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행정상 구금에 대한 국가의 보상입법 의무 없어"
외국인 청구 헌법소원심판 '각하'
형사소송 절차가 아닌 출입국관리법상 보호처분 등 행정상 구금에 대한 국가의 보상의무를 규정한 법률을 제정할 헌법상 입법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형사소송 절차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피고인의 미결구금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 형사보상법이나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국가배상법 외에 별도로 이 같은 법을 만들 국가의 의무가 헌법해석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25일 헌재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거나 공항 송환 대기실에 수용됐던 외국인들이 위법한 구금에 대한 정부의 보상책임을 규정하지 않은 형사보상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와 출입국관리법에 대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각하는 헌법재판을 청구하기 위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청구가 부적법할 때 헌재가 본안에 관한 판단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내리는 형식 재판이다.
외국 국적의 청구인들은 한국에 들어오려다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거나 난민인정 신청을 하고 국내 체류하던 중 불법 취업활동을 하다가 적발돼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외국인보호소에 보호조치됐다. 또 다른 청구인은 위조된 초청장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입국심사에서 입국 불허 처분을 받고 공항 송환대기실에 수용됐다가 풀려났다.
형사보상법 제2조 1항은 무죄를 확정받은 피고인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구금당한 경우 국가가 이를 보상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청구인들은 행정상 구금의 경우에도 형사보상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보상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구금이 위법한 것으로 결론 나더라도 보상하지 않는 출입국관리법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헌재는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청구에 대해 "통상적인 법과 절차에 따른 행정상 구금의 경우까지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법 의무가 헌법 해석상 곧바로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라며 "국가배상제도 등 기존 입법을 통한 구제 절차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위법한 행정상 구금으로 인한 보상을 위한 법률을 제정할 의무가 헌법 해석상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10조 후문이나 신체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2조에서 국가가 위법하게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경우 그에 대한 보호를 위한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재는 "그러나 그 방법으로 통상적인 법과 절차에 따른 행정상 구금의 경우까지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위법한 행정상 구금에 대해 배상이 아닌 보상에 관한 법률까지 입법해야 하는 입법의무가 헌법해석상 곧바로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헌재는 ▲출입국관리에 관한 사항 중 외국인의 입국과 국내 체류에 관한 사항은 주권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서 광범위한 정책재량의 영역에 있다는 점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 그리고 출입국항에서 난민 심사가 진행 중인 외국인은 자진 귀국하거나 강제 송환되지 않는 한 공항 내 환승구역 등의 일정한 장소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인천국제공항 송환대기실에의 수용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인천국제공항 항공사운영협의회가 사실상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고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임차료를 부담하고 있었는데,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송환대기실의 운영을 국가가 담당하고 관리비용도 국가가 부담하도록 바뀐 점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의 규정 내용을 행정절차에 적용하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적법절차의 준수를 강제해 개인의 자유권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볼 것이지 자유권을 넘어 청구권의 내용으로 확장해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일반적인 헌법해석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형사보상법 관련 청구에 대해 헌재는 "형사보상법은 형사사법작용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마련된 것으로서 행정작용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라며 "결국 행정절차상 구금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입법자가 처음부터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입법자의 의사에 부합하는 해석이고 이는 행정절차상 구금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법률에 의한 보호가 필요한 영역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이 부분 심판청구는 성질상 형사보상법이 적용되지 않는 행정작용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자에 대해 형사보상법과 동일한 정도의 보상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입법을 해 달라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진정입법부작위를 다투는 것에 해당한다"라며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입법부작위는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하고 헌법재판소법 제68조 2항항에 의한 헌법소원에서 진정입법부작위를 다투는 것은 그 자체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입법자가 입법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입법부작위에는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데 전혀 입법의무를 다하지 않은, 즉 아예 법이 존재하지 않는 진정입법부작위와 법이 존재하지만 내용이 충분하지 않은 부진정입법부작위 등 두 유형이 있다.
이 가운데 헌법상 의무에 반해 국회가 입법의무를 다하지 않는 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 헌재법 제68조 1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기본권 침해형 헌법소원) 청구가 가능한 반면, 존재하는 법률의 위헌성이 문제가 되는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 헌재법 제68조 2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위헌심사형) 청구나 법률 자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나 헌재법 제68조 1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사안의 경우 행정상 구금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 법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진정입법부작위의 위헌성을 문제삼으면서 헌재법 제68조 1항이 아닌 같은 법 제68조 2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적법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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