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노력할 필요 없는 세상이면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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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90년대.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이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 발전 5단계설'에 매료됐다.
공산주의 이론가였던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물질 생산력의 계속된 발전 과정'이라고 설파했다.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마르크스 당대와 이후의 세상이 '원시 공동체 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제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공산사회'로 변화·발전할 것이란 게 그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의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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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기자]
▲ 남한 장편소설 <무한복제기계>. |
ⓒ 예옥출판사 |
1970~1990년대.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이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 발전 5단계설'에 매료됐다.
공산주의 이론가였던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물질 생산력의 계속된 발전 과정'이라고 설파했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단어도 함께 언급됐다.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마르크스 당대와 이후의 세상이 '원시 공동체 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제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공산사회'로 변화·발전할 것이란 게 그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의 요체.
인간이 만들어갈 역사의 최종 지점, 마지막 단계가 공산주의사회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와 동유럽,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의 일부 국가에서 '혁명' 또는 '혁명 수출'이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게 "실패했거나, 실패에 가까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 "온전한 공산사회는 아직 형성된 적이 없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공산주의사회를 축조하다
최근 출간된 한 편의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공산 사회의 형성'과 마침내 도달한 '유산자와 무산자가 없는, 인간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대와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작가 남한(59)의 <무한복제기계>가 바로 그것.
소설 <무한복제기계>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수십 개의 기업을 소유한 거부(巨富)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과학자에게 '세상 모든 것을 복제할 수 있는 기계'의 제작을 의뢰한다. 천문학적 돈이 사용된 이 프로젝트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똑같이 복제해낼 수 있는 기계 '오메가'가 만들어진다. 더 이상 값비싼 보석과 명품 시계, 커다란 아파트와 모피 코트를 가지려고 서로 다투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유'라는 개념이 증발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소유권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누구는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론을 벌이는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소설가 남한은,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공산사회로 변화하는 단계엔 획기적 기술의 발달이나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격변이 수반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평가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터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변화·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마르크스조차 농업기술의 비약적 발전, 방직기계의 발명처럼 사회 구조를 바닥에서부터 최상위까지 모조리 바꿀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 소설 작가의 생각이다.
<자본론>에 이어 <공산당 선언>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막연한 '의지주의'로 전락해버린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소유'라는 개념이 사라진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소설 <무한복제기계>는 세상의 모든 재화를 끝없이 만들어내 그걸 원하는 누구나 나눠 쓸 수 있게 하는 기계의 탄생이라는 혁명적 변화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축조된 공산사회의 모습을 서술·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걸 무한으로 복제해 낼 수 있는 기계'는 인간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현재의 자본주의사회를 마르크스가 말한 바 평등한 공산주의사회로 건너가게 만들어줄까?
태어나 단 한 번도 설거지나 청소를 해본 적이 없는 재벌의 아내와 일생 남의 집 가사를 대신해주며 살아온 노동자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돈을 포함한 일체의 재화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선한 의지가 발현되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어둡고 습한 디스토피아일까?
남한의 <무한복제기계>는 독자들을 끝없는 질문 속으로 던져 넣는다. 책이란 인간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중고교 시절부터 올더스 헉슬리, 조지 웰스, 도스토옙스키, 조지 오웰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는 남한은 2006년 문예지 <문학수첩>을 통해 등단했고, 2008년엔 소설집 <유다와 세 번째 인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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