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50억' 한국 코미디 영화, 상상 이상의 결말
[양형석 기자]
현대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이는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약 15~20년이 지난 영화를 다시 보면 최신영화들에 비해 화면이 꽤나 촌스럽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영화들이 모두 '옛날영화' 취급을 받으면서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옛날영화는 '고전' 또는 '명작'으로 불리면서 오랜 세월 동안 관객들에게 꾸준히 회자된다.
1972년부터 1990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된 <대부> 3부작은 범죄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대부>는 이탈리아계 거대 범죄조직 콜레오네 가문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대부>는 묵직한 스토리와 연출, 고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등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웅장한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라스트 갓파더>는 국내 231만 관객에도 150억 원에 달했던 제작비를 채우긴 역부족이었다. |
ⓒ CJ ENM |
작품 가리지 않는 다작 연기파 배우
루마니아인 어머니와 폴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하비 케이틀은 배우로 데뷔하기 전, 해병대에 입대해 레바논에 파병됐고 제대 후에는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케이틀은 1968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나>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그리고 케이틀이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은 바로 1973년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였다.
케이틀은 <비열한 거리>에서 비슷한 또래의 로버트 드니로와 연기호흡을 맞췄는데 이 작품을 통해 친분을 쌓은 스콜세지 감독과 드니로, 케이틀은 1976년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 1980년대 약간의 과도기를 보낸 케이틀은 1990년대 초반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시스터 액트> 등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이 과거 영화잡지에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선정했던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배드 캅>과 19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는 케이틀 최고의 연기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펄프픽션> <스모크> <율리시즈의 시선>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케이틀은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황혼에서 새벽까지> <레드 드래곤> <내셔널 트레저>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영화팬들로부터 연기 잘하는 대표적인 배우로 알려졌던 케이틀이기에 2010년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 출연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케이틀은 젊은 시절 한국여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아들 영구를 낳은 마피아 보스 돈 카리니를 연기했고 '심형래 감독은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물론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에 대한 케이틀의 다소 과장된 칭찬을 그대로 믿는 영화팬들은 많지 않았다.
일부 연기파 배우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생각해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는 것과 달리 케이틀은 70대가 된 2010년대까지 TV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를 가리지 않고 다작을 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케이틀은 강렬한 인상 때문에 범죄자 전문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워낙 연기의 폭이 넓어 어떤 배역을 맡아도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낸다. 케이틀은 지난 2019년 오랜 친구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에 특별 출연했다.
▲ 하비 케이틀(왼쪽)의 카리스마와 심형래의 바보연기만으로는 글로벌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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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갓파더>는 '<대부>의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 분)가 한국에 왔다가 불륜을 저질러 남긴 자식이 영구였고 세월이 흘러 영구가 마피아 후계자로 지목되는 영화'라는 초기 설정이 있었다. 심형래 감독은 말론 브란도의 생전모습을 CG로 재현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대부>의 판권과 브란도의 초상권을 대여하지 못하면서 '1960년대 뉴욕 마피아 보스의 숨겨진 자식이 영구'라는 설정으로 살짝 바뀌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라스트 갓파더>는 심형래의 감독 커리어를 무기한 중단시킨 영화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 1992년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를 시작으로 <티라노의 발톱> <파워킹> <드래곤 투카> <용가리> <디워>까지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던 심형래 감독은 <라스트 갓파더>를 끝으로 2023년까지 단 하나의 장편영화도 선보이지 못했다(물론 <디워2>와 <추억의 붕어빵> 등 소문만 무성했던 작품들은 꽤 있었다).
<라스트 갓파더>에서 보여준 코미디의 대부분은 심형래 감독이 1980년대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슬랩스틱 코미디'가 중심이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슬랩스틱을 위주로 한 바보연기는 이미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장르였다. 물론 본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본인에게 큰 성공을 안겼던 장르로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심형래 감독의 용기는 제법 대견(?)했지만 세계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사실 <라스트 갓파더>의 스토리는 뻔하고 단순하지만 코미디 영화로서는 꽤 흥미로운 편이다. 어둡고 비정한 마피아 세계에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영구(심형래 분)가 후계자로 들어가 특유의 순수함을 통해 원수처럼 지내던 두 조직을 화합시킨다는 내용과 결말은 충분히 교훈적이면서도 흥미롭다. 하지만 <라스트 갓파더>는 충분히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는 설정과 스토리를 지나치게 유치하게 풀어내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라스트 갓파더>는 북미 현지에서 단 58개관에서 제한상영을 시작해 16만 달러의 성적을 남기고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다만 국내에서는 2010년 연말에 개봉해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기는 등 최종 23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의외로 선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라스트 갓파더>는 한국의 조폭 코미디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1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면서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 조셀린 도나휴는 영국의 순수함에 반하는 앙숙조직의 딸 낸시를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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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앙숙 조직(또는 기업, 집안)의 대결과 갈등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두 집안의 아들과 딸이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라스트 갓파더>에서도 카리니파의 숙적 본판테파의 외동딸 낸시가 영구의 순수함에 호감을 가지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흘러간다. 낸시를 연기한 조셀린 도나휴는 <라스트 갓파더> 이후 제임스 완 감독의 <인시디언스: 두 번째 집>과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등에 출연했다.
지난 2001년 <운명 같은 사랑>으로 베로나 로맨틱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리스폴리가 연기한 토니는 보스의 은퇴소식에 내심 기대를 하다가 영구의 등장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카리니파의 2인자다. 일반적인 마피아 영화의 2인자라면 '낙하산' 영구의 갑작스런 등장에 앙심을 품고 보스를 배신하겠지만 카리니의 '충신' 토니는 영구의 후계자 교육까지 맡아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후계자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낸시의 아버지이자 카리니파의 숙적 본판테파를 이끄는 보스 돈 본판테(존 폴리토 분)는 카리니파와 뉴욕을 양분하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지만 오른팔 비니의 권모술수에 카리니파와의 전면전을 선택한다. 비니는 낸시를 납치하고 이를 영구에게 뒤집어 씌우는 <라스트 갓파더>의 빌런으로 영구와의 대결에서 패하며 목숨을 잃는다. 비니를 연기한 제이슨 미웨스는 1994년과 2006년에 개봉한 케빈 스미스 감독의 <점원들 1, 2>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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