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시민 되려면
행동은 그렇지 않은 정치인
우리 국민은 머슴에 대해
과연 주인 노릇 잘하고 있나
선거일에 한 표 행사만으론
현명한 주인 노릇 어려워
더 능동적으로 참여·감시하며
행동하는 시민이 돼야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데 4월 총선에서 어떤 꽃이 필지 심히 걱정이다. 선거가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선거제도뿐 아니라 참여하는 정당과 선거 이슈까지 어느 하나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선거제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구 의원은 예전같이 253명을 유지하기로 했으나 비례대표 47명을 어떻게 선출할지에 대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병립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가운데 어떤 게 유리할지 계산하기에 바쁘다. 물론 이 계산에 국민의 요구나 이익 같은 변수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4월 총선에서 어떤 정당이 경쟁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제3지대 신당들이 어떤 형태로 선거에 참여할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준석의 개혁신당, 이낙연의 새로운 미래, 민주당 탈당파의 미래대연합, 금태섭의 새로운 선택 등 과거 어느 선거보다 많은 신당이 한꺼번에 출현했다. 빅텐트 아래 선거연합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의 차이가 커 통합이 쉽지 않아 보인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 여부에 따라 신당들의 선택지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들의 선택에도 국민의 희망이나 이익은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
유권자에게 선택의 기준이 될 선거 이슈나 공약도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과 유권자 모두 선거제도와 제3지대 신당 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가 지역을 다니며 이런저런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정당과 언론 모두 이번 총선 구도를 국정 견제론, 국정 지지론 그리고 양당제 혁파론 간의 경쟁으로 인식한다. 어느 세력이 더 많은 국회 권력을 가질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선거 결과로 국민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국민이 잘나야 합니다. 국민이 현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무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민족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 사회, 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김대중의 말’에 담긴 내용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국민이 나서야만 그 꽃을 피울 수 있다. 모든 정치인이 스스로 국민의 머슴임을 자처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정치인은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 탓이 크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은 머슴에 대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국민이 되려면 대중이 아닌 시민이어야 한다. 대중은 소란을 일으키나 시민은 심사숙고하고, 대중은 수동적으로 대응하나 시민은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대중은 충돌하고 대립하나 시민은 참여하고 희생한다. 민주주의 이론가 벤저민 바버의 말이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에게 달려 있다. 주인 노릇을 하는 국민은 참여하는 시민이다. 선거일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는 참여하는 시민이라 할 수 없다. 현명하고 잘난 시민 그리고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심사숙고하고,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
선거에서 주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시민 참여의 사례를 소개한다. 영국의 ‘데모크라시 클럽’(democracyclub.org.uk)은 비당파적 자원봉사자들이 중심이 돼 운영하는 후보자 검증 사이트다. 선거 기간 동안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유권자들이 스스로 선거 공약을 제안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원봉사자들은 해당 선거구의 지역 이슈를 선별해 후보자들의 입장을 묻는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선 상세한 내용을 얻을 수 있는 관련 자료를 함께 제공한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유권자는 이러한 정보로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특정 후보자에게 질문을 했음에도 이에 대해 답하지 않을 경우 해당 후보자의 이름을 공개하고 답변을 촉구하는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때 비로소 헌법에 명시된 주권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시민에게 달려 있으며, 주인으로서 참여할 때 비로소 시민이 될 수 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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