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보다 싸다…‘3000원 국밥’ 가격의 비밀[조선물가실록]
높은 회전율로 박리다매
밥집 사장님, 알고보니 건물주
서울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신호등을 건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60년간 낙원동을 지킨 터줏대감 국밥집 '원조소문난집국밥전문(소문난집)'이 있다. '송해국밥'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우거지얼큰탕 한 가지 메뉴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특히 이 집은 가격으로 유명하다. 국밥 한 그릇 가격은 3000원.
영하 8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22일 오전 7시30분, 미처 동이 다 트기도 전이었지만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붐볐다. 60~70대 노인이 대다수였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듯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보였다. 하얀 쌀밥 한 그릇, 오랜 시간 우려낸 고기육수에 시래기와 두부를 넣고 끓인 국, 그리고 새콤한 깍두기. 이곳의 상차림은 소박했지만 한식의 모양새는 갖췄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소문난집은 국밥의 가격은 2000원이었다. 하지만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이기지 못하고 2022년 2500원, 2023년 3000원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여전히 '착한 가격'이라며 입을 모은다. 이곳의 수십 년간 단골이라는 김용관씨(75)는 "어디 가서 라면이라도 먹으려면 4000원은 줘야 한다"며 "여기서는 3000원이면 한 끼 든든히 먹는데 맛은 둘째치고 가격이 거저"라고 말했다.
서울 직장인들은 한 끼에 '적어도 1만원'은 줘야 배를 불릴 수 있는 시대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공개된 외식 물가상승률은 2년 연속 6% 이상. 1994년(6.8%)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그런데 소문난집 한 끼 가격은 웬만한 커피 한 잔 가격보다도 싸다.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톨 사이즈 기준 4500원이다.
소문난집이 오랫동안 저렴한 가격을 고수할 수 있는 무엇일까. 종업원들은 이곳의 가격 비밀로 박리다매와 높은 회전율을 지목한다. 종업원 A씨는 "새벽 3시부터 불을 때 장사 준비를 시작하고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받는다"며 "다른 건 없고, 사람을 많이 받는 게 저렴한 가격 유지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곳은 밥 한 끼를 먹고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다. 손님이 앉자마자 상이 차려지고, 15~20분 남짓한 식사가 끝나면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운다. 모르는 손님끼리도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빈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든든한 한 끼'에 집중한 투박한 서비스가 좌석 회전율을 높인 셈이다. 건물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도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A씨는 "식당 주인이 건물주"라며 "아직까지 (가격을 올리겠다는)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소문난집 외에도 낙원동 탑골공원 인근 식당에는 저렴한 가격대 밥집이 많다. 경제적으로 여의찮은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일대 물가 역시 저렴하게 형성돼 있다. 탑골공원 인근 칼국수 식당의 칼국수는 한 그릇에 5000원, 소문난집 인근 국밥집의 황태해장국은 4000원, 우거지콩나물 해장국은 3000원이다. 또 다른 식당에선 순두부, 콩나물국밥, 선지해장국을 각각 4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전국 곳곳 '착한 식당'…"올해 인상 계획 아직 없어요"외식 물가는 높아지고 있지만 든든한 한 상을 저렴하게 차리려 고군분투하는 착한 식당들도 많다. 가격 인상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식당 운영에 가족들이 발 벗고 나서 인건비를 아끼고, 발품을 팔아가며 식자재비를 줄인다.
'착한가격업소' 명맥도 이 같은 노력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2011년부터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착한가격업소로 선정하고 있다. 서울의 착한가격업소로는 종로구 홍순두부(홍순두부찌개 5500원), 중구 동선식당(가정식백반 5500원), 중구 옛날홍두깨손칼국수(손칼국수 5000원), 동대문구 청량리할머니냉면(냉면 6000원) 등이 있다.
홍순두부를 운영 중인 정운필씨(43)는 "여기가 대학가라서 싸게 팔긴 하지만 당연히 이윤은 남는다"며 "인건비를 줄이려고 처남과 둘이 일하고 있고, 매장 안을 셀프서비스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씨는 "단가 높은 메뉴를 추가할 계획을 하고 있지만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 탓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몰려드는 손님의 덕에 버티는 곳도 있다. 옛날홍두깨손칼국수 측은 "손해를 보는 품목도 있다"며 "잔치국수가 3500원인데 카드를 긁으면 (이윤이) 남지 않지만 그래도 서비스 품목으로 남겨뒀다"고 했다. 이어 "싸게 파니까 오는 손님들이 많다"며 "사람이 하도 몰려 가게가 유명해지길 꺼리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우리 가게는 (운영 상황이) 괜찮다"고 말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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