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철도법' 초고속 국회 통과…여야 '예타면제 공식' 만들었다

정진호 2024. 1. 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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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철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4조원 넘는 돈을 들여 광주~대구를 잇는 철도를 연결한다. 경제·사업성 등을 따져보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슷한 예타 면제 법안이 국회를 통해 얼마든 추진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틀 만에 법사위, 본회의 통과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2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수정)이 가결 되고 있다. 전민규 기자
25일 국회 본회의 재석의원 216명 중 211명이 찬성하면서 달빛철도특별법이 가결됐다. 전날 법사위에 이어 본회의 문턱까지 넘는 데 단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야 모두 이견을 보이지 않으면서다. 앞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여론에 밀려 ‘복선’과 ‘고속’은 빠졌지만 여전히 4조5158억원이 소요된다. 물가 상승 등 영향으로 실제 공사 과정에선 이보다 많은 예산이 들어갈 전망이다.

달빛철도사업 경제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통상 1.0이 넘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비용·편익분석 수치가 0.483에 그쳤다. 전남 담양, 전북 순창·남원·장수, 경남 함양·거창·합천, 경북 고령 등 열차가 정차하는 지역이 모두 인구 감소지역이다.


‘예타 면제 공식’ 생겼다


달빛철도 특별법까지 국회를 통과하면서 ‘여야 의원 합심→법안 발의→예타 면제’가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법안이 또다시 국회에 올라왔을 때 이를 막을 명분이 희박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예타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달빛은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애써 기재부나 국토교통부 등 소관 부처를 설득하는데 애쓸 이유도 없어졌다.

기재부도 예타 면제 자체를 우려한다. 전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최한경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의 신규 노선 44개 중 1개일 뿐”이라며 “다른 노선은 예타를 마쳤거나 진행 중인데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철도 노선에 대해서도 예타를 면제해달라는 요구가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여야는 부산·울산·경남 주요 지역을 지나는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예타 면제 철도사업 법안이 이미 다수 발의돼있다.

25일 오후 대구 서구 이현동 서대구역에서 승객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예타 면제 법안이 국토 균형발전이나 지역 필수시설 때문이 아닌 지역 표심 때문에 남발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김포 5호선 연장과 충남 아산 경찰병원 건립 예타 면제 법안이 달빛철도에 이어 추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대구·광주 다음은 충청


특별법을 통해 예타가 면제될 때마다 여야의 합심이 배경이 됐다. 시작은 가덕도신공항이다. 2021년 2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예타 면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4월엔 예타 없이 대구·경북 신공항을 건설하고 광주의 군 공항을 이전하는 특별법이 각각 여야 의원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12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수도권과 충남 지역은 여야 의원이 함께 포진하고 있다,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다 보니 여야 할 것 없이 찬성표를 던진 달빛고속철과 공통점이 있다. 충남 아산에 경찰병원을 짓는 데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 보건법 개정안’은 지난해 9월과 10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잇따라 발의했다. 발의한 정당은 다른데 내용은 동일하다. 법안 제안자로는 아산을 지역구로 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과 강훈식 민주당 의원이 각각 포함됐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버리니 정부 입장에서도 방법이 없을 것”이라며 “예타 면제법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국민이 낸 세금을 쓰는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꼬집었다. “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의원이나 정당이 호응을 받는 게 아니라 여론에 의해 걸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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