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악플을 달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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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충격적인 해외 뉴스를 접했다.
학부생 강의 평가가 너무 안 좋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노벨상 수상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이해할 역량에 이르지 못한 학생에게 '강의 잘하는가'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익명으로 평가하게 하고는 그 결과에 교수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정당할까.
이런 충격적 방식으로 대학에서 시행하는 강의 평가 제도의 문제를 고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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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충격적인 해외 뉴스를 접했다. 학부생 강의 평가가 너무 안 좋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노벨상 수상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사실 강의 평가란 제도는 학생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교수가 수업을 개선하게 돕는 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보고서와 시험으로 학생을 평가하며 월급을 받는 교수로서 자신이 평가 대상이 된다는 게 달갑지는 않다. 강의뿐 아니라 인품마저 무참히 난도질하는 제자에게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벨상 수상자 관련 기사는 타인의 평가에 얽힌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연구자로서 탁월해도 강의 전달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수십 년 갈고닦아 온 전문지식으로 큰 업적을 이룬 학자가 어린 학생의 기호에 맞지 않게 강의한다고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악평을 받아야만 할까.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이해할 역량에 이르지 못한 학생에게 ‘강의 잘하는가’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익명으로 평가하게 하고는 그 결과에 교수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정당할까.
그런데 사실 이 기사는 기자가 지어낸 이야기다. 이런 충격적 방식으로 대학에서 시행하는 강의 평가 제도의 문제를 고발한 것이다. 동시에 상대에 대한 평가가 폭력적 결과를 불러낼 수 있고 한 인간의 성취를 몇 가지 질문으로 가늠하는 것이 각 사람의 고유함을 뭉개는 획일화된 시각을 만들어내며, 타자를 평가할 권리를 가졌다는 어설픈 생각이 그의 존엄에 대한 파괴로 이어질 수 있음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웠다.
기자에게 속았다는 허탈함 뒤로 궁금증이 생겼다. 이 이야기가 가짜임에도 그토록 그럴듯하게 들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한 사람의 진가를 제대로 알려 하지 않은 채 무례하고 폭력적인 언어로 그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현대인의 삶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포털 사이트와 동영상 플랫폼, SNS에서의 댓글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매체가 됐다. 그러면서 댓글로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없이 퍼붓는 악플이 사회 문제가 됐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사람들 이목에 많이 노출된 이들은 조그만 실수나 규명되지 않은 의혹만으로도 악플 세례를 받고 괴로워한다. 심지어 일부는 악플이 할퀸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할 병이 돼 스스로 자기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한다.
악플을 다는 이들은 나름의 이유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악플이 부정적 결과를 일으킬 수 있어도 이는 표현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인이 대중의 주목을 받아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삶도 공개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자기 시간을 써서 동영상을 보고 기사를 읽은 만큼 의견을 댓글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 등이다. 이 모든 악플의 이유에는 어떤 점에서 ‘일리(一理)’가 있다. 하지만 일리는 사실의 일면만 비출 뿐이다. 자신의 일리를 진리(眞理)로 착각할 때 우리의 생각은 뻔뻔해지고 언어엔 염치가 없어지며 행동은 파괴적이 된다.
야고보서 기자는 우리가 혀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 1:9)라고 말한다.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손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저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혀로 저주할 때는 최소한 자기 얼굴을 걸고 험담을 한다지만 손가락으로 저주할 때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기에 더 치졸하고 잔인해진다. 성서가 악담을 교양과 도덕의 결핍으로만이 아니라 신앙 문제로까지 삼고 있다면, 악플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악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표현의 자유가 오용되는 현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강력히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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