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회당서 이슬람 기도 소리가…UAE가 '관용부' 둔 까닭

이유정 2024. 1. 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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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의 종교적 관용을 상징하는 아부다비의 ‘아브라함 가족의 집’ 전경. 왼쪽부터 유대교의 시나고그, 이슬람교의 모스크, 천주교의 성당. 아부다비 미디어오피스 제공

걸프만의 아랍 맹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한복판에 위치한 ‘아브라함 가족의 집’. 이곳은 이슬람·천주교·유대교의 예배당이 한 공간에 있는 장소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방문한 가족의 집에서는 UAE 여성들이 이슬람교도들의 전통 복식인 샤일라(머릿 수건)와 발목까지 오는 검은 아바야를 입고 삼삼오오 모스크로 향했다. 그 사이 유대교 회당 안에서는 유럽에서 온 관광객 두어 명이 신기한 듯 스마트폰의 촬영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오후 3시쯤 이슬람 교도들의 정례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래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불과 수백m 떨어진 유대교 회당 안에 들어가보니 거기서도 은은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불안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중동 정세와는 딴판인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가족의 집은 UAE의 무하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관용과 사회 융합을 모토로 왕세제 시절인 2019년 건립을 시작해 작년 2월 대중에 공개됐다. 한국 언론에 취재가 허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 3대 종교 시설은 동일한 높이와 크기, 재질로 설계됐다. “서로 다른 종교라도 어떠한 위계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각 예배당 앞 석판에는 아랍어와 영어, 히브리어로 적힌 안내문이 단단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모스크는 메카, 성당은 동쪽, 시나고그는 예루살렘 방향을 향해 지어졌다고 한다.

가족의 집은 이슬람교 중심의 왕정 국가임에도 관용과 개방성을 중시하는 UAE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UAE 내 900만 거주자의 85~90%는 외국인이다. 최대 15%에 불과한 자국민이 충당하지 못 하는 노동 시장을 외국인들에게 개방해 다층적인 경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로 향하는 길. ‘관용의 길’이라고 적혀 있다. 아부다비 미디어오피스 제공.


인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아시아 근로자들은 ‘UAE 드림’을 꿈꾸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제공하고,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서 유입된 의사·엔지니어 등 고숙련 노동자들이 금융·첨단 기술·서비스 산업을 맡는 식이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다보니 사회는 자연스레 ‘종교적 멜팅팟’이 됐다. 정부는 이질적인 외국인들 간의 융화를 사회 안정을 위한 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 정부 부처 가운데 ‘관용·공존(Tolerance and Coexistence)부’를 둬서 사회 갈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아부다비의 최대 이슬람 종교 시설인 그랜드 모스크의 입구를 ‘관용의 길’이라고 명명한 게 대표적이다.

연장선상에서 UAE는 향후 경제 모델도 개방성과 융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중앙일보가 9~11일 아부다비에서 만난 UAE 정부 산하 기관의 고위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한 내용이다.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위원회 사무총장은 “UAE에서 협력은 말 뿐인 관행이 아니라, 우리의 DNA에 내재된 특징”이라고 했고, 아부다비 투자친흥청의 마시모 팔치오니 최고 경쟁력 책임자는 “세계의 장벽 없는 무역과 개방 경제를 지지하는 게 UAE의 오랜 철학”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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