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가상자산 포용 속도 내는데 국내 ‘하세월’…산업 육성 속도전 밀릴라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1.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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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증권 도입 기대↑…개정법은 ‘낮잠’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받으면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에 속도가 붙는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디지털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연관 산업에 연쇄 변화를 낳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는 물론 산업 관점에서 육성책을 펴는 미국 등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ETF 상장은 물론 투자도 막혀 있다. 금융당국은 시장 일각의 장밋빛 전망이 가상화폐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대통령실의 폭넓은 검토 지시로 거래 허용 가능성을 열어놓고 물밑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2년 허송세월 보낸 당국

각국 투자자 보호·산업 육성 병행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권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미국에 앞서 캐나다·독일·브라질·호주 등은 이미 2021년을 즈음해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을 승인했던 터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가상자산시장법(MiCA)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최근 은행의 스테이블코인(법정 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코인) 발행, 암호화폐를 통한 스타트업 자금 조달 등을 허용했다. 비트코인 채굴 금지령까지 내렸던 중국은 대체불가토큰(NFT) 거래가 가능한 국영 거래소를 출범시키고 홍콩을 전면 개방해 글로벌 가상자산 허브로 육성하겠다며 벼른다.

세계 각국이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산업 성장을 위한 물꼬를 터주려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어 한국도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 대응은 큰 혼란만 초래했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이미 2021년 이후 발 빠른 국내 투자자들은 캐나다, 호주, 독일 등에서 국내 금융사 중개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거래해왔다. 2년간 금융당국은 손 놓고 있다 미국에서 관련 상품 거래가 허용되자 부랴부랴 거래를 틀어막았다. 현재 국내 증권사를 통해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ETF는 사고팔 수 있지만, 현물 ETF는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해오던 증권사는 다급하게 거래를 중단했고 관련 상품 판매를 준비하던 금융사는 계획을 미뤄야 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ETF에 편입할 수 있는 기초자산에 포함되지 않아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정부는 2017년 1차 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 금융사의 가상자산 보유나 매입, 담보 취득, 지분 투자 등을 전면 금지했다. 이런 혼선을 두고 자산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금융당국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초래된 난맥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물론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섣불리 제도권 시장에 편입했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미 SEC 역시 그동안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거부해오다 미 연방법원이 재심사하라고 판결하면서 승인으로 돌아섰다. 세계 2위 자산운용사 뱅가드를 비롯 메릴린치, 씨티그룹 등이 비트코인 상품과 아직 거리를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가 모호한 상태가 지속돼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글로벌 금융 시장 흐름에서 도태돼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ICO(코인 상장)가 전면 금지된 가운데 역외에서 발행된 정체불명의 김치코인이 판치는 ‘투기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드세다.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처벌과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둔 ‘가산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올 7월에야 시행된다.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 규제, 사업자 진입 규제, 산업 육성 등을 아우르는 2단계 가상자산법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디지털자산 정당성 확보

증권가 STO 새 먹거리 기대

다만, 세계 금융의 기준이 되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이뤄진 만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자산 전반의 신뢰도가 높아져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비트코인이 확실히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 잡은 것 같다”며 “투자 자산으로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고 안정성이 있는지 시험해볼 시기가 됐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우선,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에 진입함에 따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CBDC는 은행이라는 별도 중개기관 없이도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상호 금융 거래를 손쉽게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CBDC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약 101개국에서 CBDC 도입을 검토 중이다. 최근 들어 단순 기초 연구를 넘어 실증 사업과 발행 추진이 본격화하는 중이다. 중국은 적극적인 상용화 실험과 함께 2029년 본원 통화의 15% 이상을 CBDC로 발행할 계획이다. 신석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BIS, IMF 등 글로벌 금융기관 수장 역시 최근 각국 CBDC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의 CBDC 연구 자체가 비트코인과 달리 가치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디지털 지급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중앙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올 들어 민간 기업과 계약을 맺어 기관용 CBDC 활용성 검증을 추진한다.

비트코인 상품 중개가 좌절됐지만 국내 금융사는 올해 토큰증권 발행(Security Token Offering·STO) 사업에 기대를 건다. 디지털자산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자산을 증권화하는 토큰증권 시장에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토큰증권이란 실물이나 금융 자산 지분을 쪼갠 뒤 블록체인 기술로 토큰(Token·특정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가상자산) 형태로 발행한 증권이다.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 가치를 디지털 토큰과 연계한 가상자산으로 보면 된다. 이자·배당 등 미래 수익, 실물 자산 등에 대한 지분 권리가 인정된다. 이런 토큰증권을 발행·유통하는 것을 STO라고 부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을 허용하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STO 시장 전망은 밝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STO 시장이 2024년 34조원에서 2030년 367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봤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글로벌 STO 시장 규모를 2030년 최소 16조달러에서 최대 68조달러로 추산했다. 국내 증권사는 STO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조각 투자 플랫폼 운영사, IT 기업 등과 다각도 협업을 통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다만, STO 역시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 완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혁신 금융 서비스에 한시적으로 제재 면제 조치를 내려주는 ‘샌드박스’를 통해 조각 투자 플랫폼 일부가 사업을 벌이지만 아직 소수다. 국회에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지만 총선을 앞둔 탓에 단기간 개정이 쉽지 않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STO를 활용한 다양한 투자 상품이 개발, 제공되면서 조각 투자 시장 확대와 신규 사업자 참여에 따른 경쟁도 증가가 예상된다”며 “국내와 유사한 방향으로 규제를 정립 중인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를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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