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울린, 제주 청소년들의 제주 4.3 뮤지컬

이임주 2024. 1. 2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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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빗창'을 통해 펼쳐진 십대들의 진혼곡

[이임주 기자]

제주 동백작은학교 학생들은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학기동안 인권평화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하고 실천하며 깊이 있게 배워가는 배움의 시간이다. 그 배움의 시간들을 뮤지컬이라는 예술 장르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표현해 내며 배움의 깊이를 더해 간다.

학생들의 이번 배움의 주제는 제주 4.3이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거리들을 고민하며 한 학기 계획을 짜고 그것들을 직접 실행해 나간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해녀들의 외침을 담은 제주 4.3 만화 '빗창'의 작가 김홍모 선생님을 모셔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하고, 제주 4.3 유적지를 찾아 학생들이 직접 가이드를 하며 현장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빗창' 만화작가 김홍모 선생님의 강연
ⓒ 이임주
또한, 제주 4.3 사건의 유가족이자 생존자인 고완순 할머니를 모시고 사람책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고완순 할머니는 본인의 기억을 그림으로 생생히 기록하고 계셨다. 학생들은 고완순 할머니께서 그린 그림을 보며 너무 아픈 역사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기록해 나가는 고완순 할머니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드리기도 하였다. 
  
 제주 4.3 유가족이자 생존자 고완순할머니께서 자신의 그림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고 계신다.
ⓒ 이임주
 
또 제주 4.3과 관련된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발제를 하고 나누며 더욱 깊이 있게 제주 4.3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계획은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주체적인 과정들의 배움을 담아 학생들이 즐겨읽던 제주 4.3 만화 '빗창'을 중심으로 창작 뮤지컬을 기획했다. 

"통일 독립 허자는데 좌익이 어디있고, 우익이 어디있소?"

뮤지컬을 연습하며 점점 자신의 역할에 감정이입이 되는 학생들은 가끔 연습 중에 자신의 친구가 죽었다며, 너무 슬퍼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코끝이 찡해졌음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따금 아이들의 대사 속에 "통일 독립 허자는데 좌익이 어디있고, 우익이 어디있소?"라는 힘있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동백친구들은 머리로 역사를 배우기 보다 가슴으로 온몸으로 그 시대 서민의 삶을 느끼며 배우고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평범했으며, 그래서 얼마나 아픈 역사였는지, 얼마나 많은 동무들을 잃었는지… 그 시대를 잠시 느껴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삶인가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연습을 하며 분노하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과정의 기록들을 거쳐 지난해 11월 동백작은학교 학생들의 제주 4.3 창작 뮤지컬 '빗창'이 동네극장 제주 세이레아트센터에서 펼쳐졌다. 
 
 제주에서 펼쳐진 제주4.3 뮤지컬 '빗창'
ⓒ 이임주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극단 '화야'에서 지도 및 연출을 맡아 진행되었다. 십대의 아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한명 한명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제주 교육청 관계자부터 제주도민들까지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주었다. 연습하는 내내 제주 4.3을 몸과 마음으로 진정성있게 표현하며 눈물을 흘린 동백친구들은 발표 당일 그 공간에 존재했던 모든 이들과의 연결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제주 4.3항쟁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시 기억되었고, 차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픈 시간은 마치 슬픈 넋을 위로하는 진혼곡 같기도 했다. 
 
 극중 '민주'의 배역을 맡아 진정성있게 표현했다.
ⓒ 이임주
 
'사건'이 아닌 '항쟁'으로써의 제주 4.3

'빗창'의 작가 김홍모 선생님은 보는 내내 많이 울어서 소감을 나누던 중 계속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김홍모 작가의 소감 중 일부이다. 

"빗창 뮤지컬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배우들의 눈빛, 표정, 춤과 노래에서 진심이 느껴지는데 그게 얼마나 감동적이던지요. 올해 봤던 드라마, 영화등 모든 예술 작품 통틀어 최고였어요. 동백이들이 4.3 당시 제주 사람들의 원통한 마음을 깊이 헤아리면서 연기를 하는 진심이 느껴지니 배우도 울고 관객들도 울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 정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였어요. 만화 '빗창'은 4.3 을 단순히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사건이 아니라 해녀의 서사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역사의 주체로써 민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 뮤지컬의 가장 큰 의미중에 하나는 '사건'아니라 '항쟁'으로써의 제주 4.3을 다뤘다는데 있어요. 4.3 당시 제주도민들이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이어지고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봤으면 참 좋겠어요."
 
 '빗창' 뮤지컬 중 한장면
ⓒ 이임주
 
동백친구들은 진정한 역사의 현장에 머물렀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제주 4.3을 기억하며 나아가야 할지 몸과 마음으로 배웠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학생들을 입시경쟁의 지옥으로 몰아넣기 전 4.19도 5.18도 가장 먼저 앞장선 그 시대의 운동주체는 십대들이었다. 70년대 말 즈음 사라지게 된 십대의 학생운동이 다시 힘찬 열기로 되살아난 느낌이기도 했다. 참으로 용감하고 멋진 이 시대의 주체적인 십대들이었다. 그저 지식적인 배움에서 머물지 않고 많은 이들과 시대적 가치를 나누며 나아가는 진정한 교육운동의 장이며,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아름다운 기록이었다.

소중한 시민의 후원금으로만 펼쳐질 '빗창'뮤지컬 앵콜공연

이후, 한 번의 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뮤지컬이라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모아 앵콜 무대를 기획했고, 기적처럼 소중한 시민들의 기금이 마련되어 오는 1월 28일 오후 4시 일요일 서울 하자센터 신관 4층 '하하허허홀'에서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4월 3일 당일 빗창 뮤지컬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부정과 억압에 맞서며 이룩된 것이다.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 용기 있는 청소년들의 '빗창'뮤지컬을 통해 제주 4.3 항쟁의 역사가 많은 이들에게 가슴 깊이 새겨지고 알려지길 바라본다.
 
 오는 1월 28일에 펼쳐질 '빗창'뮤지컬 포스터
ⓒ 이임주
 

덧붙이는 글 |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 공동체이다. 14세~19세의 청소년들이 함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꿈꾸는 학교이다. 현재 2024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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