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낸 아이유, '러브 윈즈 올' 뮤비 이건 아쉽다
[이진민 기자]
혐오는 감정이 아니다. 맥락이다. 누가 혐오를 당하는지, 그리고 누가 혐오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다면 사회에 흐르는 혐오의 거대한 역학을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미움이라 정의하기에 혐오는 개인이 겪는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 차별과 배제, 한 사람의 존재성을 삭제하는 데 이른다. '극혐(극도로 혐오한다의 줄임말)'이란 표현이 쉽게 쓰이는 시대지만, 언어로서 쉽게 발화된다고 그 무게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대혐오의 시대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에서 한 아티스트가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의미의 앨범명 < Love wins all >을 발표한 아이유가 시대성을 이야기한다는 건 반갑지만,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다.
과연 그가 사랑으로 이겨내려 애쓰는 혐오란 무엇인가. 그가 말하는 사랑의 진원지이자 혐오의 반대편은 어디일까.
▲ 아이유의 < Love wills all > 뮤직비디오 한 장면. |
ⓒ 유튜브 이지금 |
▲ 아이유의 < Love wills all > 뮤직비디오 한 장면. |
ⓒ 아이유 이지금 |
24일 발매된 아이유의 < Love wins all > 뮤직비디오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이 연출했다. 뮤비 공개와 함께 소속사 측은 엄태화 감독으로부터 받은 해석 가이드 및 짧은 인터뷰를 통해 '네모', '캠코더', '주인공들의 모습' 등 제작 의도를 밝혔다. 여기서 엄 감독은 "세계관 자체가 현실과 달리 이질적이고 추상적인 설정인 만큼 뮤직비디오에 대한 여러 시각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 역시 환영한다"고 밝혔다.
뮤직비디오에는 디스토피아 속 연인이 등장한다. 입술에 피어싱이 걸린 여성(아이유 분)은 수화를 사용하고, 그의 연인으로 등장한 남성(BTS 뷔 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오드아이를 가졌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연인은 정체 모를 '네모'에 쫓기기 바쁘다. 그러다 발견한 캠코더, 그 속에는 폐허가 된 현실과 다른 유토피아가 있다.
캠코더를 통해 바라본 서로의 모습에는 장애가 없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여성은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며, 남성은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게다가 현실 속 자신들을 괴롭히는 낯선 이들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그들은 깨끗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사랑을 즐기지만, 결국 자신들을 쫓아온 '네모'에 이끌려 저항에 실패한 채 무력하게 어딘가로 사라지게 된다.
뮤직비디오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디스토피아를 구축한다. 연인이 바라본 산더미처럼 쌓인 옷 무덤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Reserve: Canada(저장소: 캐나다)>를 연상시킨다. 그는 유대인으로 나치에서 해방된 직후 유년기를 경험하였고 작품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학살과 차별을 이야기했다. 극적인 상황을 가정한 뮤직비디오에는 비극을 심화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건 '장애'에 대한 은유다.
장애를 가진 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던 걸까. 캠코더가 분쇄한 건 그들을 괴롭히는 '네모'나 '복면 쓴 사람들'이 아닌 그들의 장애였다. 장애를 가진 채 무언가에 쫓기는 디스토피아와 장애 없이 사랑을 나누는 유토피아를 교차하는 < Love wins all >의 세계관에서 장애란 그들을 막아서며, 동시에 상상을 통해 넘어서야 하는 장벽이 된다.
장애는 누군가의 정체성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디스토피아 속 연인이 겪는 어려움'으로 치환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신중한 묘사보다 그저 연인이 처한 비극성을 심화시키기 위한 극적 수단으로 쓰인 게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가상 세계 속 연인의 비극성을 더하기 위한 요소가 되기엔 장애는 누군가의 삶이자 혐오의 시대에서 가장 손가락질 받는 정체성이 아니던가.
SF가 상상하는 '혐오 없는 장애인의 삶'
일종의 SF물인 < Love wins all > 뮤직비디오처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는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존에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식의 스토리가 주를 이뤘으나, 이젠 장애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
소설 <천 개의 파랑> 속 캐릭터 은혜는 장애인이다. 모두가 첨단 수술을 통해 장애를 해결하는 세상 속에 은혜만이 휠체어를 탄다. 애초에 은혜는 휠체어 덕분에 움직이게 된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에 맞춰진 버스와 지하철, 인도,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은혜의 장애에 발맞추지 않고 "첨단 수술을 하면 해결될 것"이라 말한다.
그에게 필요한 건 기계 다리 부착 수술이나 낯선 이의 호의가 아니다.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리프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 탈 수 있는 안전함이 필요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라는 은혜의 말과 달리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은혜를 불쌍하게 여기며 그를 향한 차별을 없애기보다 기술의 발전만을 기다린다.
책 <사이보그가 되다> 또한 장애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닌 장애와 함께하는 포용적인 삶을 상상한다. 책은 장애를 다루는 대중매체와 광고 속 이미지를 분석하여 과학적 기술이 장애인에게 '정상성'을 선물하고 이에 기뻐하는 식의 상상은 현실 속 진짜 문제를 유예한다고 이야기한다. 완벽한 과학 기술은 결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사회 참여를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을 향한 혐오는 기술이 아닌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문화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로 시작한 앨범의 소개문 |
ⓒ X(_IUofficial) |
아이유의 < Love wills all >의 원제는 < Love wins >였다. 하지만 'Love wins'는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대표적인 슬로건 문구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법제화 판결과 2016년 올랜드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 때 널리 쓰인 이 문구와 관련해 소수자 언어 점용 논란이 일었고, 이를 인지한 아이유는 "발매될 곡에 담은 메시지와 가장 반대되는 지점의 말이 있다면 그건 '혐오'일 것"이라는 입장문과 함께 제목을 정정했다.
혐오의 반대 지점을 이야기하려면 혐오부터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왜 혐오가 발생하는지, 이 시대에 가장 많은 혐오를 당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논하지 않는다면 '사랑으로 혐오를 덮자'는 메시지는 색을 잃게 된다. 우리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는 혐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이를 사랑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사랑이 지닌 힘을 무력하게 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상 없는 일방향적 사랑은 혐오를 이겨내려는 이들에게 가닿지 않을 거란 염려다.
아이유는 그냥 가수가 아니다. 시대의 아이콘이다. 미국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현대 음악산업 그 자체'라 평가되듯 우리에게 아이유가 현대 음악과 시대를 짊어진, 모두를 위한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만큼 혐오로 오염된 세상에 대한 아티스트의 적확한 진단이며 어려운 도전일지 모른다. 하지만 혐오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없다면 이를 사랑으로 이겨내자는 선의가 명확한 울림을 낼 수 있을까. 그의 사랑 예찬에 애정 섞인 우려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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