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가득 문신한 여성이 미국 청소년 집회서 한 말… “하나님은 욕쟁이에 문신투성이라도 쓰신다”
손목에 희미한 자상 흔적이 여러 개인 한 10대 소녀가 양팔 가득 문신을 새긴 40대 여성의 옆좌석에 앉았다. 자신도 문신을 새기고 싶었다며 말문을 연 소녀는 손목만큼 상처 많은 자신의 삶을 토로한다. 편부모 가정에서 언니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온 소녀는 학교와 교회에선 구제 불능 외톨이 신세다. 여성은 자신도 학창시절 학업에 재능이 없다고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책도 몇 권 냈다고 일러준다. 또 자기 역시 외톨이었기에 소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미국 뉴올리언스행 비행기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한 이들의 목적지는 같았다. 2012년 뉴올리언스 슈퍼돔에서 열린 ‘루터교 전국 청소년 집회’다. 한 사람은 강사로, 다른 한 사람은 청중인 것만 달랐다. 여성의 이름은 나디아 볼즈웨버. 185㎝ 장신에 크로스핏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체형을 가졌다. 온몸엔 교회 예전(禮典)의 절기와 복음서 내용으로 가득한 문신이 새겨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알코올·마약중독자로 살다 회심 후 목회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해당 집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술과 마약에 빠져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던 저 같은 사람이 청소년에게 강연하는 건 분명 맞지 않다. 게다가 지금은 문신투성이에 욕설을 달고 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흠 많은 사람도 쓰신다는 것이다.” 열화와 같은 반응을 쏟아낸 청중을 뒤로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그는 비행기에서 만난 소녀를 떠올린다. ‘너 역시 나처럼 루터교인이야.’ 소녀 역시 자신이 그랬듯 강점뿐 아니라 상처까지 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책에는 그가 미국복음주의루터교회(ELCA) 목사 안수를 받기 1년 전인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콜로라도주 덴버에 세운 교회 ‘모든 죄인과 성인의 집’에서 목회한 단상이 담겼다. 전작 ‘여자 목사’가 근본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신앙을 잃고 각종 중독에 빠졌다 목회자가 된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책엔 저자의 교회를 찾은 온갖 인간 군상을 담았다. 우울증 환자와 불가지론자, 유니테리언(삼위일체와 예수의 신성 부인) 교인과 자살자 유가족 등 일견 교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저자의 교회를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가 성인(聖人)이 아닌 자신과 동일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매주 강단에서 그렇듯 저자는 책에서도 자신의 죄악과 실수를 선포하며 회개한다. 외모만으로 성도를 차별하며 시한부 환자의 부탁을 거절한 일, 총기 규제와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면서도 한편에선 이들 제도와 관습에 익숙함을 느낀 일, 분노 조절이 어려워 설교단에 오르지도 못하는 모습…. 목회자로서 밝히기 힘든 사연이 여럿 등장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꿋꿋이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고백하며 불가항력적인 하나님 은혜를 전한다. “단 한 번도 예수님은 거룩한 삶의 최고 모본을 뽑아 그분을 널리 전하게 하신 적이 없다. 그분은 늘 실패자와 죄인을 보내셨다. 그것이 내게 위로가 된다.”
세상의 각종 죄인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는 교회가 결코 ‘무균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책이다. “성인이 되는 건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죄인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렸다”는 저자의 고백은 복음의 본질과 맞닿아있다. 인간이 성스러워지는 건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에 달렸기에 기독교는 수많은 과오에도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소위 복음에는 무한한 자비의 위력이 있다. 그 어떤 부패와 그럴듯한 사이비 목사도 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 결국 여전히 (기독교에) 예수님이 남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더라도 읽다 보면 ‘어쩌다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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