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서 웃은 이상민 장관에겐 무슨 일이 생길까?
[이종범 기자]
▲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과 함께 큰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을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현장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다. 명절을 앞두고 시장 내 상가 대부분이 전소돼 수백 명의 상인이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안타까운 상황이라, 그의 처신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 장관 등 정부 당국자가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천특화시장을 방문할 당시 찍은 사진 한 장이 퍼졌다. 사진 속에서 이 장관은 대통령을 보고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국민의 안전을 관리한다는 (행안부 장관이) 직업적 사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바로 옆에 전 재산과 생계 수단을 다 날린 사람들이 있는데 손뼉을 치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저 사진은 대통령의 전격 방문과 사후 조치에 감사하는 상인들과 정부 인사가 함께 박수치는 장면이었다"며 지나친 비판을 경계하는 반응도 나왔다. - <국민일보> "너무 밝게 웃었네"… 행안부 장관 표정 '갑론을박'
그렇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니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름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이미 이태원 참사 등으로 탄핵의 심판대에 올랐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늘 몸가짐을 진중히 해야 마땅한데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이 건을 가지고 이 장관을 크게 질책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늘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을 떄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은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 뒤흔든 정치인의 부적절한 웃음
독일에서도 매우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2021년 7월 독일 아르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그 주변 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가 그 재난 현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는 당시 9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여당을 이끄는 기민당 소속 수상 후보였던 아르민 라셰트도 대통령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재난을 당한 주민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뒤에서 측근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그는 파안대소했고 기자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이 사진은 그해의 독일 최고의 보도 사진이 되었다.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이어 기민당 당수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모두가 기대했던 아르민 라셰트는 국민의 엄청난 질타를 받고 결국 총선에서 패배하여 권좌에서 밀려났다.
단 한 번의 웃음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지만 또한 그것이 독일 국민 정치의식의 수준이었다. 국민의 아픔을 앞에 두고 웃는 정치가는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기에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심판은 바로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
그 해 9월 26일 치러진 제20대 연방의회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은 야당인 사민당(SPD)에 16년 만에 패했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진보적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보수 색채가 강한 자민당을 끌어들여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수립하여 메르켈 총리가 16년 동안 집권한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마침내 권력을 잡게 되었다.
가뜩이나 보수 정치에 염증이 나서 정권 교체를 바라지만 딱히 현 정권을 반대할 만한 결정적 이유를 모르던 독일 국민의 마음에 아르민 라셰트의 파안대소가 불을 지른 것은 분명했고 그 대가는 '정권 교체'라는 혹독한 것이었다. 그 웃음 사달이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발생했기에 인과 관계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총선 기간 내내 모든 독일 국민의 뇌리에 그의 웃음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잊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80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자리에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웃었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일이었다.
경솔한 웃음 보인 독일 정치인의 최후
그렇다면 도대체 아르민 라셰트는 많은 국민이 재난에 고통스러워하는 현장에서 왜 파안대소를 한 것일까? 이 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알아보자.
앞서 언급했듯 아르민 라셰트가 웃고 있던 시점은 피해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이 '커다란 손실을 본 이들'(diejenigen, die große Verluste erlitten haben)에 관해 말하던 때였다. 그가 왜 웃었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사진이 찍혔고 바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WDR 텔레비전 방송은 해당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Uns liegt das Schicksal der Betroffenen am Herzen, von dem wir in vielen Gesprächen gehört haben ... Umso mehr bedauere ich den Eindruck, der durch eine Gesprächssituation entstanden ist. Dies war unpassend, und es tut mir leid."
"재난을 당한 분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가슴이 아픕니다. 이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이며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해 9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 사진은 계속 아르민 라셰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대체 왜 웃었느냐는 질문이 수없이 쏟아졌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아르민 라셰트는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평판이 좋은 정치가였다. 그리고 16년 동안 권좌에 머물다가 독일 정치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스스로 물러난 총리인 메르텔의 후계자로 독일 보수 진영을 이끌 강력한 차기 주자였다. 그런 그가 이런 사달로 권력을 눈앞에 두고 1.6%p 차이로 미끄러져 회생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이번 재난 현장 웃음 이외에도 이태원 참사 등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지만, 아직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 대한민국에선 용인되는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개인적 견해를 덧붙이자면, 부패하고 무책임하고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가는 국민의 이름으로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선진국은 정치가가 아니라 국민들이 만들 수 있다. 깨어 있는 국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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