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표하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비관적 사유

임세정 2024. 1. 2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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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은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로 불린다.

자본주의의 대명사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 디에고 리베라, 그림을 저항과 연대의 무기로 삼았던 벤 샨,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에 항의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피카소 등 암울한 현실에서도 부정의에 저항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경식은 자신이 발견한 관용과 연대, 공감의 조각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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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264쪽, 1만8000원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로 불린다.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그는 경계인의 시각을 담아 현실에 대한 첨예하고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글로 옮겼다. 날카롭게 벼린 서경식의 글들은 많은 이들에게 벗이자 스승이 돼 주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은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그의 유작이다.

이 책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시리즈의 책들은 인문주의의 의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통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번 책에선 자유와 환대의 가치를 내건 미국이 대표하는 오늘날의 세계,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세계에 대한 사유가 담겨있다.

서경식은 이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6년, 학생운동 중 수감된 서승과 서준식의 구명 활동을 위해 미국을 오갔던 1980년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은 2020년을 오간다.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극심해진 세계에 염려를 표하는 동시에 그는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생각들을 전한다. 자본주의의 대명사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 디에고 리베라, 그림을 저항과 연대의 무기로 삼았던 벤 샨,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에 항의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피카소 등 암울한 현실에서도 부정의에 저항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경식은 자신이 발견한 관용과 연대, 공감의 조각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을 마치며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면서도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서경식은 1974년 와세다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케이자이대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에 연구교수로 머물며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2000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김대중학술상을 받았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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