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떠나는 선수들 ①] 그라운드 아닌 연구소에서 '스피드업'

안희수 2024. 1. 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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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라인은 투구 특성을 재설계하면서 스핀 효율과 속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투구 기술·신체·모션 캡처·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토론해 도출한 솔루션을 고객(선수)에게 제공한다. 사진은 훈련 현장 모습. 드라이브라인 홈페이지 캡처

KIA 타이거즈는 지난달 이의리 등 젊은 주축 투수 5명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 센터에 파견했다. KIA는 "맞춤형 트레이닝을 통해 구속 증가와 구위 향상을 기대한다"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도 2020년 이곳에 투수와 코치를 파견한 바 있다. 한화 이글스도 지난해 2월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과 시설 견학에 나섰다. KT 위즈 에이스 고영표는 소셜미디어(SNS)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훈련법을 익히기도 했다. 겨울에 그라운드나 실내 훈련장에서 땀 흘리는 게 아니라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단기 유학을 떠나는 게 트렌드가 된 것이다.

KT 위즈 선발 투수 고영표(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2021 스프링캠프에서 드라이브라인 플라이오 케어 볼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위) KIA 타이거즈 좌완 투수 이의리가 모션 캡처 장비를 착용하고 투구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아래 왼쪽) 일본 프로야구 리그 소프트뱅크 호크스 선수들이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모습(아래 오른쪽) 사진=드라이브라인 SNS 캡처·KT 위즈

'바이오메카닉 피칭 프로그램' 대유행

드라이브라인은 데이터 전문가였던 카일 바디가 2012년 설립한 야구 선수 육성 아카데미다. 바디는 1974년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수상자이자 운동생리학 박사 마이크 마셜이 주장한 바이오메카닉(생체역학) 피칭 이론에 심취했고, 작은 힘으로 효율적인 피칭을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소까지 설립했다.

바디는 전문가 그룹을 구성했다.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마샬, 배리 지토 등 수많은 빅리거 투수들의 트레이너였던 현 '예거 스포츠(팔 컨디셔닝·멘털 트레이닝 전문 센터)' 대표 앨런 예거, 그리고 전직 야구 선수이자 신체 운동학(kinesiology) 박사, 야구 이론서 타격에 관한 과학적 접근(The Scientific Approach to Hitting) 저자인 쿱 디렌 하와이 대학교 교수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한 것이다.

이들은 145~150g인 야구공보다 더 무겁거나 가벼운 공을 던지며 신체 가동성을 확장하면, 구속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적절한 투구 메커니즘과 충분한 회복이 이뤄진다면, 공을 더 많이 던질수록 팔이 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라이브라인은 '구속은 타고 나야 한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더 빠른 공을 원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또한 생체역학 데이터를 투구에 접목하는 투구 개발 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됐다. 클레이튼 커쇼·켄리 젠슨 등 성적이나 기량이 떨어진 MLB 정상급 투수들이 이 아카데미에서 재기 발판을 만들었다. 

드라이브라인은 구속 증가에 집중했던 초기와 달리 첨단 장비와 전문가를 동원해 선수의 신체 특성과 근육 활용을 분석하며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타자 고객도 많아졌다. 현재 MLB 최고의 선수인 오타니 쇼헤이도 피로도를 측정하는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특히 이 시설이 독자 개발한 프로그램 '플라이오 케어 볼(plyo care ball)'은 선수·지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무게가 다른 공(Weighted Ball, 100~1500g)을 활용해 투구 메커니즘 개선과 근력 관리, 신체 혈류 공급까지 활성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선수들과 함께 드라이브라인에서 연수를 받은 이동걸 KIA 코치는 "무작정 던지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자세가 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하는 습관이 생긴다"라고 했다.

모션 캡처를 위해 데이터 측정 장치를 부착하고 투구를 하고 있는 KIA 투수들. 사진=드라이브라인 SNS 캡처

만점자 수강생 배출한 '야구 학원'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은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이었던 1992년, 전지훈련지였던 브래든턴(미국 플로리다주) 소재 한 연구소에서 바이오메카닉 데이터를 측정해 효과적으로 근육을 쓰는 법을 측정한 경험이 있다"라고 했다. 무려 32년 전이다. 

생체역학 데이터를 운동에 접목하는 시도와 이를 전문으로 하는 시설은 이전부터 있었다. 드라이브라인도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시설이 국내 야구단과 선수들이 시선을 바다 건너에 있는 아카데미에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화 단장을 역임한 정민철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최신 트렌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도태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선수와 프런트 모두에게 생긴 것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위기감으로 인해 야구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을 면밀히 보게 되고, 호기심이 생기거나 이득을 경험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면 (직접) 확인하려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전 SBS스포츠 해설위원도 "결국 투수들이 원하고, 코칭스태프가 눈여겨보는 건 빠른 구속이다. 예전에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을 배워와서 구속이 7㎞/h 정도 오른 동료가 있었다. 효과를 옆에서 확인한 다른 선수들도 관심을 갖게 됐다"라고 돌아봤다. 

올겨울 미국 드라이브라인에 파견을 가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이의리(오른쪽)와 윤영철이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KIA 타이거즈

최근 몇몇 MLB 구단은 소속 선수의 드라이브라인행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 플라이오 케어 볼 훈련법이 구속 상승에 포커스를 맞춘 뒤 부상을 당하는 선수가 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아카데미를 찾는 선수들이 많아진 건 성공 사례가 더 많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A구단 1군 투수코치는 2020년 NL 사이영상 수상 투수 트레버 바우어가 드라이브라인 모션 분석을 통해 최적의 팔 각도를 찾아 스위퍼를 장착한 사례를 언급하며 "결국 드라이브라인도 수많은 학원 중 하나다. 수강생 중 만점자가 나와서 소문이 나고, 그 효과가 더 부각된 케이스 같다. 이전에 비해 세부적인 매뉴얼을 갖춘 것 같지만, 큰 틀에선 새로운 게 없다"라고 했다.

지난해 MLB와 KBO리그 모두 스위퍼가 위력을 발휘하자 꺾이는 각이 더 큰 변화구를 구사하려는 투수들이 많아졌다. 드라이브라인은 구속 향상뿐 아니라 더 큰 무브먼트를 위한 솔루션도 제공한다. 더 나은 공을 던지려는 선수들의 욕구가 그라운드를 뛰어넘어 연구소로 향하고 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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