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과일 사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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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기름진 것을 많이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나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는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향과 맛을 품은 제철 과일을 보는 재미도 즐긴다.
"요런 건 큰놈보다 탁구공만 한 게 훨씬 달아요. 워낙 얇아서 껍질 까는 게 성가셔서 그렇지 조끄마한 게 맛은 최고 좋아." 나로서야 더 달고 신선한 과일을 사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주인아저씨나 농부 입장이라면 다를 것이다.
흠이 좀 있고 시든 과일도 품 안에 자식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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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기름진 것을 많이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새콤달콤한 귤이나 몇 알 먹었으면 싶다. 단단히 외투를 껴입고 동네 청과 상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부러 응달을 골라 희끗희끗하게 남은 눈을 보득보득 밟으며 걸어간다. 나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는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향과 맛을 품은 제철 과일을 보는 재미도 즐긴다.
설향, 킹스베리, 비타베리 등 판매대에 진열된 딸기에 눈이 간다.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틈을 타 주인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만세! 하는 거, 그런 게 맛있는 거유.”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되물었다. “만세요?” “그 잎사귀 말이요, 그게 위로 솟은 걸 골라요. 쟤들도 만세! 하고 햇빛을 더 받은 애들이 당도가 높거든요.” 그제야 주인아저씨의 귀여운 표현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설향 딸기는 딱 요 때 먹어야 맛있어요. 가격도 괜찮고. 봄이 되면 더 싸긴 한데, 온도가 올라가면 쉽게 물러지고 맛도 떨어지니까 겨울에 먹어요.”
주인아저씨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노지 감귤을 하나 집어 주면서 덧붙였다. “요런 건 큰놈보다 탁구공만 한 게 훨씬 달아요. 워낙 얇아서 껍질 까는 게 성가셔서 그렇지 조끄마한 게 맛은 최고 좋아.” 나로서야 더 달고 신선한 과일을 사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주인아저씨나 농부 입장이라면 다를 것이다. 흠이 좀 있고 시든 과일도 품 안에 자식 같을 것이다.
덤으로 받은 귤을 까서 입안에 넣었다. 시원하고 새콤해서, 느글느글했던 배 속이 서서히 진정되는 것만 같았다. 새삼스레 신기했다. 참깨만큼 작은 씨앗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커다란 열매로 완성된다니. 이 열매 한 알에 팽창과 응축을 거듭한 자연의 태동이 다 들어 있다니. 수완 좋은 주인아저씨 덕분에 한 손에 설향 딸기를, 한 손에 노지 감귤을 사 들고 걸어간다. 양손이 묵직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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