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가 배출한 예술인들, 떠나지 않으려면...

완도신문 정지승 2024. 1.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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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인적자원 발굴하고 함께가야

[완도신문 정지승]

지난해 전남 완도군의회는 지역관광 활성화 차원의 선진지 견학쯤으로 여겨서인지 국제도시로 성장한 부산 등지를 다녀왔다. 그곳으로 목적지를 선택한 것은 예술촌으로 변모한 깡깡이 마을과 완도군과 비슷한 조건의 어촌마을에서 행해진 변화한 문화관광 프로젝트를 배우자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한 지역의원은 경남 통영의 바다 경관디자인을 지목하며 본보에 기고했다. 발전지역을 조사하고 그것을 배우려는 완도군의회의 애써 노력한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부산을 국제시장으로 변모시켰고, 경남 통영을 문화예술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로 부른다. 뛰어난 바다 경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지역적 특색이 한몫했다. 그 바다는 청록파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미술가 전혁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을 키워냈고,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때문에 통영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실공히 예향의 도시로 발돋움한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 '정치 위에 문화, 문화 위에 예술'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간이 가장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두고 하는 표현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예술이야!"라는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 이것은 인간이 생산해 낸 최고의 산물이 예술의 영역이라는 뜻일 거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시대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지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발전한 관광지는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숨 쉬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 지역이 지닌 독창적인 문화예술의 힘이다. 예술만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문화예술 행위를 창조의 기본 동력으로 삼는 이유다. 

완도 바다는 통영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완도의 바다는 통영보다 덜 아름다울까? 완도의 섬들은 문화자원이 없는가? 그 문화자원은 다른 지역보다 더 후지고 뒤떨어졌을까? 무수한 궁금증만 남긴 나의 의구심은 여태 떨쳐버리기 힘든 큰 짐이기도 했다. 

완도가 배출한 문인 3인방을 만나다
 
 완도출신 문인과의 대화자리
ⓒ 완도신문
지난 연말 완도 출신 문인 3인방을 만났다. 그것도 완도군이 아닌 곳에서 그들을 영접한(?) 기분은 아득했다. 제1회 이외수 문학상에 당선되어 1억 원 상금을 받은 청산도 출신 소설가 정택진, 금일읍 출신 신춘문예 당선 소설가 이원화, 지난해 신춘문예와 송순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쥔 완도읍 출신의 오후랑(필명) 시인이 그들이다. 그들을 이웃 동네에서 열린 북 콘서트 행사장에서 만났다.

이외에도 여러 출향민 예술가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 지역보다는 문화예술 분야의 환경이 잘 형성된 곳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 받은 감성들을 타지에서 오롯이 키워내고 있는데도, 지역사회는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 늘 아쉬운 마음으로 다가왔다.

당선된 상금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 어렵다는 문학의 관문에 보란 듯이 등용된 중견이라는 것. 평산 책방지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후랑 시인의 작품을 친히 SNS에 홍보하여 메시지를 국민께 알리는 것으로 시인의 탄생을 축복했다. 

당연히 수상 소식을 취재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게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만나고 싶어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된 소식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을 당사자들이었겠지만, 지역 언론에 알리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겸연쩍고 부끄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을 전공하는 대다수 사람의 특징이다. 창작활동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생활 예술인들은 다르다. 대다수가 언론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동호회나 민간단체를 꾸려 활동하는 것이 전부이면서도, 나서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공모전의 수상 소식을 마치 훈장쯤으로 여겨 자신이 최고인 양 떠들썩거리며 겸허함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자랑만 앞세운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껴왔던 솔직한 나의 경험이다.

그래서 예술의 본질을 인문학적 소양에서 찾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용된 이들에게는 당선 소식이 앞으로 더 큰 일을 이루어 가라는 증표이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임을 잘 알기에,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으로 날마다 예술혼을 불태운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완도가 배출해낸 예술인들
ⓒ 완도신문
완도는 문화예술의 불모지다. 그동안 완도의 섬들은 많은 예술인을 배출했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고향의 바다에서 얻었지만, 완도군은 그들을 키워내지 못했다.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하여 우리는 숨은 보석을 찾을 수 있는 눈을 아직도 뜨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느낀 것은 완도 사람들이 섬에서 나고 자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그것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주는 무형의 것에 눈뜨지 못한 결과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원악지로 여기고 아주 척박하고 궁벽한, 버려진 땅으로 여겼던 곳, 그러나 완도의 섬은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보면 풍요롭고 생기 넘치는 삶의 공간이었다. 섬마다 선사시대의 유적이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일반인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섬 문화가 뭍으로 가서 뿌리를 내리고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영역에 큰 힘을 보탠 결과가 지금 예향의 도시 목포를 탄생시켰다. 목포는 전남 섬 지방의 모든 문화가 결합해서 오늘날의 예향이 된 것은 섬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미 연구 결과로 증명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작가에게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나쁜 작가, 좋은 작가, 좀 더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 등등 구분한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자랑만 일삼는 작가는 나쁜 작가이고, 작가의 창작물이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공공의 이익에 우선하면 분명 좋은 작가이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작가는 훌륭한 작가라는 의미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에서 깰 수 없는 불문율이다. 그래서 작가의 길을 산고의 고통이 동반하는 가시밭길이라고 말한다. 고향의 바다에서 우리는 충분한 자양분을 얻었고, 세찬 파도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했다. 관광의 시대를 꿈꾸는 완도군은 이 지역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무엇으로 지역을 풍족하게 바꿔 놓을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본연의 완도다움을 다시 찾아야 할 과제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사과가 더 먹음직스럽다'라는 말이 진리인 양, 내 것을 지키지 못하고 남의 것에 한눈 팔린다면 고향의 바다는 영영 슬픈 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신지도에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이 있었고, 유무형의 문화재급 자원이 여전히 완도군에 존재한다. 그런데도 지역사회는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것을 볼만한 눈이 없다. 이것이 완도군의 병폐로 여겨지는 이유는 나만이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아닐 터다. 

그런 의미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고 참신한 예술인의 모임을 하나 갖기로 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적자원을 한 곳으로 결집하자는 생각에서다. 무형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으나, 그래도 한 번 부딪혀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임들이 성장해서 점점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젊은 그들을 지원하기로 맘먹었다. 앞으로도 지역의 젊은 자원을 더 발굴할 계획이다.

인류의 가장 완벽한 시대는 문화예술이 융성한 때이며, 그것이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삶을 유지해야만 발전 가능성을 점지할 수 있다. 완도의 섬 곳곳에는 문화자원이 넘쳐난다. 그 보석을 발견하고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얽혀져 있는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낸다면 완도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비춰질 것이기에 오늘도 지역의 청춘들은 문화예술의 융성 시대를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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