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터뷰 | “학생을 왕으로, 기업과 지역사회를 황제로 모시는 대학”
이장호 국립군산대학교 총장의 담대한 도전
LG전자 11년 근무, 말보다 행동으로 군산대 교육 혁신 이끌어
‘전과 프리 대학’ 선언, “강의 질 높이는 선의의 경쟁 일어날 것”
이장호 국립군산대 총장이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한 건 2022년 3월, 군산대가 신입생 충원율 83%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때였다. 충원율 83%는 군산대 개교 이래 최저 수준으로 전국 평균인 94.5%보다 10%p 이상 낮다.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속에 이 총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국립대에서는 보기 드문 기업인(LG전자 11년 근무) 출신인 이 총장은 군산대 체질을 개선하며 조직 효율성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교육개혁을 이끌어갔다. 그 결과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에 신입생 충원율은 96%로 뛰었다. 과연 이 총장은 어떤 혁신 드라이브로 군산대를 전북을 넘어 전국에서 통하는 대학으로 탈바꿈시켰을까? 1월 9일 군산대를 직접 방문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데이터 기반한 혁신으로 성과
“‘군산대가 바뀌면 우리나라가 바뀐다’는 각오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해왔다. 올해 신입생 충원율 100% 달성이 예상되는데, 우리 구성원들이 바라던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잘 엮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곧 4년 임기의 절반이 지난다. 남은 2년도 눈치 보지 않고 교육혁신에 매진하겠다.”
빠른 시간 내에 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총장의 아집(我執)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도출해 대학 구성원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보통 대학에서는 학과 경쟁률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이래서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일례로 어떤 학과는 경쟁률이 3대 1임에도 등록률이 100%가 나오는데 반해 어떤 학과는 경쟁률이 10대 1이 돼도 100%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학생들의 학과 소구력(訴求力)이 달라서다. 그래서 저는 전국 최초로 지난 3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학과를 분석해 ‘학생 소구력 지표’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경쟁률이 2대 1만 돼도 100% 등록이 되는 학과가 그해 입시에서 4대 1이 되면 그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소구력이 200%인 거다. 8대 1이 돼야 100% 등록되는 학과가 4대 1이 되면 미달이다. 군산대는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학과의 정원을 조정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늘리고 선호하지 않는 학과는 줄였다.”
드라마틱한 반등으로 학내 사기가 많이 고무됐을 듯하다.
“전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충원율에서 4%가 미달됐지 않았나. 학생수로 치면 70여 명인데, 지난해 군산대에 불합격한 학생이 1400명 정도다. 여전히 군산대에 ‘미스 매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러한 미스 매칭을 해결하기 위해 ‘전과(轉科) 프리 대학’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전과 프리 대학’은 학년, 허가 인원, 이동 횟수의 제한 없이 학생 선택권을 극대화하는 미래형 학사구조다. 이장호 총장은 신년사에서 “우리 학생들이 어떤 제약과 한계도 갖지 않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에서 자기의 속도와 강도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선언 뒤 어떤 효과가 나타났나?
“올해 정시 지원자 중 40%가 수도권 거주자다. 군산대가 올해 전국 단위로 홍보했던 ‘전과 프리 대학’ 브랜드가 주효한 것이다.”
학생 선택권 강화 외에도 기대되는 효과가 있다면?
“강의의 질과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학생은 언제든 전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는 선의의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 군산대에 진정한 교육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학생을 왕으로 보는 대학, 기업을 황제로 모시는 대학’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국립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교육 수요자, 즉 학생과 기업·지역사회 간 미스 매칭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미래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 지역 기업에 취업하게 하면, 그들이 정주해 지역소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강의실에만 머무는 교육으로는 기업·지역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현장에서 학생이 기업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학점 인정 제도가 필요하다. 군산대는 기업과 지역사회가 원하고 인정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미스 매칭 없애는 데 총력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마이크로디그리(트랙이수제)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이라는 방법을 찾아냈다. 학생들이 학과를 불문하고 3학년 2학기 또는 4학년 1학기 때 한두 학기 동안 기업이 원하는 소양교육을 받고 취업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최대한 빨리 양성하는 게 가능하다.”
마이크로디그리는 급변하는 산업구조와 기술 향상과 변화에 대응하는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단기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학생 본인의 진로목표 혹은 관심분야에 따라 융합전공 3~5개를 이수하는 형태다. 군산대는 이미 지난 학기 삼성 스마트팩토리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을 시범으로 진행해 가능성을 타진했다. 40명이 지원해 8명이 3과목으로 구성된 MD를 이수했으며, 이번 학기 이수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인접한 새만금은 최근 2년 사이 10조원이 넘는 투자협약을 이끌어냈으며, 지난해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군산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새만금에 들어오는 SK,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과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을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는 새만금 지역에 캠퍼스를 갖고 있어 기업이 원하는 현장 실무 인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세계 159개 대학과 맺은 ‘2+2 학생교류협약’을 바탕으로 2학년을 마친 해외유학생을 새만금 캠퍼스로 데려오겠다.”
‘2+2 학생교류협약’으로 해외유학생은 군산대에서 3·4학년을 이수할 수 있고, 군산대는 2+2에 참여하는 유학생들에게 혁신교육과정인 마이크로디그리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에 따른 현장실습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들에게 파트너기업을 매칭해준다. 이렇게 유학생은 기업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군산에서 취업 및 정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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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통학버스 등 복지 힘써
학생 복지와 관련한 다양한 성과도 눈에 띈다.
“7개 단과대학에 분산됐던 행정실을 하나로 통합했다. 이렇게 절감한 비용으로 전 재학생 대상 통학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버스 운행 횟수를 늘릴 계획이다. 또 올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를 한 결과 전국에서 지원자가 크게 늘고 있다.”
과감한 실행력이 돋보인다.
“행동 없이는 미래를 선도할 수 없다. 제가 삼성 스마트팩토리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을 한다고 했을 때 성공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도 모델을 보고 다른 대학이 따라오고 있다.”
전주 동암고를 졸업한 이 총장은 서울대 농공학과, 포항공과대 기계공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현재(사)한국풍력에너지학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아시아-태평양 재생에너지포럼 조직위원장, 군산대 풍력기술센터장, 해상풍력연구원장을 역임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다.
‘혁신’에 대한 평소 생각이 궁금하다.
“혁신은 먼저 말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선점하고 상대방은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되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만약 제가 총장이 돼서 사람을 혁신하기 시작했다면 아마 수많은 갈등이 야기 됐을 거다. 총장으로서 혁신은 사람이 아닌 교육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과 기업, 지역사회가 만족하도록 대학 구성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제안하고 협력해서 다함께 다시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 교육혁신이다.”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Global)과 지역화를 뜻하는 로컬(Local)의 합성어인 ‘글로컬대학30’ 사업은 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의 지방대 30곳을 지정해 1개교당 5년간 1000억 여원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매년 10개 대학을 최종 선정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전북 지역에서는 전북대가 유일하게 선정됐다. 군산대는 올해 심기일전해 재도전할 계획을 세웠다.
글로컬대학 도전에 나서는 각오는?
“우리 전북은 학령 인구가 적다. 그래서 혹자는 ‘학생이 적은 지역에 글로컬대학이 왜 2개가 있어야 하나’라고 의문을 던진다. 군산대는 왜 글로컬대학이 돼야 할까?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 대학은 서해안 중심 대학으로서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의 성공을 위한 인재 양성에 특화된 강소대학이 돼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추고 현재 우리나라가 봉착한 문제, 이를 테면 저출산·지역소멸, 경제 위기 등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는 국립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대학이 그동안 해왔던 것을 뛰어넘는 담대한 도전에 나설 때다. 저는 우리 대학이 전북을 넘어 어떻게 하면 전국 1등이 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아마 기존의 경쟁 구도에서는 1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프레임으로 도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들이 이미 글로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교육혁신을 멈추지 않겠다.”
- 글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 사진 장정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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