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면접 탈락한 청각장애인, 벽을 넘다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기자말>
[최현정]
▲ 8일 장애인단체들은 공공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
ⓒ 신나리 |
장애인이 공무원 시험에 이르는 길
사건 내용에 앞서 공무원 임용시험이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용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심각하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29.5%로, 전체 인구 고용률 60.4%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장애 정도나 성별 등에 따라 격차가 크다. 중증장애인 취업 인구는 비중증장애인 취업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며, 장애여성 취업인구는 장애남성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사기업에 지원했다가 차별을 경험한 후 공공기관 취업을 알아보고, 결국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곤 한다. 적어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임용시험이라면 차별이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면접시험에서 차별적 질문을 제한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그런데 공무원 시험도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심진예 연구원의 2018년 <중앙행정기관 장애인공무원의 인사관리 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장애인 공무원 중 중증장애인 수는 비중증장애인의 5분의 1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애여성은 장애남성의 약 5분의 1 수준이었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장애인등록을 한 재가장애인 중에서 중증장애인은 37.5%, 비중증장애인은 62.5%이고, 장애여성은 42.2%, 장애남성은 57.8%이므로, 장애 정도 및 성별에 따른 장애인 공무원 수의 격차는 인구 통계와 맞지 않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의심되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면접시험이다. 면접시험에서는 응시자의 장애, 성별 등에 대한 정보가 면접위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면접위원이 응시자의 업무 능력이 아니라 장애나 성별 등에 대하여 질문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공공기관 면접시험에서 면접위원이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응시자에게 "축구는 할 수 있나요?"라고 묻거나, 임기제공무원 면접시험에서 여성 응시자에게 "결혼을 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이 사례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로 인정한 실제 사례이다. 면접위원이 응시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응시자는 자신의 장애, 성별 등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위축되기 쉽다. 이런 질문은 그 질문을 하지 않은 다른 면접위원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면접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업무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더구나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면접시험은 임용의 최종 관문으로, 그 결과에 따라 필기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별적 질문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몇몇 공무원 임용시험의 경우, 면접시험 전에 업무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질문을 미리 개발하여 면접위원들이 응시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도록 한다. 이런 방식은 차별적 질문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사혁신처가 실시하는 중증장애인 국가공무원 경력채용시험에서는 면접시험 전에 면접위원 교육을 실시한다.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 자격이 있거나 면접위원 참여 경험이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종사자가 면접위원을 교육한다. 교육 내용에는 기본적인 장애 유형 및 특성에 대한 안내와 함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사용자의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에 대한 개괄적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면접에서의 미흡한 편의 제공과 면접위원의 차별적 질문
앞서 본 수원고등법원 판결의 원고 B씨는 구어를 사용하는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구어는 상대방의 입모양을 통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도 음성언어로 말하는 의사소통방식이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한국수어 활용 조사>에 따르면, 주된 의사소통 방식이 수어인 청각장애인은 54.2%, 그 외의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은 45.8%로 나타난다. 수어 외에도 구어, 보청기, 필담 또는 손짓이나 몸짓(홈사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B씨는 2018년 A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에 지원했다. A시는 이 직렬에서 2명을 선발하겠다고 공고했다. B씨는 이 직렬의 유일한 필기시험 합격자였으므로, 면접시험에서 '보통' 이상의 등급을 받으면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면접시험 결과는 △우수, △보통, △미흡으로 평가된다. '우수' 등급을 받으면 필기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합격하고, '보통' 등급을 받으면 필기시험 성적 순서대로 합격하며, '미흡' 등급을 받으면 필기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탈락한다.
한편 A시는 장애인 응시자가 면접시험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편의에 대해서는 공고하지 않았다. 문의방법에는 유선 전화번호만 안내되어 있어서, 전화통화가 어려운 B씨 대신 B씨의 어머니가 A시 담당자와 몇 차례 통화해 문자통역을 통해 면접시험을 치르기로 협의했다. A시는 시험 전 면접위원에게 B씨의 장애 특성을 "수화불가능"이나 "대화 및 수화불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최초 면접시험에서 면접위원들은 B씨에게 '집·학교에서의 소통 방법', '수화를 배우지 않은 이유', '동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SNS를 쓸 줄 모르는 민원인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지', '장애 때문에 오해와 갈등이 있었던 경험'을 질문했다. 그리고 면접위원들은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항목을 '하'로 평가했고, 이에 따라 B씨는 '미흡' 등급을 받았다. 추가 면접시험의 면접위원들도 같은 항목을 '하'로 평가하여 '미흡' 등급을 부여했다. B씨는 최종 탈락했다.
B씨는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째, 사전 협의를 했으나 과연 B씨에게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둘째, 면접위원이 B씨에게 했던 장애 관련 질문은 차별로서 금지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에 대하여 1, 2심 법원은 정반대의 답을 내놨다.
동등한 기회를 위한 조건, 정당한 편의 제공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면접시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 제공이 필요하다.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제도이다. 그리고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시험 실시 기관은 시험 공고와 함께 편의 제공에 대해 공고할 의무가 있다.
A시가 면접시험의 편의 제공에 대해 공고하지 않았으므로 B씨는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편의인 문자통역만을 요청하여 지원받았다. 관련 법령은 청각장애인 응시자에게 지원 가능한 편의로서 면접시험 시간 연장, 면접위원에게 장애 특성 사전 고지 등을 규정한다. 문자통역을 거치는 경우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면접시험 시간을 연장해야 한다. 또한 응시자는 자신의 장애 특성을 미리 면접위원에게 고지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1심 법원은 B씨의 어머니가 신청한 편의가 대부분 제공되었으므로 B씨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고, A시가 면접위원에게 "수화 불가능", "대화 및 수화불가능"이라고 사전 고지한 것만으로는 면접위원들에게 부당한 선입견을 심어주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수원고등법원은 A시가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A시가 편의 제공에 대해 공고하지 않아 B씨는 어떤 편의를 신청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면접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었으므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시험 시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몰랐던 B씨는 빨리 답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급함 속에서 면접시험을 치러야 했다. A시는 질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정도의 속기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아닌 일반 공무원으로 하여금 문자통역을 담당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B씨는 비장애인 응시자와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한편 "수화불가능"과 같은 사전고지는 면접위원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갖게 할 수 있어 장애 특성 사전 고지 제도의 취지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면접위원이 장애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응시자에게 차별적인 질문을 하거나 응시자의 장애 종류 및 정도에 관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 바로 그 취지라는 것이다.
면접시험은 응시자의 장애가 아니라 직무능력을 평가해야
'동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등 면접위원의 질문에 대해서도 1심 법원은 차별적이지 않다고 보았으나 수원고등법원은 차별임을 인정했다. 수원고등법원은 "청각장애인 공무원은 근로지원인으로부터 대화·전화통화 지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고, 위와 같은 편의 제공 의무는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는 점에서 위 질문들은 원고가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공무원으로서 수행할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질문은 B씨의 직무능력이 아니라 장애를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위법하다는 것이다.
"면접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에게 장애에 대한 내용을 질문하는 것은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내용을 물어보는 것으로서 장애인과 장애가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질문은 면접위원의 의도와 관계없이 다른 면접위원에게 장애인 응시자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장애인 응시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질문에 할애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장애인 응시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애인 응시자에게 장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수원고등법원 판결문)
이 변화가 더 확산될 수 있기를
판결 후 A시는 상고하지 않고 재면접 절차를 진행했다. 재면접 절차에서는 면접시험에서의 편의 제공에 대해 충실히 안내했고, B씨가 신청한 편의를 모두 제공했다. 그 중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면접시험 전에 면접위원들을 교육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B씨는 마침내 최종 합격했다.
B씨는 항소 제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장애인에게도 고용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같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더불어 사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B씨의 바람처럼, 수원고등법원 판결은 그 후 다른 사건에서 차별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경기도 C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서 면접위원이 정신장애인 응시자에게 장애 관련 질문을 여러 차례 한 것이 차별임을 인정하고 불합격처분을 취소한 판결이 있었고, 이 판결은 2023년 12월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2024년 1월에는 서울행정법원이 법원행정처가 실시하는 법원직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면접위원이 언어장애가 있는 응시자에게 언어장애 관련 질문을 여러 차례 하고 불합격처분을 한 사건에 대하여, 차별을 인정하고 불합격처분을 취소했다.
기대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 변화를 더 확산시키는 것이 남은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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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현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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