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집 물려받아"vs"내가 집안 일으켜야"…엇갈린 유예세대 [유예사회 갇힌 한국청년]
충남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한 김회창(26)씨는 올해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졸업할 수 있었지만, 1년 정도 미루고 국제재무분석사(CFA) 1단계 자격증을 준비했다. 현재는 증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금융권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고 있다. 지난해 미국 기술·성장주를 중심으로 직접 해외 주식투자 경험도 쌓고 수익률 110%를 달성해 한 증권사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김씨는 그렇다고 마음이 급하진 않다. 부모 재력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시가 12억원 상당 아파트를 물려받을 예정이다. 김씨는 “만약 바로 생활비를 벌어야 할 처지였다면 대학 편입, 자격증 공부와 스펙 쌓기는 포기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아교육 관련 중견기업에 3년째 재직 중인 김윤혜(32)씨 상황은 다르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김씨는 “공사장과 함바집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연봉을 많은 대기업만 노렸다”며 “하지만 원하는 회사엔 취업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 졸업을 미룬 것을 조금 후회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3년째 남자친구와 교제 중이지만 결혼 시점은 정하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대학원에 다녀 수입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주택 구입도 포기했다. 그는 “어차피 집 내돈내산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는데, 차라리 전·월세로 살고 외제차를 리스하거나 부모님 여행을 보내드리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가 대입부터 인생 유예를 시작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유예는 아니었다. 중앙일보가 심층 인터뷰한 25명은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자기 미래를 위한 투자형과 ▶경제적 여건에 따른 의무형으로 크게 나뉘었다.
특히 의무형에 속하는 이들은 특히 유예 기간 동안 심적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김윤혜씨 역시 “졸업을 2년 유예하면서도 가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더 여유가 있었다면 늦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도전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7년 교제한 남자친구와 올해 결혼할 계획인 김인선(31)씨는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아이까지 잘 키울 자신이 없어 출산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반면에 향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이는 25명 중 13명이었다. 이 중 9명은 “부모의 지원이 유예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따른 청년층의 양극화는 객관적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1년 20~30대 가구주 중 자산이 하위 20%(2784만원)와 상위 20%(9억8185만원)의 자산은 50배 가까이 차이났다. 첫 취업 평균 연령(2020년 기준 31세)에 비춰보면, 이른바 ‘부모 찬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셈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부모의 소득·학력이 자녀의 교육·취업에 영향을 미치고 계층의 승계 구조가 고착화한다”며 “(자녀의) 노동시장 진입 격차는 결국 생애 전반의 격차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선미·신혜연·김서원·박종서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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