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혐오 시대” 꼬집은 ‘러브 윈즈 올’이 놓친 것

이은호 2024. 1. 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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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 이담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미움을 이긴다.” 가수 아이유가 지난해 2월 하퍼스바자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비슷한 또래의 동료 여성 연예인 두 명을 잃은 2019년 콘서트에서 한 말도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지더라도 사람끼리는 사랑하면 좋겠다”였다. 16세 때 데뷔한 아이유는 크게 사랑받은 만큼 시답잖은 이유로도 미움받았다. 어떤 괴롭힘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아이유가 “사랑이 이긴다는 명제는 삶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가 24일 발표한 ‘러브 윈즈 올’(Love wins all)은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확장한 노래다. 아이유는 소속사를 통해 “대혐오의 시대”에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곡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이 곡 뮤직비디오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도망치다 최후를 맞는 연인을 그린다. 아이유와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뷔가 주연했다.

“상상만 해오던 행복” 속에선 장애가 사라진다. ‘러브 윈즈 올’ 뮤직비디오 캡처

‘러브 윈즈 올’ 뮤비 속 정상성 이데올로기

뮤직비디오는 ‘사랑을 방해받는 이들’이자 차별과 억압의 대상자를 신체장애인으로 상정한다. 아이유는 음성언어 대신 수어를 쓴다. 뷔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둘은 “주인공들을 향한 차별”(아이유 소속사)을 형상화한 상자로부터 쫓긴다. 캠코더를 통해 본 세상은 다르다. 아이유는 수어를 쓰지 않고 뷔는 양 눈으로 본다. 아이유 소속사 측은 “캠코더가 찍히는 화면의 설정값은 폐허가 되기 전 멀쩡했던 세상”이며 “캠코더 속 세상에서 그들은 상상만 해오던 행복을 만끽한다”고 했다. 장애가 사라진 상태를 ‘정상’ 내지는 ‘행복’으로 상상한 셈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장애는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 조건이 아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장애인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가 설정한 한계이지 장애 그 자체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린 두 주인공의 멜로 드라마” 형태로 제작된 이 뮤직비디오가 “‘러브 윈즈 올’이란 제목과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는 해석이다. 영상에서 두 주인공을 뒤쫓는 차별(상자)은 추상적이다. 주인공들은 이를 피해 달아나는 비극적 희생자로 묘사됐다. 반면 현실에서 소수자들이 겪는 혐오는 구체적인 차별이며, 이에 대항한 승리는 투쟁으로써 이뤄진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장애 당사자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 요소”라며 “아이유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뷔가 가져가 휘둘러 보호자로서의 남성을 보여주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결혼으로 열매를 맺는 설정도 시스젠더-헤테로 이데올로기의 전형으로 읽혀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이유가 쓴 ‘러브 윈즈 올’ 소개글. 아이유는 ‘러브 윈즈 올’을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정치적 올바름 반영하려면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러브 윈즈 올’은 공개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아이유가 2년 만에 내놓는 신곡이라서만은 아니다. 이 곡의 원래 제목 ‘러브 윈즈’ 때문이었다. ‘러브 윈즈’는 미국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축하하며 나온 문구로 성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지지하는 구호로 쓰였다. 아이유가 신곡 제목을 ‘러브 윈즈’라고 알리며 이 곡을 팬들에게 바친다고 말하자 온라인에선 반발이 일었다.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항한 이 문장의 원래 의미가 희석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아이유는 “이 곡의 제목으로 인해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수용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두를 더욱 존중하고 응원하고자 한다”며 노래 제목을 바꿨다.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가 놓인 위치를 보여줬다. “성소수자를 찬성 혹은 반대 구도로만 이해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담론 형성을 방해했다”(오수경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청어람 대표)는 분석이 나온다.

논란은 노래 제목을 바꾸는 것으로 마무리된 모양새다. 다만 소수자의 투쟁 언어를 누가 어떻게 쓰느냐는 숙제가 남았다. 오수경 대표는 “‘러브 윈즈’는 기독교에서 쓰인 용어를 LGBTQ+ 커뮤니티가 전유해 의미를 확장한 사례”라며 “그러나 ‘커밍아웃’을 변형한 ‘O밍아웃’, ‘미투’에서 파생한 ‘빚투’,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 이후 나온 ‘ALM’(All Lives Matter·모든 목숨은 중요하다) 등은 원래 용어가 탄생한 맥락을 무시해 논점을 흐렸다. 이미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장을 가져다 쓰려면 그 문장의 맥락을 훼손하지 않는 확장성을 가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도 “창작물에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하고자 할 땐 충분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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