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확대될까? 반군들이 무력 시위에 나선 진짜 이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2024. 1. 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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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경찰국가 미국이 사라진 세계의 새로운 외교 모델은

[임상훈 기자]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 도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전쟁의 직접적 영향권이 두 교전국에 한정돼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불안정한 지역 정세가 모든 중동 국가들을 지정학적 소용돌이로 내몰고 있는 듯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신냉전이 거론됐던 것은 동서가 다시 양대 진영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구시대의 귀환'을 다시 보게 되나 싶은 모양새랄까. 반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 분쟁의 근저에는 다극화 시대의 지정학적 특징들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동 갈등의 두 축, 이스라엘과 이란

이스라엘 정부는 인질 구출에 더 성의를 보이라는 국내에서의 압박과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받고 있다. 강한 군사적 압박이 곧 협상력이라는 정부의 입장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따라서 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대 가장 강경한 극우로 평가받는 현 이스라엘 내각은 소수의 극단적 시온주의자들이 연정 파기를 인질 삼아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강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현 시국 앞에서 극우 각료들의 강경 대응 요구에 이끌려 가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반대로 전쟁 중단을 위한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협상과 강경 대응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스라엘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는 것이 이란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고있는 이란은 고립에 저항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으로 역내 질서 교란작전을 구사한다. 그리고 그 맞춤형 상대가 이스라엘이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정부, 준정부 세력들은 이스라엘을 제물 삼아 국제사회를 상대로 협상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모식이 열린 3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에서 사람들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TV 연설을 보고 있다. 이날 나스랄라는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외곽을 폭격해 하마스 고위 인사가 숨진 것과 관련해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때맞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를, 후티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화물선을 대상으로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공격 포인트' 표현이 경박하게 들린다면 필자의 의도가 전달된 셈이다. 이란은 물론 헤즈볼라도, 후티 반군도, 심지어 하마스도 전쟁을 일으킬 의사는 애당초 없었다. 이들은 '관심팔이'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유린한 하마스가 전쟁 의사가 없다니! 발끈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에겐 전쟁 의사가 없었다. 다만 그들의 오판에 의한 반인륜적 행위가 필연적으로 전쟁을 유발했고, 결국 전쟁의 책임이 그들에게도 있는 것뿐이다. 그들이 전쟁 의사가 없다고 해서 전범 혐의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7일,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지휘체계의 이상 작동으로 인해 난동이 벌어졌고,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뿐 아니라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도덕적,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문제와 정치적, 전략적 배경을 판단하는 문제는 냉정하게 구분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마스의 극단적 도발과 그로 인한 전쟁 발발은 역설적으로 중동의 전쟁 가능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치 않은 고삐 풀린 난동으로 전쟁을 유발한 하마스로 인해 이란과 그 동맹세력들은 극도로 '절제된 도발'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을 워싱턴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미국은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거두고 정확한 목적지점에 집중하는 '외과수술적 작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친이란 반군들의 도발에 대해서는 신중한 대응과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직접 이스라엘과 미국을 겨누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동 갈등의 두 중재 세력, 아랍과 서방

이란은 최근 들어 우라늄 생산을 크게 늘렸다. 이에 전 세계 언론들도 일제히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생산이 무기화가 가능한 선을 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전쟁 준비가 아닌 무력시위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이 표면 위로 노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란과 동맹 반군들의 도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 극우 내각은 앞서 말했듯 역내 두 국가(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보장이 불가능해지는 순간까지 팔레스타인을 내몰 것이며, 이를 위한 이란과 동맹세력들과의 충돌도 불사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대응 태도에서도 연유하지만 미국의 역할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도 한몫한다. 그리고 미국이 내려놓은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중동과 유럽연합이다.

이집트와 카타르는 중동 아랍국가들 가운데 특히 현 분쟁 상황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지난해 말, 두 나라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 유럽연합에 자신들이 작성한 이스라엘-하마스 종전 협상안을 전달하면서 수용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 협상안에는 휴전과 인질 석방 - 과도 내각 구성과 총선 - 새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 구성이라는 큰 틀의 계획이 포함돼 있다. 과도 내각에 하마스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문제에 이견은 있지만 큰 틀에서 이스라엘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가 22일(현지시간) EU 외무장관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보렐 대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모두 인정하자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주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럽연합은 22일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를 열어 팔레스타인 분쟁을 논의했다. 27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다시 한번 '두 국가 체제론'을 내세우며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1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구체적 방식이 제시됐고 이 계획에 따르면 1년 이내에 평화계획의 틀을 마련할 국제회의가 조직될 예정이다.

특히 유럽연합의 외교장관 격인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은 하마스를 뿌리 뽑는 대신 보복 공격을 유발"해 "여러 세대 걸쳐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며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앞서 지난주에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온건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약화시키기 위해 하마스를 지원해 왔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흔히 다극화 세계에서의 분쟁은 복잡하게 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쉽게 운명적 파국으로 가지도 않는다. 물론 다자외교 주역들이 제 몫을 행할 경우의 이야기다. 외교와 소통의 기술이 다극화 세계에서 더 중요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능하면 전쟁을 억제해야 하고, 적어도 전쟁의 확산은 막아야 하는 것이 외교의 최후 보루 아닌가.

현재의 중동 상황을 둘러싼 최종 목표는 전쟁의 확산 방지다. 그리고 그 앞의 현실적 물음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이다.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한 물밑 움직임들이 활발하다는 것은 희망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들은 경찰국가 미국이 사라진 세계의 새로운 외교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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