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쏟아진 선심성 정책·공약, 비판 더 담았어야
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46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위원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가 지난 23일 열렸다. 위원들은 최근 한 달간 중앙일보 지면과 디지털에 담겼던 기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새해를 맞아 독자위원회 위원장은 오세정 전 총장이 맡게 됐고, 위원으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김주형 서울대 교수,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가 새로 참여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대학 입학 관련 무전공 선발 기사를 2일 자 단독 기사(‘정원 25% 무전공 선발, 대학 학과 장벽 허문다’)를 시작으로 5일에 걸쳐 냈다. 그런데 기사에 너무 많은 익명의 정보원이 등장하는데, 이는 기사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이 문제는 교육부 또는 대학과 교수의 문제만이 아니다. 기사에 고교 교사나 학부모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자율전공(무전공)으로 현재 대학에 다니는 학생, 해외 관계자 등의 얘기를 폭넓게 전했으면 좋았을 거 같다.
7일 디지털에 단독으로 ‘김정숙 여사 ‘한동훈 인사 패싱’ 논란에, 한 “더 잘 인사하겠다”’는 기사가 나갔다. 정치적 편 가르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사를 통해 반응과 댓글을 합쳐 6000건에 달하는 ‘대립’을 양산해야 했느냐는 생각도 든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아트디렉터=4일 자 1, 3면 ‘“흉기는 나무젓가락”…증오 퍼나르는 음모론’ 기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과 관련해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알 권리’보다 중요해진 ‘알 가치’, 즉 거짓 정보들 속에서 ‘이런 것은 가짜뉴스다’라는 점을 제대로 짚었다.
16일 자 1면과 4면 ‘어린이집은 노인복지관으로, 결혼식장은 장례식장 됐다’는 사진 이미지를 굉장히 잘 쓴 사례다. 18일 자 20면 ‘수장고가 볼거리네 ‘속 보이는’ 박물관 떴다’의 경우 대체로 문화 기사는 비판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기사는 수장고형 미술관을 단순히 소개한 것이 아니라 해외 미술관·박물관 사례 및 이 같은 트렌드를 따라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전문가의 우려까지 담긴 좋은 기사였다.
▶김주형 서울대 교수=4월 총선이 임박한 시점인데도 공천과 선거법이라는 두 핵심 제도의 틀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최근 각 언론 보도에서 아쉬운 점은 제도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는 방향으로 기사를 구성하기보다는 휘발성이 강한 정치권 반응이나 자극적인 논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22일 자 6면 ‘“국민 알 필요 없다”는 준연동형…300석 맞추려 나온 변칙제도’ 기사는 선거제도의 변천사와 논점에 대한 소개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단 기사가 워낙 짧다 보니 한국식 준연동제라는 복잡한 제도를 독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추가로 “국민은 알 필요 없다”는 정치인의 발언을 기사 제목에 담는 게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18일 자 1면 ‘1000만원 내니 출마용 300쪽 책 뚝딱’은 총선 출마자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한 기사였다. 앞으로 출판기념회는 금지하되 정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일지를 다루는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심성 정책이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12일 자 3면 ‘당정 “5월까지 빚 다 갚으면 연체기록 삭제”’, 15일 자 3면 ‘당정 “자영업자 이자 150만원 경감”…여권 일각 잇단 포퓰리즘 우려’ 등은 비판 기사라기보다는 이를 자세히 설명한 뒤 기사 말미에 선심성 대책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아쉬웠다.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3일 자 6면 ‘금융투자세 폐지 K 디스카운트 해소’ 기사와 관련해 부자 감세, 건전재정 추진과의 상충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금융투자세 도입으로 세금을 내는 대상을 단순히 고액 자산가로 보기엔 적용 규모가 작고, 부동산 자본 소득과 비교했을 때도 기준점이 낮다. 오히려 일반 투자자들이 자본시장 참여를 꺼리게 하는 심리적 효과가 커 전반적인 시장 침체를 부르고 부동산시장 과열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등의 균형 잡힌 의견이 반영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3일 자 8면 ‘무전공 선발 추진에 “인문대 사라질라” “학생엔 좋은 정책”’ 기사와 관련해 사실 입시 과열과 명문대 중심의 현행 입시 문제의 본질은 사회 시스템에 만연된 학연의 고리와 특정 학과의 제도적 특혜다. 근시안적인 제도 변경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줬으면 좋겠다.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배우 이선균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자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이번 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에 공감하나 언론과 미디어 역시 책임이 크다. 잘못된 보도 관행을 지적하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올해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없다. 앞으로도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합당한 설명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12일을 전후해 CES 2024 관련 기사를 집중 보도했다. 그런데 인공지능(AI)과 모빌리티의 결합과 관련된 이슈만 연일 보도하다 보니 이번 CES에 다양한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입체적인 보도가 아쉬웠다.
미국 대선 기사가 연일 실리는데 과거보다는 전문성이 진일보했고 진중하게 보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김정은 70년 남북관계 버렸다…미 대선 노린 전쟁팔이’ 기사는 미 대선과 최근 김정은의 위협 발언을 연결, 논리적으로 분석해 혼란스러워하는 많은 독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1일 자 12면에 ‘새해 소망은 출산율 반등’ 제목의 기사를 썼다. 최근 조영태 저출산위원회 위원의 사퇴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저출산에 ‘대응’해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에 치중하기보다는 인구 감소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가 앞으로 균형 잡힌 기사를 통해 토론의 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13일 대만 선거를 전후해 많은 보도가 나왔는데 두 개의 좋은 기사가 눈에 띄었다. 12일 자 1면 ‘독립이든 통일이든 관심 없다. 집값 해결하라는 대만 MZ 세대’는 많은 언론이 민진당 승리는 친미, 국민당 승리는 친중의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실제 대만 사람들, 특히 MZ 세대는 민생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잘 지적했다. 또 민진당 승리로 대만 국민이 반중을 택했고, 전쟁 가능성이 커졌다는 식의 보도가 아니라 총통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가 60%이며 의회 역시 여소야대라는 점을 짚어 이번 선거의 함의를 잘 전달했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CES 보도와 관련해 한국 기업 또는 대기업 총수 중심의 지면 배치는 아쉬웠다. CES 기조연설에 총수들이 몰렸다는 기사는 있지만 정작 연설 내용 분석 같은 세계적인 추세를 보여주는 기사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22일 자 오피니언 면에 ‘K파티 CES를 바라보며’라는 취재 후기가 실렸다. 혁신상에 드는 비용, 부스 지원금 등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기초단체장 인터뷰가 관련 지면에 나왔는데 혹시 혈세 낭비 아닌가에 대한 지적 등 비판적인 내용이 CES 폐막 후 타지에는 나왔는데 뒤늦게 보도됐다.
CES와 같은 국제행사에서는 외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재밌는 경우가 많은데 16일 자 1면 ‘CES 대신 바이오 택한 젠슨 황, “AI 활용, 신약 개발”’ 단독 기사는 인상 깊었다. 이와 관련, CES를 소개하는 디지털 〈팩플〉 기사의 관점과 내러티브를 지면에도 적극 반영했으면 좋겠다.
▶오세정 위원장=현재 노동과 연금개혁은 대체로 개혁 방향이 정해졌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방향이 모이지 않았다. 중앙일보가 전문가들을 모아 큰 줄기를 잡으면 좋겠다. CES에 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많이 참석했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과연 내실이 있는가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취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전공 선발과 관련해 카이스트 등 몇몇 대학이 이미 시행 중이다. 카이스트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문제점은 없는지를 취재해 기사로 전달하면 좋겠다.
정리=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임수지 인턴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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