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가 달라졌다…마동석→홍상수 6편 ‘초청 러시’ [홍종선의 연예단상㊲]
오컬트·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화들 러브콜
미국 출신 영국 활동 영화인, 새 집행위원장에 지명된 영향?
일흔네 살이나 먹은 베를린국제영화제가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칸·베니스 국제영화제와 더불어 3대 세계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국제영화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에게는 칸국제영화제의 존재감이 가장 큰 게 사실이다. 해마다 어떤 영화들이 칸의 초청을 받았는지 보도가 이어지고,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 대대적 기대 속에 수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임권택 감독이 씨를 뿌리고, 박찬욱·이창동 등 유수의 감독들이 농사짓고, 봉준호 감독이 드디어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확하는 쾌거가 이뤄진 뒤에는 더욱 애착이 가는 국제영화제가 됐다.
2024년 1월, 칸이 예열되지도 전에 유럽영화제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베를린에서다.
사실 베를린국제영화제라고 하면, 일찌감치 1961년 제11회 때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특별은곰상을 받은 뒤 32년이 지나서야 1993년 제43회에서 장선우 감독이 ‘화엄경’으로 지금은 폐지된 알프레드 바우어상(은곰상 중 하나)을 받을 만큼 인연이 적었다.
2004년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고 이듬해 임권택 감독이 명예황금곰상, 2007년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에 호명됐다.
최근에는 ‘베를린영화제=홍상수·김민희’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두 사람이 공식 석상에 동행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국제무대였고, 수상 소식도 연이었다. 홍상수 연출, 김민희 주연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2017년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김민희에게 은곰상(2020년 폐지된 주·조연 구분 없이 수여한 여자배우상, 현재는 성별 구분 없이 주연상·조연상 수여)을 안겼다. ‘도망친 여자’(2020, 은곰상 감독상), ‘인트로덕션’(2021, 은곰상 각본상), ‘소설가의 영화’(2022, 은곰상 심사위원대상)로 3년 연속 수상하면서 등식은 강화됐다.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베를린발 낭보의 테이프를 끊은 것은 마동석이다. 시리즈물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범죄도시’의 4편이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시리즈 무술감독이었던 허명행의 연출 데뷔작이자 배우 마동석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가 열연한 ‘범죄도시4’는 쌍천만 흥행을 이룬 시리즈물답게 “앢션과 코미디의 활기 넘치는 조화”라는 호평 속에 대중과의 교감도가 큰 영화가 초청되는 섹션의 부름을 받았다.
이어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신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장재현 감독(최민식·유해진·김고은·이도현 주연)의 ‘파묘’가 독창적이고 도전적 색채를 지닌 작품을 소개하는 포럼 부문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영화제 측은 “풍부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할 작품”, “장재현 감독은 의심할 여지 없이 놀라운 연출가이며 배우들 역시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는 극찬으로 초청 사유를 밝혔다.
베를린행 열차에 처음 오른 감독이 더 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연출한 김혜영 감독의 영화 데뷔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이레·진서연·정수빈·손석구·이정하 주연)가 제너레이션 K플러스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성장, 가족, 사회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을 상영하는 제너레이션 섹션은 전체관람가 K플러스와 14세 이상 관람가 14플러스로 나뉘는데, 이중 전체관람가 부문에서 소개된다.
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폭 및 강제 동원·노역 등의 피해를 본 조선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박수남 감독의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포럼 스페셜 부문에 초청됐다. 사회·예술적 담론과 미학 등을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섹션이다.
베를린의 단골 감독들도 러브콜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으로 베를린에 초청됐던 정유미 감독이 애니메이션 ‘서클’로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74년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역사상 애니메이션으로 4번의 초청을 받은 연출자는 정유미 감독이 유일하다.
그리고 또 한 명, 올해의 마지막 초청은 베를린이 사랑하는 홍상수였다. 홍상수 감독이 연출하고 김민희가 제작실장으로 참여한 ‘여행자의 필요’가 스무 편의 영화가 엄선된 본선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밤과 낮’(2008) 이후 7번째, 2020년 ‘도망친 여자’로 시작해 지난해 ‘물 안에서’에 이어 5년 연속 초청이다. 경쟁 부문에는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서스펜디드 타임’, 멕시코 알론소 루이스팔라시오스 감독의 ‘라 콘치나’,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젠 감독의 ‘프롬 힐데 위드 러브’ 등도 올랐다.
앞서 언급했던 홍상수 감독의 2020~22년 3연속 수상이 지난해 멈춘 가운데 올해 다시 수상할지, 은곰상 트로피를 4번이나 받은 만큼 이번에는 최고상인 황금곰상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일 최고상을 받는다면, 지난 2010년 제60회 때 박찬욱·박찬경 감독 형제가 ‘파란만장’으로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거머쥔 데 이어 장편영화로는 첫 수상이다.
모두 6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물론 K-무비가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점차 세계영화의 중심부로 나아간 결과지만, 영화제 내부 지각 변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베를린영화제를 지켜온 두 공동집행위원장 마리에테 리센벡과 카를로 카트리안 2인 체제가 끝나고 새 집행위원장이 지난해11월 지명됐다. 영국 필름아카데미나 런던영화제 등 주로 영국에서 활동해 온 미국 출신의 트리시아 터틀이다. 25년 경력의 베테랑 영화인은 영화 프로그래밍이라는 예술적 측면뿐 아니라 재정 확대를 위한 스폰서 확보와 마케팅 부문까지 총괄한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미국 영화계와의 두터운 네트워크가 터틀이 베를린 집행위원장으로 뽑히는 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트리안 예술감독은 사의를 표명했다.
공식적으로는 내년 제75회부터의 집행위원장이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된 인상이다. 작가주의 영화나 단골 감독들의 기존 주류에 신인 감독들과 유명 배우들의 영화를 약진시켜 신구의 조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측이 희망하듯 영어권 국가 새 집행위원장의 영입이 예산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고 할리우드의 화려함을 이식시켜 명실상부한 세계 3대 영화제로서의 명성을 부활시킬지 궁금하다.
더욱 궁금한 건 이 변화가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영화 산업에 긍정의 새바람이 될 것인가 인데, 마동석으로 시작해 홍상수까지 이어지는 ‘초청 러시’가 기분 좋은 신호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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