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 처벌한다고 사고가 없어지나” 중대재해법 적용에 ‘한숨’

김용현,김재환 2024. 1. 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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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식당·공장 등 영세사업장, 법 적용 몰라...걱정 토로
“인센티브 있는 것도 아닌데 책임만...5인 고용 더 줄여야 하나 고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4단계 건설사업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국민일보 DB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25일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는 27일부터 중소기업뿐 아니라 5인 이상을 고용한 빵집과 찜질방, 식당 등 전국 83만여 사업장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직원 5인 이상을 고용하는 제조업 공장 등 영세 사업장 다수는 중대재해법 대비는커녕 확대 시행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상인들은 “업주를 처벌한다고 있던 사고가 없어지나”고 반문하며 “사업하기 정말 힘들다”고 했다.

법 적용 몰랐던 식당 사장 “사업 그만 하라는 건가”

1976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장사를 해 온 식당점주 A씨는 중대재해법을 잘 알지 못했다. A씨 업장의 직원은 총 17명이라 법 적용 대상이다. A씨는 “직원들은 4대 보험이 적용돼 상해를 입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사장이 직접 관련 없는 일에도 법적 책임을 따진다니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A씨는 “식당을 운영하면 직원뿐만 아니라 손님간에도 사건사고가 정말 많이 발생한다”며 “최근에는 식당에서 넘어져 이빨이 깨진 손님에게 임플란트 비용을 일부 내준 경우도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1명 이상 사망하거나 부상·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고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법안이다. A씨가 언급한 임플란트 비용 배상 사례 등은 중대재해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만큼 법 내용에 대한 소상공인의 이해도가 낮은 셈이다.

이번에 새롭게 중대재해법을 적용 받는 사업장은 총 83만7000곳으로 전체 사업장의 24%에 이른다. 종사자는 800만명이다. 그러나 업주들이 대부분 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고, 알더라도 준비가 안 돼 큰 혼란이 예상된다.

5인 사업장 “4인으로 줄여야 하나” 고용 위축 우려

법 적용 소식을 접한 5인 이상 사업장 일부에선 직원 숫자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5인 미만의 직원을 쓸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아예 고용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손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서울의 한 삼계탕 전문식당 점주 B씨는 “현재 직원 4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성수기인 6~8월에는 바빠서 3명 정도 더 데리고 있었다”며 “식당을 항상 지키고 있기도 어렵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법 적용이 되면 여름 장사 때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카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장수 카페사장연합회 대표는 “카페 중에는 5인 내외로 직원을 고용하는 사업장이 정말 많다. 사업주 사이에서는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5인에서 4인으로 고용을 줄여야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사람 더 채용한다고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아닌데 가능성이 적더라도 처벌 위험까지 감수할 자영업자가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영세 제조업 공장 사고 위험 커졌는데…

위험한 장비를 다루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은 소규모 제조업에선 과거보다 열악해진 근무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 7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금속 제조업체 직원 최모(61)씨는 “요즘 제조업 쪽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기계를 돌리는 공장은 항상 위험이 따르고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며 “외국인들과는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이들이 책임도 잘 안 지려고 한다. 과거보다 사고가 날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금속 제조업체 내부 모습. 김재환 기자

그러면서 “당연히 우리 입장에선 안전 강화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게 사업주를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안전장비나 교육도 하나 없는데 이걸 바꾸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업주만 처벌한다고 사고 위험성이 늘 있는 공장에서 사람 다치고 죽는 사고가 아예 안 일어나겠나”라고 반문했다.

‘탈한국’ 자영업자 해외 진출 가속화 우려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국민일보 DB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확대되면 일부 자영업자들이 국내를 벗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 사업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박준선 한국자영업중기연합회 사무총장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해외를 떠났는데, 이제는 자영업자들도 해외로 떠나는 상황”이라며 “규제가 커지고 있는 만큼, 갑자기 한국을 떠나는 부담을 감수하고 해외 진출을 고민을 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 사무총장은 “필리핀을 비롯한 일부 동남아 지역이 인건비도 싸고 자영업을 하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라며 “국내에서 중대재해법을 비롯한 규제가 더 늘어날 경우 자영업 인력의 해외 유출 가속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용현 김재환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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