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넘어 ‘플랫폼 공룡’ 꿈꾼다…애플·구글 뒤쫓는 챗GPT [스페셜리포트]
오픈AI가 보유한 무기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2023년 11월 데브 데이(Dev Day·개발자의 날) 무대에서 공개한 GPTs다. 복잡한 코딩 없이 몇 번의 텍스트 입력만으로 누구나 AI 챗봇을 만들 수 있는 게 핵심이다. 데브 데이가 막을 내린 후 2024년 1월 10일(현지 시간) 챗GPT 시대 개막을 알리는 마지막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일명 AI판 앱스토어 ‘GPT 스토어’의 등장이었다. GPT 스토어는 오픈AI와 샘 알트만이 꿈꿔온 챗GPT 생태계를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로 꼽혔다. GPTs를 활용해 만든 AI 챗봇도 GPT 스토어에서 사고팔 수 있다.
GPTs가 AI 챗봇 진입 문턱을 낮췄다면 GPT 스토어는 그야말로 ‘완전 개방’을 의미한다. 이용자는 직접 고민하며 GPTs를 활용해 ‘챗봇’을 만들 필요조차 없다. 월 20달러(약 2만6000원)만 지불하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골라 사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과거 애플의 앱스토어가 처음 나왔을 때 상황에 견준다. 앱스토어를 기점으로 아이폰 판매량이 급증하고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면, GPT 스토어를 중심으로 챗GPT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빅테크 자리도 위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워싱턴포스트(WP)는 “GPT 스토어를 연 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구축해 빅테크와 경쟁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 판단도 비슷하다. 일부 전문가는 ‘잠재력(포텐셜)’만 놓고 보면 GPT 스토어가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보다 ‘한 수 위’라고 강조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는 ‘코딩’을 전문적으로 할 줄 아는 개발자들이 공급을 담당했다. 하지만 GPT 스토어에서는 누구나 AI 챗봇을 만들 수 있다. ‘접근성’이 높은 만큼 공급량도 상당해 빠르게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오픈AI에 따르면 이미 300만개 이상 챗봇이 개발된 상태다.
GPT 스토어가 열리면서 오픈AI 자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GPT 스토어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면 오픈AI가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GPT 스토어와 비슷한 모델인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현재 앱 개발사에 최대 30%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오픈AI는 아직 수수료 정책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르면 올해 1분기 중 구체적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오픈AI의 지난해 매출은 16억달러(약 2조976억원)를 넘어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수수료 체계가 자리 잡으면 올해 오픈AI 매출이 지난해 3배를 넘는 50억달러(약 6조55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IT 기업도 입점 준비
2023년 11월 데브 데이에서 GPTs와 GPT 스토어 계획이 공개된 후 AI 스타트업은 “사실상 최후의 날을 맞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블룸버그통신도 “1년 전 챗GPT의 성공은 AI업계 광란을 촉발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X용 챗GPT(ChatGPT for X)’, 즉 포장된(Wrapper) 챗GPT 서비스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가 언급한 X용 챗GPT는 ‘특정 기업용 GPT’ ‘법률 GPT’ 등 챗GPT 기능을 일정 용도에 집중해 만들어낸 AI 모델이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AI 기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GPT 스토어가 나오면서 그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에 경쟁이 아닌 공존을 택한 기업도 여럿이다. GPT 스토어를 사업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확실한 공급망이 확보됐다며 GPT 스토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들은 GPT 스토어에 자사 서비스를 등록하고 나섰다.
한글과컴퓨터가 대표적이다. 한컴오피스에 AI 기술을 더한 한컴 어시스턴트 서비스나 이미지 속 텍스트 인식 기술(OCR) 등을 GPT 스토어에 입점시킬 계획이다. 한컴 측은 올해 상반기 관련 계획을 구체화할 방안이다. 증권가에서도 기대감이 상당하다. 김학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GPT 스토어를 통한 해외 확장의 발판이 마련됐다”며 “현재 GPT 스토어 가격 정책이 명확하지 않아 입점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GPT 스토어 활용성이 높아지면 한컴 서비스에 대한 개별적인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 글로벌 고객사 유입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업무용 협업툴 잔디(JANDI)를 서비스하는 토스랩도 ‘GPT 스토어’에 자사 ‘도움말 챗봇’을 등록했다. 도움말 챗봇은 잔디 서비스 관련 사용자의 질문에 맞춤형 답변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제공 용량이 꽉 찼다는데 어떻게 하지?’ 등의 질문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서준호 토스랩 기술 개발 총괄(CTO)은 “잔디 사용자 문의와 답변 데이터를 GPT 스토어에 적용했다”며 “이번 도움말 챗봇이 잔디에 내재된 1대1 고객 문의, 자체 헬프센터와 함께 향상된 정보 접근성과 상호작용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잔디는 AI를 활용해 업무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사용자들이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위협 인텔리전스(CTI) 전문 기업 샌즈랩도 GPT 스토어에 자사 서비스 ‘CTX’를 올렸다. 샌즈랩은 입점을 통해 글로벌 수익 모델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한다. CTX는 현재 ‘CTX 포 GPT(CTX for GPT)’라는 명칭으로 등록돼 있다. 김기홍 샌즈랩 대표는 “GPT 스토어 CTI 분야에서 CTX가 대표 서비스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피스 소프트웨어(SW) 운영사 폴라리스오피스도 GPT 스토어에 자사 ‘가이드 챗봇’을 등록했다. 폴라리스오피스는 향후 GPT 스토어에 다수의 챗봇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폴라리스오피스 관계자는 “토종 기술력을 탑재한 챗봇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현재 GPT 스토어의 개발 가이드라인이 태동기라 제한적 개발만 가능하지만 추가 앱을 통해 AI 업무 생산성 킬러앱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한 수익 극대화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놀랍긴 한데…한국어 실력 ‘최악’
GPTs에 올라온 프로그램은 어느 수준일까. 일반인과 소프트웨어 전문회사가 만든 챗봇은 얼마나 다를까.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GPT 스토어에 접속, 여러 상품을 체험해봤다.
GPT 스토어를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챗GPT 화면 왼쪽에 위치한 ‘Explore GPTs’를 누르면 된다. 플러스 사용자라면 자동으로 GPT 스토어에 접속된다. 이후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검색하고 찾아서 쓰면 끝이다.
GPT 스토어에 들어가 ‘VideoGPT by VEED(이하 VEED)’와 ‘Consensus’ 2개의 챗봇을 클릭, 활성화했다.
VEED는 짧은 영상, 이른바 ‘쇼츠’를 만드는 챗봇이다. ‘사용’을 누르자 익숙한 챗GPT 채팅창이 펼쳐졌다.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영상의 주제, 톤, 주의해야 할 점을 입력해달라는 내용. 주제를 ‘2010년 롯데 자이언츠 소속 이대호 선수의 기록과 의의’로 정했다. 영상에 나오는 목소리는 친근한 어투의 남성으로 정했다. 최종 확인을 끝내자, 챗GPT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영상 제작이 시작됐다. 약 30초가 지났을까. 영상 제작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상이 바로 챗GPT에 뜨지는 않는다. 대신 VEED의 제작 홈페이지로 이어지는 링크가 나온다. 링크를 누르면 영상 편집 도구처럼 생긴 화면이 등장한다. AI가 만들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직접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영상을 좀 더 세세하게 수정하고 싶다면 VEED 프로그램을 별도로 추가 구매해야 한다. AI가 만든 수준을 확인하고 싶어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완성도는 꽤 높았다. 정확한 내용이 담겼고, 문법, 설명하는 어투 등이 매끄러웠다. 단, 모든 언어는 영어로 나왔다.
한국어 영상을 만들기 위해 수정한 명령을 내렸다. “동일한 주제를 한국어로 설명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완성된 영상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결과는 ‘최악’.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이상한 외계어(?)가 쏟아졌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인을 흉내 내는 듯한 말투가 들렸다. 자막도 마찬가지다. 한글과 영어의 중간계 어디쯤인가?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가 계속 떴다. 영어를 중심으로 프로그래밍된 탓에, 한국어는 완벽히 지원하지 않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어로 된 쇼츠를 만들기에는 국내에서 제작한 다른 프로그램이 훨씬 간편하고 쉬워 보였다.
약간은 아쉬운 쇼츠 제작 체험을 끝내고, 이번에는 ‘Consensus’ 챗봇을 켰다. 이 챗봇은 외국에서 나온 논문을 검색,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기사 작성을 위해 참고했던 마약 관련 미국 논문을 찾아봤다. 몇몇 키워드를 검색하자 바로 AI가 해당 논문을 찾아냈다. 미국 범죄학회 논문 검색 사이트와 비슷한 수준의 속도를 자랑했다. 다만, 단점이 분명하다. 논문 전체를 찾아보기는 다소 힘든 구조다. 유료 논문의 경우 논문 전체 글은 아예 보지 못했다. Consensus는 영어 논문만 중점으로 학습시킨 챗봇이라, 한국어 논문은 구할 수 없었다. 외국 논문을 찾을 때는 유용하겠지만, 국내 논문을 찾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커 보인다.
총평. 업무 속도를 높여주는 생산성 도구로는 매우 유용하다. 특히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개발한 챗봇은 오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능이 좋다. 다만 만능은 아니다. 영상, 사진 제작 AI 챗봇의 경우 챗GPT 프로그램만으로는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에는 개발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추가 결제를 진행, 보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 개인이 만든 챗봇은 오류가 많고 기능도 다소 부족하다. 한국어 지원 역시 다소 아쉽다. 챗GPT가 영어 기반으로 만들어진 데다, 주요 개발사가 미국 회사들인 탓에 한국어는 부자연스럽거나 지원을 아예 하지 않는다. 때문에 생산성 향상 용도 수준으로만 적합하다. AI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접근하면 곤란하다.
낮은 신뢰도, 윤리 문제 속출
GPT 스토어의 높은 인기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잖다. 신뢰도가 낮고, AI 윤리를 위반한 챗봇이 성행하는가 하면, 프롬프트 해킹 등 문제가 불거지며 ‘보안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현재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점은 ‘신뢰도’다. 300만개에 가까운 챗봇이 한번에 쏟아지다 보니, 조악한 챗봇 비율이 상당히 높다. 회사가 아닌 개인이 만든 챗봇의 경우 AI가 그럴듯한 답을 지어서 만들어내는 ‘환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다. 오픈AI가 검수를 거쳐 스토어에 챗봇을 올린다지만, 모든 AI의 성능까지는 검사하지 못한다.
AI 윤리를 위반한 챗봇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는 점도 논란이다. 현재 GPT 스토어에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다수의 인공지능 연인 챗봇이 등장한다. AI업계에서는 AI를 활용해 만든 가상의 연인을 만드는 것을 ‘지양’한다. 성희롱 문제 등 윤리적 이슈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서도 ‘가상 연인’을 표방한 AI 챗봇들이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사라진 바 있다. 오픈AI 역시 원칙적으로 가상 연인 챗봇은 배제한다. 오픈AI가 만든 GPT 스토어 이용 약관에는 “로맨틱한 관계를 조성하는 GPT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글이 명시돼 있다. 원칙이 무색하게 가상 연인 챗봇이 무더기로 올라오면서, 오픈AI는 문제 해결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프롬프트 해킹’ 문제가 터졌다. 특정 문장을 입력하면 챗봇이 스스로 자신의 ‘프롬프트’를 모두 공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부 챗봇은 업데이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대응하지 못하고 해킹당한 챗봇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롬프트는 챗봇을 만드는 ‘명령어’다. 프롬프트 유출은 곧 설계도가 공개되는 것과 똑같다. 소프트웨어 개발사에는 치명적인 문제다. IT업계 관계자는 “GPT 스토어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같은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려면, 현재 불거지고 있는 윤리, 보안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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