭제’, ‘문화예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제정 및 개정’ 등의 요구가 담겼다.
반면 원론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 단체의 움직임이 절대다수의 대중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고, 생전 불거진 도덕적인 문제와 불법 혐의에 관해 동료들이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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