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휩싸인 ‘고거전’… 원작과 달라서? 시청자는 ‘방향성’ 지적

정진영 2024. 1. 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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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란 평을 받으며 순항하던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논란에 휩싸였다.

표면적으로는 KBS 측에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판권과 자문을 제공하기로 한 길승수 작가와 드라마 제작진이 드라마의 각색을 두고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작품 후반부 들어 길을 잃은 스토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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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포스터. KBS 제공


‘웰메이드’란 평을 받으며 순항하던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논란에 휩싸였다. 표면적으로는 KBS 측에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판권과 자문을 제공하기로 한 길승수 작가와 드라마 제작진이 드라마의 각색을 두고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작품 후반부 들어 길을 잃은 스토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은 드라마의 17, 18회가 방영된 이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강감찬(최수종)과 대립하던 현종(김동준)이 분을 참지 못한 채 말을 타다 수레와 부딪혀 떨어지는 장면이 도화선이 됐다. 이전까지 어리지만 소신 있는 왕으로 그려졌던 현종이 후반부에 들어서며 철없는 인물로 바뀐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불을 붙인 건 18회의 현종 낙마 장면이었지만, 이후에도 여러 장면이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현종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총애를 받았던 원정왕후(이시아)는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버렸고, 냉철하고 임기응변에 능했던 강감찬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전쟁만을 쫓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또 황후들의 궁중 암투 비중이 커지면서 시청자들은 후반부 서사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18회에서 말을 타고 가다 떨어진 현종(김동준). KBS '고려거란전쟁' 방송 캡처.


이 과정에서 길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고려거란전쟁’을 비판했다. 변화한 인물들과 극화된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서 너무 벗어나버렸다는 것이다. 길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극본을 썼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16회까지는 그래도 원작 테두리에서 있었는데, 17회부터 (작가가) 완전히 자기 작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려거란전쟁’ 전우성 감독과 이정우 작가는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거란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며 “1회부터 원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고 반박했다. 길 작가와 제작진의 논쟁은 ‘드라마가 원작을 어느 정도 따라야 하는가’하는 문제로 번진 셈이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은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할 전개가 펼쳐지며 재미가 반감됐다는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25일 “실제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것만 아니라면 정통사극이라 해도 작가의 상상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드라마 내적으로 인물의 변화나 사건의 재해석을 얼마나 일관되고 논리적으로 펼쳐나가느냐는 작가의 역량이다. 여기서 문제가 지적된다면 작가가 드라마의 유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규(지승현)가 거란군과 싸우다 전사하는 모습. KBS 제공


꼼꼼히 고증된 역사적 사실들과 실감 나는 전투 장면 등을 전반부에 보여주며 ‘고려거란전쟁’을 향한 시청자의 기대와 만족이 컸던 만큼 실망감 역시 크게 표출되는 모양새다. 시청자들은 트럭 시위를 벌이자며 의견을 모으고, KBS엔 ‘드라마 작가 교체’나 ‘방영 일시 중단’ 등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고 있다. 제작진은 “드라마의 경우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기에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거란전쟁’만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리메이크 자체가 재밌었다면 이런 얘긴 나오지 않았을 거다. 결국 드라마가 재밌냐, 재미없냐의 문제”라며 “‘고려거란전쟁’이 초반에 보여줬던 흐름과 거란의 1차 침공 후 현종이 만들어내는 강감찬과의 대립 구도, 늘어난 궁중 암투 같은 것이 시청자에겐 ‘결이 다르다,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거다. 대중은 전쟁을 중심에 둔 이야기로 풀어가길 원했는데, 이런 부분에서 대중과 소통이 잘 안된 것 같다”고 짚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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