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출산율 추락, 더 절박해진 사회·경제 개혁

2024. 1. 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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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달 통계청은 ‘장래 인구 추계’ 발표에서 올해 합계출산율을 0.68명(2022년 0.77명)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0.65명까지 떨어진 뒤 2026년부터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전망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 수립의 근거를 제공하는 목적이 크다. 따라서 출산율 예측치에 집착하기보다는 저출생 위기의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시급히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올해라도 출산율은 반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내후년의 반등을 보장할 수도 없다.

일각에서 저출생은 1인당 자원 배분을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19세기 인구학자인 맬서스 같은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저출생 위기 이후 도래할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만약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고 0.6~0.7명 선에 머물면 2070년 대한민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노인 인구 비중은 전체의 60%에 육박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격히 축소하는 노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 통계청 “내년 출산율 사상 최저”
‘급격 축소하는, 노인 사회’ 우려
과도한 경쟁 부작용 바로잡아야

저출산 대책, 게임은 끝났다. [일러스트=박용석]

이럴 경우 경제성장률은 0%를 유지하기도 힘들고 생산연령인구의 노인 부양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민 문호를 확대한들 이렇게 미래가 없는 나라로 누가 이민 오려고 하겠는가. 인재가 줄고 성장 역량이 식어간다면 기술 혁명을 통해 축소사회에 적응하겠다는 전략도 희망에 불과하다.

잘나가는 대한민국은 왜 지속 불가능한 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근본적 원인은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이다. 6·25전쟁 이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경쟁을 통한 효율 증진을 중시했다. 그 결과 최단기간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많은 희생을 치르고 이룬 성취였다.

그 와중에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는 성장과 기업의 가치보다 뒷전으로 밀려났다. 과도한 경쟁의 대가로 한국사회는 사교육, 수도권 집중, 젠더 갈등, 기후위기, 격차 심화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뿐인가. 한국의 청소년 행복지수, 자살률, 사회적 고립도 등 각종 삶의 질 지표는 경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낮다. 이런 문제가 고착하면서 결혼과 출산이 어려운 사회로 변했다.

경쟁의 부작용은 산업화에 성공한 선진국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하지만 서구 선진국들은 과도한 경쟁이 가족과 공동체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사회·경제 시스템을 끊임없이 보완해 왔다. 이제 한국도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사회·경제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경쟁의 부작용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저출생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 지원과 사회 변화는 턱없이 부족하다. 저출생 대응을 위한 실질적 예산 규모는 2015년 이후 정체 상태다. 가족 지출은 한국보다 출산율이 두 배 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5% 수준이다. 정부 투자, 기업 문화, 사회 인식이 선진국 평균에도 미달하는데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한강의 기적’을 이룰 때 보여준 과감한 체계 전환이 필요하다. 특단의 대책은 출산율을 기적적으로 높일 정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개혁 수준의 사회·경제 시스템 혁신을 선언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을 통해 성별 격차를 해소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없애야 한다. 사교육과 입시가 평생을 좌우하는 고리를 끊어 내고, 그린벨트를 완화해서라도 청년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가족 정책 예산을 두 배 증액하는 정도는 돼야 특단의 대책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의 성과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그 부작용을 바로 잡겠다는 결단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국가 소멸 위기와 국가 재도약 기회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4분기 출산율은 0.6명대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절박한 위기일수록 극복 방법이 더 과감해야 재도약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경제 시스템 개혁은 가족과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기회, 국가 균형발전을 이룰 기회, 복지국가로 거듭날 기회가 될 것이다. 4월 총선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도화선이 되길 희망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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