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콧줄에, 폐기능 19%... 이 사람들 다 어떡할 거예요?

김성욱 2024. 1. 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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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SK케미칼·애경·이마트 뒤늦은 '유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눈물

[김성욱, 유성호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서영철(67)씨가 지난 18일 경상도에 있는 7평 남짓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폐 기능이 19%까지 떨어진 서씨는 산소발생기와 연결된 콧줄 없이는 숨을 쉬지 못했다. 서씨가 오른손으로 만지고 있는 게 산소발생기다.
ⓒ 김성욱
 
"후… 하… 후… 하… 잠시만요…"

지난 18일, 경상도의 한 7평짜리 원룸.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식탁에서 일어나 대여섯 걸음을 옮긴 서영철(67)씨는 현관문을 열어주고 난 뒤 5분이나 벽을 짚고 서서 거친 숨을 골랐다. 찡그린 채 눈을 감고 입안을 풍선처럼 부풀려 숨을 내뱉는 서씨의 코에는 산소발생기와 호스로 연결된 콧줄이 매달려 있었다.

좀처럼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서씨는 더듬더듬 기계를 조작해 분당 산소량 수치를 3리터에서 최대치인 5리터까지 높였다. 고개를 숙인 서씨는 들릴 듯 말듯 꺼져가는 목소리로 "몇 발짝 안 돼도 갑자기 움직이면 이런다"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서씨는 "현재 폐 기능이 19%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죠… 후…하… 만약에 이번에도 무죄 나왔으면… 저희 같은 피해자들은 다 매장됐을 거예요… 이 몸 끌고 밖에 나가서 소리치기도 벅찬데… 후…하… 사람들이 옥시는 알아도 SK는 잘 모르거든요..."

서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서승렬 재판장)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애경·이마트 임직원들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다루는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3년 전 모두 무죄가 내려졌던 1심이 완전히 뒤집힌 결과였다.

앞서 2018년 대법원에서 PHMG·PGH(구아니 계열 화학물질)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관계자들의 유죄는 확정된 바 있지만, CMIT·MIT(이소티아졸리논 계열)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SK케미칼·애경·이마트 쪽이 유죄를 받은 건 처음이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지고 무려 13년 만이었다.

[서영철씨]
24시간 콧줄, 공황장애까지 "이번에도 무죄였다면..."

  
 서영철씨가 복용하고 있는 약봉지들.
ⓒ 김성욱
 
서씨는 2007년부터 5년 이상 SK케미칼·애경·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했다. 2000평 부지의 토끼농장을 운영하던 그가 어느 날 군청에 들렀다 공무원들이 사무실에서 가습기를 쐬는 풍경을 본 뒤였다.

"아, 배운 사람들은 저걸 쓰는구나 싶어서 바로 가습기를 샀죠. 그렇게 가습기 살균제도 쓰게 됐고."

이후 조금씩 숨이 가빠오고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는 느낌을 받은 서씨는 2011년 병원을 찾았다. 폐 기능이 25%밖에 안 남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서씨는 믿을 수 없었다. 지병도 없었는데 갑자기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고 했다.

"일도 아예 못 하게 됐죠. 방금 보셨잖아요. 몇 발 걷는 것도 못 하는데. 벌이를 못 한 게 한 10년 돼요. 이러면 일반 사람은 못 버텨요. 농장은 빚더미 됐고. 결혼 생활도 끝났어요. 그 뒤로 요양병원에도 있었고, PC방이나 고시촌에서도 지냈죠. 숨 쉰다는 게, 다들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후…하… 안되니까 엄청 감사한 거더라고요. 게다가 폐 하나로 끝나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으니까 욕창에 피부병에… 벽이랑 천장만 보니 우울증 오고 불면증에 분노조절장애, 밀실 공포, 대인기피,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지금 먹는 약만 해도 수십 알...

요양병원 있을 때였는데, 한번은 갑자기 몸이 극도로 무력하고 꼼짝을 못 하겠더라고요. 막 땅으로 꺼지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요.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죽을 것 같고. 나중에 들으니 그게 공황장애라는데 다시는 이 무서운 걸 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문이 보여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문을 열고 밑에 있던 라디에이터를 밟고 올라서기까지 했는데, 나랑 동갑이라 알고 지내던 청소 아주머니가 뒤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날 붙잡고 끌어내렸어요. 그분 아니었으면 지금 없겠죠. 그때부터는 죽는 걸 그냥 받아들이고,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서씨는 24시간 콧줄을 껴야 한다. 콧줄의 생김새를 설명하려 잠시 빼 보이기도 했지만 3초도 버티지 못했다. 서씨는 평일에만 하루 세 시간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고, 한 달에 총 90시간 한도로 외부 활동을 돕는 활동보조사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2017년에 중증장애인으로 등록됐고 2019년에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하루에도 서너 번 죽음 느껴... 아파서 못 모이는 피해자들"
  
 서영철씨가 눈물을 보였다.
ⓒ 김성욱
 
서씨는 이번 유죄 판결을 두고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외로운 곳에 털끝만치 문이 열린 기분"이라고 했다. 휴대용 산소발생기를 메고, 활동보조사가 끄는 휠체어에 의지해 서울까지 올라가 재판에 참석하곤 했다는 그는 "나보다도 암울한 피해자들이 많아서 더 중요한 판결"이라고 되뇌었다. 현재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667명(신청자 7891명), 이중 사망자만 1258명에 달한다.

"후…하… 작년에 나랑 똑같이 폐 기능 19%였던 동생 하나가 죽었어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는데… 맨날 자기가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하면 웃기지 말라고, 순서가 있는데 죽어도 내가 먼저 죽지 않겠냐고 농을 했거든요. 집에서 할 게 없으니까 매일 서로 몇 시간씩 통화하고. 오늘 반찬은 뭐였네, 시시콜콜 수다 떨고 친했어요. 근데 그날 아침에 이 녀석한테 전화가 안 오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 했는데 몇 시간 있다가 바로 부고장이 날라오더라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모일 수가 없어요. 아프니까. 나도 한번 밖에 나가려고 하면, 진짜 죽음이거든요. 우리 집이 2층이라 계단이 9개씩 두 번 있어서 총 18개밖에 안 되는데. 이 계단에서만 중간에 몇 번을 쉬어요. 근데 그렇게 힘들게 밖에 나가서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보잖아요. 나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아파서 노동력이 10년, 20년 끊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구 하나 중환자 생겨서 간병해야 하면 그 가정은 파탄 나는 거예요. 근데 정작 피해자들은 모이지도 못해. 이러니 아무 힘이 없죠.

후…하… 저는 심한 날은 하루에도 서너 번은 죽음을 느껴요. 화장실 갈 때는 분당 산소량을 5리터로 올려놓고 가야 하거든요. 화장실에서는 산소발생기가 먼데, 혹시 중간에 호흡 가빠지면 죽으니까. 혼자 비누칠은 무슨, 칫솔질도 못 합니다. 숨차서. 전동 칫솔 샀죠. 화장실에서 좀 움직였다고 어느 순간 숨이 올라올 때 느끼는 공포란… 사실 오늘도 아까 한번 느꼈거든요. 변기에 앉아있다가 숨이 차길래, 아 내가 결국은 이렇게 화장실에서 처박혀서 가는구나. 근데 이 상태로 죽으면 누가 와서 볼 텐데... 보기 안 좋을 텐데... 그래, 바지는 올리자. 바지는 올려놓고 나서 죽자…"

서씨는 가족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걸 원하지 않아 사는 곳을 '경상도'라고만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태종씨] 아내 떠난 뒤 판결... "1200명 넘게 죽었는데 상고? 인간 아니다"
 
 지난 2020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투병하다 숨진 고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가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 대표의 항소심 유죄 판결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뒤늦은 유죄 판결을 끝내 보지 못하고 사망한 피해자도 있다. 지난 2020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투병하다 숨진 고 박영숙(61)씨다. 남편 김태종(70)씨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의 모습에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무려 12년 넘는 간병 끝에 아내를 떠나보낸 김씨는 "한동안 좀 쉬자는 생각도 했지만 우울증을 떨치기 위해 화물 일을 다시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만난 19일에도 대전에서 싣고 온 화물을 하차하고 오는 길이었다.
 
 지난 2020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투병하다 숨진 고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가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투병 당시 아내의 사진을 보고 있다.
ⓒ 유성호
   
"아직도 안방에선 잠을 못 자요. 아내 생각나서. 내가 일을 하느라 항상 아내보다 늦게 자서, 가습기를 아내 얼굴 방향으로 맞춰주곤 했거든요. 내 손으로 그렇게 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참… 2007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썼는데. 1리터짜리 한 통에 990원 하는, 그냥 마트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거였어요. 사용한 지 1년도 안 돼서 2008년에 아내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곧 죽는다는 거예요. 아들이 울면서 전화했던 게 지금도 생생한데.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 초기부터 기업들하고만 얘기했지, 피해자들과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안 했어요. 특히 5명만 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를 만들 수 있게 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결국 피해자들을 갈라치려는 작전이었던 것 같아요. 기업들도 늘 피해자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유도해왔고요. 우리는 다른 대형 참사들처럼 한날한시에 피해자들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전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있고, 피해자마다 각자 아픈 정도도 다 다르고요. 그 점을 이용한 거죠."

김씨는 이번 판결에 대해 "SK케미칼·애경·이마트가 처음 유죄를 받았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지만, 형량이 낮아도 너무 낮다"고 했다. "아내는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도 못하는데, 가해 기업 대표들은 구속도 없이 고작 금고 4년이냐"는 것이다. 항소심 결과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는 금고 4년을 받았지만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 구속되진 않았다. 금고형은 징역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강제 노역은 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수사하던 검사, 가해 기업 변론 로펌행... 누굴 믿겠나"
 
 지난 2020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투병하다 숨진 고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가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투병 당시 아내가 산소통 없이는 스스로 호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김씨는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SK케미칼과 애경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수사를 벌였던 검사가 나중에 그 기업들을 변호하는 로펌에 취직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걸 보고, 도대체 우린 누굴 믿어야 하나 싶었다"라며 "부도덕한 기업과 이를 방치하고만 있는 국가를 그냥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19년 서울중앙지검에서 SK케미칼·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검사가 2022년 두 기업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정부에서 인정받은 사망자만 1200명이 넘어요. 근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해요. 이번 항소심 재판 때도 변호사가 최후 변론에서 판사한테 하는 말이, 만약에 유죄가 나온다면 역사에 남을 나쁜 선례가 될 거래요. 거의 무슨 협박 비슷하게 해요. 이게 사람이 할 소리입니까.

한편으로는 나도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근데, 이런 얘기 듣고 참다 참다 억울하고 분해서 피해자들이 '악' 하고 소리내는 거거든요. 그러면 기업들은 우리를 마치 생떼를 부리는 사람처럼 취급해요. 보상이나 더 받으려는 집단처럼 몰고 가고. 이미  애들 엄마가 죽었는데 어떡할까요? 뭘 할 수 있을까요?

SK 같은 대기업이라고 봐주는 건지, 재판 진행이 너무 느린 것도 문제예요. 지금 이 시간에도 피해자들이 죽어가고 있거든요. 기자회견이라도 한번 하려고 하면요. 꼭 참석하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그날 아침만 되면 '얼마 전에 폐암 수술 받아서 못 간다, 미안하다' '폐 이식 받고 기흉이 생겨서 못 가겠다, 죄송하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아요.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요.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 치자고요. 근데 이 사람들은 다 어떡할 거예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인근에서 열린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의 2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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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죄'로 뒤집힌 가습기살균제..."정부 책임 묻겠다" https://omn.kr/271ta
- 가해 기업에 '유죄판결' 나왔던 날... "1800명 죽었는데 고작" https://omn.kr/272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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