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사과할 기회들' 날린 윤 대통령, 이번에도?
[신정섭 기자]
▲ 윤석열 대통령, 의정부 제일시장 방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실수하는 건 인간이고, 용서하는 건 신이다)"란 말이 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An Essay on Criticism이란 시에 적은 표현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잘못했다는 말을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먼저 사과하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통령 자신과 가족 관련해선 크게 세 번의 잘못을 저질렀으나, 단 한 번도 국민 앞에 사과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네 번째 사과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친다면 민심의 이반(離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 번의 잃어버린 기회와 한 번의 찾아온 기회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윤 대통령은 첫 번째 기회를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일었을 때 놓쳤다. 지난 2022년 9월 21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를 마친 뒤,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당시 ○○○○를 '바이든은'이라고 자막을 달아 보도했고, 김은혜 당시 홍보수석은 "대통령은 '날리면'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해명했다. 온 국민이 때아닌 듣기평가를 치르게 됐는데, 정작 '킬러문항' 출제자인 윤 대통령은 침묵했다. 지난 12일 서울서부지법 재판부가 외교부 손을 들어주었지만, (설사 '날리면'이라 해도) 비속어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통령은 그때 "비록 회의장 밖에서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적절치 못한 비속어를 사용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날린 기회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찾아온 두 번째 사과 기회도 잡지 않았다. 그날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이라고 해서 본인 과실이 아닌 장모의 범죄 행위에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JTBC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정진석 의원 등을 만나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거짓말을 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아무런 입장도 안 밝힌 것은 잘못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그날, 대통령은 "장모님이 사기 피해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송구스럽습니다. 후보 시절 뜻하지 않게 잘못된 주장을 한 데 대해 국민께 사과드립니다"라고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윤 대통령이 세 번째 사과 기회를 날린 것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언론 보도가 나온 때였다. 지난 11일 저녁 8시 <뉴스타파>는 도이치모터스 사건 1심 판결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이 재판부에 제출한 마지막 검찰 의견서를 토대로, "김건희씨는 13억 9천만 원, 장모 최씨는 9억 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고 보도했다. 검찰 의견서는 2022년 12월 30일에 제출되었고, 당시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 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다.
▲ 지난해(2023) 대통령실 사진 뉴스에 등장한 김건희(대통령 부인)의 모습. 이 사진 이후로 지금(2024.1.23.)까지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친 적이 없다. 사진은 네덜란드 방문 마치고 서울공항 도착 행사 모습. |
ⓒ 대통령실 |
세 번에 걸쳐 적기(golden-time)를 놓친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네 번째 사과 기회를 붙잡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러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달 안으로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관해 직접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과'가 아닌 '설명'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불거진 윤-한 갈등 사태 등을 통해 추론할 수 있듯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은 윤 대통령에게 '역린(逆鱗)'으로 여겨지는 듯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당수 언론이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와의 대담을 통해, 김건희 여사가 부적절한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제2부속실 설치 등의 보완책을 통해 불미스러운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도의 설명 또는 해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과, 설명, 해명의 뜻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사과(謝過):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설명(說明):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해명(解明): 까닭이나 내용을 풀어서 밝힘
사과는 잘못을 전제로 하지만, 설명이나 해명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잘못을 돌리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설명이나 해명보다 사과가 먼저다. 그게 상대방의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상대방이 국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과해야 할 때 설명으로 퉁치는 '용산 사투리'를 국민이 용납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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