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디' 다시 띄웠다...루이 비통 남성복 맡은 퍼렐 윌리엄스의 한 수 [더 하이엔드]

윤경희 2024. 1.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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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미래는 자유.”

퍼렐 윌리엄스가 지난해 가을 루이 비통 남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직후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비전이다. 2021년 스트리트 패션의 전설이자 아트 디렉터로 루이 비통을 이끌던 버즐 아블로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후임자는 과연 누가 될지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버즐 아블로만큼의 스타성, 200억 유로(약 29조 1850억원) 규모의 전통 있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를 이끌만한 천재성과 경영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만 했다. 약 2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루이 비통은 결국 퍼렐 윌리엄스라는 답을 찾았다.

퍼렐 윌리엄스의 첫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이 드디어 매장에 걸렸다. 2024 봄여름 시즌 컬렉션으로 퍼렐 윌리엄스의 비전이 엿보인다. [사진 루이 비통]

음악·패션 포함한 문화 아이콘


1973년생인 퍼렐은 21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한 음악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1990년대 힙합 프로덕션 넵튠즈(Neptunes)를 세우고 래퍼와 팝 가수들을 위한 곡을 프로듀싱했고, 99년엔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 너드(NERD)의 리드 보컬을 맡았다. 2006년엔 솔로로 전향해 이후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레코드’ 상, '최우수 팝 퍼포먼스’ 상 등을 휩쓸었다.

팝의 제왕이 된 그가 영향력을 끼치게 된 또 다른 분야가 있으니, 바로 패션이다. 그의 패션은 늘 혁신적이었다. 2014년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입은 버뮤다 턱시도(반바지에 턱시도 재킷을 입는 스타일)는 당시로써는 꽤나 파격적이어서 화제가 됐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였지만, 맨발에 구두를 신었다.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 등장한 틀을 깬 그의 패션에 전 세계가 놀랐고, 뉴욕타임즈는 “모호한 패션 트렌드”라며 “반바지가 오스카 같은 공식 행사에 어떻게 자리를 차지했나“라는 혹평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2019년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다시 한번 샤넬의 블레이저와 반바지를 입고 레드카펫을 걸었다.

2014년 오스카 레드카펫에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퍼렐 윌리엄스(왼쪽).


이렇듯 자신의 스타일에 자신 있었던 퍼렐은 2005년 일본 패션 아이콘이자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베이프를 만든 니고와 협업해 만든 스니커즈를 시작으로 옷 잘입는 셀러브리티를 넘어 패션업계를 움직이는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가 됐다. 그의 창의성과 스타성에 아디다스는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고,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르는 지니어스 프로그램을 통해 그와 지속적인 캡슐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2017년에 발표한 샤넬과의 협업 스니커즈엔 떡하니 자기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올 봄여름 파리 남성복 쇼 흥행 1위


지난해 가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퍼렐 윌리엄스의 첫 루이 비통 남성복 쇼는 파리 맨즈 패션위크의 가장 인기 있는 쇼였다. 루이 비통 본사 앞에 있는 퐁네프 다리에서 퍼렐 윌리엄스가 이번 쇼를 위해 직접 작곡한 클래식 곡을 피아니스트 랑랑과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시작하자 모델들의 화려한 런웨이가 펼쳐졌다. 축제 행진을 연상케 하는 쇼는 흥이 절로 났고,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행사장엔 실제로 제이지, 리한나, 비욘세, 에이셉 라키, 젠다이야,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온라인으로 쇼를 본 사람은 브랜드 공식 계정으로만 7억7500만 명 이상, 다른 언론 계정에서도 3억 건을 추가로 기록했다.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24 봄여름 남성 컬렉션 쇼 현장. 황금빛으로 물든 퐁네프를 모델들이 힘차게 걷고 있다. [사진 루이 비통]


퍼렐 윌리엄스는 “루이 비통 2024 SS 남성 컬렉션은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든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한다”면서 브랜드의 DNA을 기본으로 자신의 독창성을 컬렉션에 덧입혔다. 그가 재해석한 루이 비통의 다미에와 카모플라쥬 패턴을 결합한 ‘다모플라쥬’ 패턴이 대표적이다. 평소 그가 좋아해 즐겨 착용했던 진주와 크리스탈도 옷의 곳곳에 자리잡아 새로운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을 만들어냈다.

새로 개발한 다모플라쥬 패턴, 진주로 글자를 새긴 야구점퍼, 커다란 스피디 백까지. 이번 컬렉션의 특징을 한번에 보여주는 이미지다. [사진 루이 비통]
퍼렐 윌리엄스의 첫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을 공개하며, 루이 비통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뒷쪽에 위치한 '루이 비통 도산' 매장을 컬렉션 쇼 컨셉에 맞춰 황금색 다모플라쥬 패턴으로 단장했다. [사진 루이 비통]

다시 왔다, 스피디


이번 컬렉션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바로 루이 비통의 스테디셀러 스피디(Speedy) 백을 재해석한 ‘스피디 P9’ 백이다. 1930년에 제작된 스피디 백은 원래 큰 여행 가방 모양이었다. 1960년대에 배우 오드리 헵번이 루이 비통에 작은 크기의 스피디를 요청했고, 이후 그가 휴대가 간편한 작은 스피디를 사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와 모델 나오미 캠벨 등 여러 셀러브리티들이 이 백을 들었고, 쿠사마 야요이와 무라카미 다카시 등 세계적인 작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한정판 스피디들이 만들어졌다.
퍼렐 윌리엄스로 인해 재탄생한 스피디 P9 백의 가장 큰 변화는 컬러와 가죽에 있다. 기존의 스피디 백이 브라운 컬러에 루이 비통 모노그램을 더한 캔버스 소재였다면, 스피디 P9은 클래식한 사다리꼴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고급 양가죽 안감 및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에 초록·파랑 등 원색을 입혔다. 부드러운 소재를 덕분에 사용자의 착용 방식에 따라 가방 모양이 새롭게 잡히고, 흐릿한 느낌의 실크스크린 프린트 모노그램을 더해 장인이 직접 손으로 그린 듯한 시각적 효과도 냈다. 또한 퍼렐은 스피디를 진화시키며 만든 맞춤 주문 최고급 라인 ‘밀리어네어 스피디(The Millionaire Speedy)’도 출시었는데, 가격은 그 이름처럼 100만달러(약 13억원)다. 소재는 악어가죽에 다이아몬드, 금으로 장식했다.
이번 시즌 새로 공개한 '스피디 P9' 백. 선명한 원색의 고급 가죽을 사용해 일반 스피디 모델보다 시선을 잡아끌뿐아니라 손으로 만질 때도 부드럽다. [사진 루이 비통]
컬렉션 쇼에서 모델이 커다란 스피디 P9을 허리춤에 끼고 걷고 있다. [사진 루이 비통]
매장 정중앙에 자리한 스피디 P9. 이것만 봐도 이 가방을 이번 컬렉션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진 루이 비통]


그는 이 가방에 대해 “유니섹스 느낌을 가진 아이템을 활용해 모든 이들을 위한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뉴욕 카날스트리트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기존의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밝혔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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