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여행 내내 비오는 제주, 그래도 좋았던 이유

40년 다 된 제자 부부와 함께한 제주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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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 교래 자연휴양림 곶자왈 ⓒ 최승우

 
나는 퇴직 교사이다. 제자들과 눈 덮인 한라산 여행을 계획한 지 10개월 만에 여행이 현실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스승과 제자의 40년 가까운 인연이 제주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눈 덮인 한라산 등산이 버킷리스트의 하나라는 제자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모임이기도 했다. 단톡방을 만들어 여행 일정과 숙소, 렌터카를 빌리고 개인 준비물을 공유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가슴 벅찬 기대와 달리 일기가 우리 편이 아니다. 지난 19일부터 2박 3일 동안 여행 내내 제주는 비 소식이었다.

은퇴자인 나와 사업을 하는 제자는 여행 일정을 변경할 수 있으나, 직장을 다니는 두 명의 제자는 정해진 날짜에 여행할 수밖에 없다. 오래전 정한 여행 일정이라, 아쉽지만 날씨는 복불복이다. 안타까움에 기상 예측의 오류를 기대하나 이기적 욕심일 뿐 과학적 예측의 정확함을 넘어설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쉬움과 염려를 떨치고 기상에 순응해야 한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갑작스러운 기체 상승에서 오는 어지러움은 여전하다. 비행기 안은 등산복을 입은 사람, 아이와 엄마, 아빠의 가족 여행,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효도 여행 등으로 빈자리가 없다. 지상에 내리는 비와 무관하게 하늘 아래 하얀 구름은 천진난만했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연출되는 삶의 현장이다. 운전했던 제자가 갑자기 자동차 열쇠를 분실했다며 사색이 된다. 여기저기 뒤져보고 결국 자동차 뒷좌석에 얌전히 모셔진 것을 발견하고서 안심한다. 또 하나의 여행의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사려니 숲을 들러 숙소로 가기로 했다. 사려니 숲은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울창한 자연림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다. 키 높은 나무와 이끼가 어울린 나무숲의 몽환적 분위기가 내리는 비로 가려져 아쉬움이 남는다. 우중에 사려니 숲이 주는 신비한 분위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였으나, 어쩌면 예정된 여행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려는 의지를 다짐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교래 자연휴양림 ⓒ 최승우

 

숙소인 '교래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제주 곶자왈에 있는 숙소는 전통 초가집이다. 집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준다. 휴양림은 비록 2일 동안 묶을 임시 거처지만 집이 주는 안락함에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제자가 신고 있던 신발이 밑창이 떨어져 세상과 작별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탄생이다. 신발을 사러 제주시로 나간다. 이래저래 바쁜 하루이다. 시간이 지나면 제자가 겪었던 당황스러운 상황이 "이런 일도 있었네"라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중 산행에 나서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 한라산

새날 아침에도 가랑비는 지치지 않고 내린다. '우중 산행을 강행할 것인가?'의 선택의 시간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인 한라산 등산을 하기로 했다. 출발지인 영실 탐방소에는 많은 방문객으로 어수선하다. 어젯밤 오늘의 선택을 위해 많이 고민했을 탐방객 속에 우리도 있다.

힘차게 여행지로 출발, 다행히 빗방울은 가늘어졌으나 비와 눈으로 범벅이 된 땅이 질퍽하다. 수시로 안개 끼고 비바람이 부는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처음 비를 맞는 꿉꿉함이 문제이지, 시간이 지나면 견딜 만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안개와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모든 게 불편하다. 그러나 모든 일에 명암이 있는 법. 내린 비로 건너편에 보이는 병풍바위 사이에 두 개의 폭포가 제법 괜찮은 풍경을 연출하고, 매섭고 차가운 바람은 우리 걸음을 재촉한다.
 

▲ 영실 병풍바위 폭포 ⓒ 최승우

   
악천후를 뚫고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준비한 간식과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한라산의 최애 간식인 사발면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바나나와 초콜릿, 커피만으로도 일상의 감동을 넘어섰다. 남는 건 사진뿐 윗세오름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한 날의 기상 예보에 불만 가득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일기가 간간이 협조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모두들, 작지만 뭔가를 이뤄낸 듯한 행복한 표정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획했던 일을 무사히 마쳤으니 기분 좋은 일은 분명하다.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함덕 해수욕장은 비바람 치는 가운데도 특유의 맑은 물색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목표한 한라산 등산은 비바람 치는 함덕의 해변도 예쁘게 보이는 마법을 펼친다.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며 제자가 아침 인사를 건네온다. 웃음 띤 얼굴에 "수학여행 온 것 같아요."라는 말이 뒤따른다. 숙소 내 곶자왈을 둘러봤다. 돌이 많아서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나무와 덩굴들, 양치류 등이 우거져 있는 숲인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이며 샘물 저장소이다. 곶자왈은 인간 세계에서 보기 힘들어진 조화로움과 평안함을 주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가 주는 신선함도 있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으로 더욱 풍성하다. 곶자왈은 녹색의 신선함과 생명의 조화로움으로 여행의 피곤함을 날려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제주 동백 수목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꽃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지는 꽃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다. 동백은 떨어진 꽃잎마저 아름답기 그지없다. 방문객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붉은 꽃에 취해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제자 부부는 부부대로, 우리도 우리끼리 드문드문 부부 사진이 찍힌다.
 

▲ 제주 동백 수목원 ⓒ 최승우

   
공항으로 이동 중에도 변함없이 비가 내린다. 2박 3일의 여행에 대한 만족감으로 모두가 즐거움이 가득하다.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까?"라는 물음에 "지리산 천왕봉에 가면 어떨까요!"라는 답이 바로 돌아온다. 특별한 이견 없이 순식간에 여행지를 정했다.

오는 9월이면 또 다른 에피소드를 담은 지리산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힘든 산행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 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옅어지고 눈부시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만난 스승과 제자의 40년 가까운 인연, 우리의 만남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며 추억 제조 공장이다. 

짧고도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노모는 큰 탈 없이 건재하시고, 어항 속의 어린 구피도 씩씩하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여행의 기쁨으로 행복하고 하루하루 온전한 일상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