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안, 3.6% ‘막차’라도 타자”…새해 10조 몰린 정기예금
새해 들어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10조가 넘는 자금이 몰렸다. 지난해 4%대였던 예금 금리는 최근 3% 중반으로 하락했지만, 더 떨어지기 전에 ‘막차’에 올라탄 예테크(예금+재테크)족이 늘면서다. 중동ㆍ대만 등지의 불안한 정세, 미국의 금리인하 지연 등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5일 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법인자금 포함)은 이달 23일 기준 679조1214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668조3031억원)대비 한 달여 만에 10조8183억원 불어났다. 지난달 전월 대비 4조5849억원 감소했다가 새해 들어 늘어난 것이다.
이와 달리 주식시장엔 찬바람이 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 60조원 가까이 쏠렸던 투자자예탁금은 이달 24일 기준 49조780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 거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둔 돈을 의미한다.
예테크족이 새해부터 은행으로 향하는 데는 예금 금리가 더 떨어지기 전에 3.6% 금리라도 누리겠다는 전략이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지난 23일 기준 연 3.5~3.6%다. 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연 3.6%)’, 국민은행의 ‘KB스타 정기예금(연 3.55%)’,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연 3.55%)’ 등의 최고 금리는 3.5% 이상이다.
지난해 11월 4% 초반이었던 정기예금 금리가 현재 3% 중반으로 하락한 데는 시중은행의 또 다른 조달창구인 은행채의 금리가 내린 영향이 크다. 1년 만기 은행채(AAA) 금리는 두 달 전 연 4.044%에서 현재(25일 기준) 연 3.603%까지 미끄러졌다.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미리 반영되면서다. 은행채 금리가 하락하면 자금조달 부담이 완화된 은행은 수신 금리 경쟁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의 위험회피 심리가 살아난 것도 안전자산으로 꼽는 정기예금에 돈이 몰리는 이유다. 중동ㆍ대만ㆍ북한 등지의 불안한 정세로 지정학적 위험은 커지는 데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도 지연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폭이 커진 게 불쏘시개가 됐다. 최근 중국 부동산 시장과 소비 부진으로 홍콩H지수가 폭락한 게 원인이다. 은행업계에선 상반기 10조원 상당의 홍콩 ELS 상품 만기가 돌아오는 가운데 원금 손실만 6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위축된 투자심리는 국내 증시에 반영됐다. 25일 코스피는 연초 후 7.5% 급락해 2470.34에 장을 마쳤다.
익명을 요구한 A 은행의 예금 상품 담당자는 “최근 국내 증시가 빠르게 얼어붙자 자금을 정기예금으로 옮기는 투자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시장이 불안하다 보니 3% 중반대 금리라도 챙기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재테크 새 판을 짤 투자자 입장에선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마땅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 게 이유다. 전문가들은 투자 성향이 보수적인 투자자라면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대비해 정기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현금성 자산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희수 신한PWM 일산센터 부지점장(PB)은 “올해 기준금리가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며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3% 중반대 이자(금리)를 챙길 수 있게 정기예금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연초 움츠렸던 투자 심리가 상반기 내 회복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반도체ㆍ자동차 업종 중심으로 수출 흐름이 개선되고, (국내 증시와 연관성이 높은) 중국은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며 “이런 호재가 쌓이면서 국내 증시는 1분기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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