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료과실 피의자 불러 건강강좌…시흥경찰서장 "제 불찰"
현직 경찰서장이 의료과실 사건 피의자로 조사 중이던 의사를 경찰서로 초청해 건강강좌를 연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경기 시흥경찰서 등에 따르면, 2022년 11월 경기도 시흥의 한 정형외과에서 인공관절 교체수술을 받은 성모(80·여)씨는 열흘 뒤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성씨 측은 지난해 3월 “의료진의 수술 후 부적절한 의약품 투여로 뇌경색이 유발됐다”며 병원 원장 A씨 등을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시흥서에 고소했다. 시흥서는 지난달 29일 “처방 약물의 단기간 사용으로 뇌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원장 A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시흥경찰서가 수사를 종결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A씨를 초청해 건강강좌를 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경찰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피의자 신분인 A씨가 수사를 받는 경찰서에서 강연하는 게 수사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당시 강연에는 김모 시흥서장도 참석했다. 건강강좌 후반부에는 “시흥경찰서장님의 건강 꿀팁 ‘숟가락주(酒)’ 전격 공개!”라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띄우기도 했다.
성씨의 아들 전모(53)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도 “고소인이 있는 상황에서 왜 저런 강좌를 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강강좌는 지난해 9월 김 서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갓 부임한 김 서장과 시흥시의사회가 인사차 만난 자리에서 김 서장 제안을 받아들여 내과 3명, 정형외과 1명 등 의사 4명이 나흘간 건강강좌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A씨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한다. 같은 달 김 서장은 A씨 등을 포함한 시흥시 의사회 관계자들과 간담회 성격의 술자리도 가졌다.
김 서장은 24일 중앙일보와 만나 “강좌 이틀 전 의료사고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공문을 받았다. 중재원의 판단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문제가 없다고 봤고, 갑자기 취소하기도 곤란해 그대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A씨와 사건 관련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강좌 등과 무혐의 처분은 별개”라면서도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라고 했다.
A씨 측도 “시흥시의사회 간담회에서 김모 서장을 처음 만났다. 개별적으로 사건을 청탁할 명분과 실이익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경색은 병원에서 시행한 수술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숟가락주(酒)와 관련해서도 “건강강좌 마지막 부분에 분위기 전환용으로 PPT에 삽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근·이찬규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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