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민생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향진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시행될 날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기간 동안 정부와 기업은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또 유예하자고 함은, 애초부터 사람 살리고자 함에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죽기 살기로 정부와 싸울 것이니 중처법 시행 반대는 꿈도 꾸지 말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1월 27일, 50인(억)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예정대로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에는 50인(억) 미만 사업장 적용 시행을 2년 유예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여야는 중대재해법 유예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현재는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오는 27일부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시행된다. 정부·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자고 주장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로 본회의 중대재해법 개정안 상정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유예 조건으로 내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산재예방 예산 2조원 확보를 국민의힘이 거부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유예에 맞서 "산업 안전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내건 조건들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법 추가 유예 입법 촉구' 브리핑을 열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 장관은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50인 미만 기업 추가 적용유예에 관한 중대재해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며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노동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위와 같은 정부·여당의 주장에 거센 반대를 하고 있다. 생명은 '협상'의 대상도, '유예'의 대상도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소중한 생명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고 (중대재해법 50인 이하 사업장 적용을) 유예해야 되는 일이라면 이 나라는 정말 미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김용균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다. 중대재해법은 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아들, 24세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5년간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온몸을 다해 노력해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 제대로 '완성'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 발언하는 김미숙 어머니 . |
ⓒ 이향진 |
- 지난 12월 7일 대법원이 서부발전 원청 대표이사를 포함해 고위 경영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균이 사건이 있고 나서 정부 차원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죠. 특조위 조사 결과가 재판에 꼭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이 컸어요. 아무래도 당사자이다 보니까 더 컸죠. 그렇다고 기업주 한 개인만을 겨냥해서 미워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건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냥 '나라 전체를 좀 바꿔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기업주라는 개인 한 명만이 아니라, 여러 기업과 정부부처가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서 산재라는 결과로 이어진 거잖아요."
- 어머니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왜 계속 거리에 서서 투쟁하십니까? 투쟁 현장에 돌아와서 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용균이 판결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판결이 되길 바랐는데, 무죄가 나와 속상했어요. 하지만, 재판 결과로 산업재해 관련 처벌이 막힐 수밖에 없다면, 저는 더 큰 흐름을 만들어가면 돼요. 용균이의 억울함은 다 풀지 못했지만, 길이 막혔다고 해서 다른 길도 막힌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산재가 생기지 않으려면 개인의 책임도 물어야 하지만, 구조적인 책임을 더 물어야 해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의 책임을 포함해 더 큰 구조와 맥락을 봐야 하는 거죠. 더불어 시민들에게도 산재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 어머니의 투쟁은 끝난 게 아니군요.
▲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모습 . |
ⓒ 강은미 의원실 |
- 어떤 이유로 국회 앞에서 농성을 했는지, 시민들에게 설명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억)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해서 2년 동안 시행해왔잖아요. 올해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똑같이 적용해 시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사실상 중대재해법에 대한 논의는 3년 전에 나왔잖아요. 3년이라는 기간을 줬음에도 기업이나 정부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거든요. 전체 산재사망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는데, 이 죽음들을 계속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금껏 아무것도 안 했는데, 2년 또 유예를 하면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거예요. 그걸 막기 위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협상 조건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내세웠습니다. 타당하다고 보시나요?
"민주당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민주당도 재계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기업들의 눈치를 봐서 중대재해법은 유예하되,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드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그런데 산업재해로 한두 명이 죽는 게 아니잖아요. 이걸 그냥 또 유예시켜서 당장의 죽음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거잖아요. 생명을 등한시하고, 죽이겠다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건 정말로 민생을 생각하는 게 아니죠. 목숨을 대가로 거래할 생각을 한다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만들기로 한 지 사실상 3년이 지났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정부는 어떤 준비를 했어야 했나요?
"당시 법을 만들 때 50인(억) 미만 사업장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2022년 법이 시행되면서 정권이 바뀌었어요. 그때 제게 구체적인 안을 들려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중대재해법의 핵심은 산업안전에 대한 문제를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전 예산을 책임지지 못하거나, 제대로 안전 조치하지 않아 사고가 나면 원청에게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현실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는 정부 지원이 필요한 영세한 사업장, 노동환경 열악한 사업장들도 많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사업장이 얼마나 있는지 현황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 현황 조사가 끝난 후, 안전 예산 확보 등을 통해 영세 기업의 안전 시설을 설치하고 안전 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해줬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런 일을 하지 않고 법 집행 시기가 다가오자 적용 유예를 들고 나왔습니다.
정부나 국회 모두 할 일을 하지 않고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어떤 협상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법 집행 이후에 생기게 될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은 인력과 예산 확보를 통해 노동자의 죽음을 막으십시오. 그리고 사업주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식으로 좀더 떳떳하게 사업을 운영하십시오."
-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법사위를 앞두고 피켓을 든 김미숙씨 . |
ⓒ 강은미 의원실 |
- 이번 투쟁에서 어머니한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 같이 단식했던 동지들이 가장 큰 힘이 됐어요. 중대재해처벌법 통과시키려고 국회 안팎으로 단식 투쟁 함께했던 동지들, 유족들, 그리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역할이 컸죠. 함께 의견도 표출하고, 천막도 설치할 수 있었던 건 의원님이 문을 열어준 덕분이에요. 보좌해주시는 분들 전체가 다 힘을 써줬거든요. 더불어 언론과 시민들이 큰힘을 보태줘서 지금까지의 중처법 투쟁이 가능했습니다."
- 어머니를 가장 속상하게 한 건 무엇인가요?
"사람을 살리는 길에 여야가 같이 합세해도 모자랄 판에, 힘겨루기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죠. 자칫 잘못하면 얼렁뚱땅 중대재해법 유예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 같아 불안한 상태입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기업이 야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정세입니다."
- 예정대로 1월 27일에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 시행됩니다. 지금 어떤 마음이 드세요?
"진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하는데, 현 정부가 제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매우 우려스러워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시민들과 함께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도 산업재해 유가족을 계속 직접 만나러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어머니한테는 슬프고 힘든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순간일 것 같습니다.
▲ 아들 영정사진을 쓰다듬는 어머니 . |
ⓒ 이향진 |
-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요?
"용균이를 잃고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을 보게 되었어요. 억울하게 죽으면 그 가족은 우리처럼 가슴에 못 박힌 삶을 살아요. 충분히 아파할 시간도 없고요. 이런 억울한 삶이 또 나오지 않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을 최대한 견제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든지요.
더 이상 누군가의 아픔을 밟고 경제나 사회가 발전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냥 엄마의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형제, 누군가의 부모가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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