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끝나지 않는 탈노조화 시대
7년 만에 국내 노조의 상승세가 꺾였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의 비율인 노조조직률이 전년보다 낮아진 것이다. 노동계 일각에서 이번 정부 들어 시작된 ‘노조 탄압’이 원인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지구적 시각에서 긴 흐름을 살펴보면 이런 반응은 착시에 가깝다.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들은 지난 30년간 일관되게 노조 조직률 하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노조 가입률이 뚝 떨어진 원인으로 꼽히는 건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세계화다. 세계화로 생산시설의 국외 이전(offshoring)이 가능해졌기에 노조의 극단적 파업에는 마찬가지로 극단적 대응책이 생겼다.
여기에 두 번째로 산업 변화까지 겹쳤다. 주요 선진국이 제조업 대신 고학력 화이트칼라가 필요한 첨단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며, 노조의 보호 필요성을 느끼는 노동자의 수 자체가 부쩍 줄었다. 본인들의 대체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해서다.
여기에 마지막 쐐기를 박은 게 글로벌 기업 간의 경쟁 심화다. 노조가 아무리 투쟁에서 이겨도, 내가 고용된 기업이 해외 경쟁 기업에 패퇴하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상처뿐인 가짜승리다.
국제경쟁에서 자국 기업이 쓰러지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결국 노동법들이 더욱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개정됐고, 그런 추이가 현재까지도 이어진 탓에 전 세계적으로 노조가 약화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30년 전인 1992년, 국내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6.4% 수준이었다. 같은 해 영국(36.2%)이나 독일(33.9%)보다도 낮은 건 물론, 같은 동아시아인 대만(48.1%)보다도 훨씬 낮다. 그런데 30년여가 지난 2021년엔 정작 그 격차가 좁혀졌다. 우리나라(14.2%)는 고작 2%P 정도의 하락을 겪었지만, OECD 국가의 평균 노조조직률이 12%P나 떨어지며 우리나라가 OECD 평균(15%)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탈노조화(deunionization)의 시대다.
놀라운 건 우리나라만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2018년부터 노조 조직률이 대폭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주된 원인은 문재인 정부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해 공공부문 노조원이 늘었고, 무노조 원칙을 주장하던 삼성그룹과 포스코도 정부 방침에 따라 노조를 인정하고 협상파트너로 삼아 민간부문 노조원도 늘었다. 노조 복구와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노동자 복리를 증진하려는 의도는 분명 진실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만 잠시 국가 간 경쟁에서 열외가 됐던 것에 가깝다. 세계화를 되돌리기 전엔 탈노조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우리끼리만 이를 되돌리자고 합의해도 큰 의미는 없다. 수출중심 경제에선 세계화를 피할 도리가 없어서다. 이제라도 현실을 바로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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