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는 지금]④"정직함으로 100년 기업 도전…올핸 '닥치고 AI' 투자"
올해 지난해보다 1.5배 늘어난 3000억 규모 투자 예정
편집자주 - 벤처캐피털(VC)은 자본시장의 최전방에서 미래 산업의 주축이 될 초기 기업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탓에 VC 업계도 부진을 겪고 있지만 될성부른 기업을 물색하고 키우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업력과 노하우를 축적한 초대형 VC에서부터 신생 VC까지 다양한 투자사를 만나 투자 전략과 스토리를 들어본다.
"50년을 달려왔고 앞으로 또 50년을 준비합니다. 100년 벤처캐피털(VC)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한 투자'입니다."
국내 최초 VC인 아주IB투자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그간 벤처·창업기업을 발굴 및 지원하면서 벤처투자 업계를 이끌어 왔다. 김지원 아주IB투자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책장 가득 감사패와 상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IT 투자네트워크활동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2011) △한국VC대상 금융위원장상(2015·2020년) △해외상장유치 지원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표창(2016) △한국VC대상 최우수 투자활성화 지원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2018) △벤처창업진흥유공포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2019) 등 화려한 수상 실적은 아주IB에 대한 업계의 신뢰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2월엔 벤처창업진흥유공 투자 활성화 부문에서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아주빌딩에서 김 대표를 만나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과 투자전략을 물었다.
비결은 산업·스테이지 밸런싱… "앞으로의 100년 준비"
아주IB의 역사는 1974년 설립된 한국기술진흥 주식회사에서 출발한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전액 출자로 만들어졌다. 과학 발전 방안을 고민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월남 파병을 조건으로 미국의 지원을 끌어냈다. KIST에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과 투자가 이뤄졌고, 한국기술진흥이 사업화를 담당했다. 아주그룹에 편입된 것은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던 2008년이다.
김 대표는 본래 리스 회사(지금의 캐피털)에서 근무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며 미래를 재설계했다. 금융업을 하되 기존의 은행·증권·보험 등 전통 금융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을 해보고 싶었다. 1999년 회사 합류와 동시에 VC 업계에 발을 들였다. 2012년 경영본부장, 2015년 대표에 올랐다.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한 비결로는 '산업 밸런싱'을 꼽았다. 김 대표는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는 아주 전통적인 투자 방법을 쓴다.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특정 산업의 투자 비중을 높이지 않는다. 바이오, IT,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화학 등에 고르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스테이지 밸런싱'도 강조했다. 그는 "초기 기업엔 위험성이 크지만 회수 시 이익이 크다. 중기를 넘어가면 이익이 줄어드는 반면 안전성은 높아진다. 오래가는 회사가 되려면 스테이지별로도 밸런싱을 통해 회수 시기도 분산해야 한다"며 "결국 리스크 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회사"라고 자부했다.
아주IB 하우스는 기업의 성장 주기에 맞춘 지원시스템을 모두 회사 내에 갖췄다. 김 대표는 "창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AC) 사업, 데스밸리(창업 3~5년 차 기업이 자금 부족 등 위기를 겪는 시기)에 투자해주는 VC 사업, 신규 사업을 확장해 바이아웃 등 인수합병(M&A)을 하는 사모펀드 운용사(PE) 사업 등을 모두 할 수 있도록 내부 시스템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벤처투자를 하면서도, 18년 동안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그만큼 리스크 분산을 고민한다"며 "끊임없이 이익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이익을 돌려줘야 출자자(LP)와 투자자가 우리에게 자금을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혁신도 잃지 않았다. 다른 VC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발을 넓히는 동안, 아주IB는 벤처의 고장인 미국에서 정면승부를 펼쳤다. 11년 전 현지 법인 솔라스타벤처스를 세우고 현지 채용을 진행했다. 김 대표는 "VC 중에선 미국 현지 법인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며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지점 등을 세워 유의미한 투자를 진행했다. 나스닥에 벌써 약 14~15개 회사를 상장시켰다. 지금은 해외 LP들의 제안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솔라스타벤처스의 총자산은 66만9000달러, 반기순이익은 42만1000달러였다.
"우리는 흉내 내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운영을 하면서도 도전할 땐 과감하게 VC의 정체성을 가져갑니다. 업력이 긴 만큼 우리가 만들고 익힌 운영 방침과 시스템, 노하우 등이 다른 VC에도 좋은 참고사항이 됐죠."
"올해는 '닥치고 AI'… 투자 규모도 확대"
투자 업계가 움츠러든 지난해에도 견조한 실적을 냈다. △전기차 배터리 열관리 소재 전문 기업인 나노팀 △강관제조사인 넥스틸 △인공지능(AI) 기반 의료영상분석 기술 플랫폼인 코어라인소프트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 특화업체 시지트로닉스 등이 상장해 2700억원이 넘는 회수금을 기록했다. 2022년 대비 두 배가 넘는 회수 실적이다. 특히 2019년 30억원을 투자해 약 30배의 압도적인 멀티플(배수)을 기록한 나노팀에 대해 김 대표는 "(이차전지가 주목받은) 지난해 시기적으로도 되게 잘 맞았다. 내부적으로도 가장 큰 이벤트였다. 투자 담당 심사역 입장에서도 매우 좋은 경험이 됐다"고 짚었다. 지난해 아주IB의 운용자산(AUM)은 2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다. 지난해보다 1.5배 늘어난 3200억~3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AI다. 김 대표는 "'닥치고 AI'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알고리즘 설계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이보다 AI를 응용할 '엔터프라이즈 AI' 분야에 큰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엔터프라이즈 AI는 기업이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성과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만들어진 AI를 각 기업이 가져다가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농업과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킬 자율주행로봇(AMR)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결국 AI와 잘 설계된 로봇 분야가 가장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투명성과 윤리경영은 앞으로도 놓지 않을 핵심 가치다. 2018년 코스닥시장 상장도 그 일환이었다. 김 대표는 "상장사가 된 것은 공모 자금이 아닌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가 목적이었다"며 "운용이나 성과 면에서 항상 예측 가능성을 갖춘 회사가 되고자 한다. 그래야 일하는 우리도 투자자들도 서로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국내 VC로는 최초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TCFD)를 지지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김 대표는 "VC 중에선 가장 먼저 ESG 관련 등급도 확보했다. 투자 과정에서도 ESG 체크리스트를 기준으로 투자한다. 그렇게 폐타이어, 현수막 재활용 회사에 투자했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엔 아예 투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장의 수익성과 거리가 멀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ESG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회사에 투자하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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