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재판 290차례…'사법행정권 남용' 양승태 오늘 선고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26일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이날 오후 2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해 선고를 내린다. 지난 2019년 2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된 지 약 5년 만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9월 마지막 공판 당시 12월에 선고하겠다고 했으나, 한 차례 연기해 해를 넘겼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은 상고법원 도입 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법원장 산하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청와대 등 외부와 거래를 시도하거나 일선 법관 등에 내부 통제를 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사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현 대통령)이 특별공판팀을 꾸리는 등 검찰이 총력을 투입한 사건이다.
수사와 재판 초기에는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으나 ‘역대 최장기’라 불릴 만큼 길어지면서 재판은 퇴색했다. 구속됐던 양 전 대법원장은 1심 구속기한(최장 6개월)을 앞두고 풀려났고 담당 재판부가 교체돼 갱신 절차에 긴 시간이 걸렸으며 담당 검사도 수차례 바뀌었다. 지난해 9월 결심까지 총 290차례 재판(공판준비기일 포함)이 열리는 동안 언론과 사회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관심이 옅어졌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징역 7년, 박·고 전 처장에게는 각 징역 5년과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법원행정처가 법관을 접촉해 재판 결론에 따른 조직의 유·불리를 환기하고 특정 판결을 요구·유도해 재판 독립 환경을 파괴했다”며 법원행정처의 정점에 있던 최고위 법관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정치세력에 의한 노골적이고 대규모적이며 끔찍한 공격”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그는 2019년 5월 첫 공판에서도 “모든 것은 근거 없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직업을 묻는 인정신문에서 “없다”고 대답했던 양 전 대법원장은 석방 이후에도 무직 상태로 재판에 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선고는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검찰은 대법원장-처장-차장이 공모해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어서다. 임 전 차장 사건도 5년 2개월씩 재판을 하는 등 상당히 길어졌다. 다만 이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사건(형사 35부)과 다른 재판부(형사36부)에서 심리해 온 사건인 만큼, 원칙적으로는 각 담당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심판한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나머지 10명 전·현직 판사에 대한 재판은 양 전 대법원장이나 임 전 차장 재판과 달리 장기화하지 않고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만 유죄가 인정됐다(항소심서 각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1500만원).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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