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푸드로드] 오마카세, 한우를 만나다

2024. 1. 2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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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오마카세(お任せ)’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오마카세는 ‘(셰프에게)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셰프가 오늘의 식재료로 음식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고급 초밥집에서 시작된 오마카세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데, 특정 식재료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 들어온 식재료의 ‘우연성’에서 오는 즐거움과 셰프의 다양한 조리 기법을 순차적으로 즐기는 고급 일식 코스요리로 자리 잡았다.

이 오마카세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한국인의 최애 식재료 중 하나인 ‘한우’와 결합해 ‘한우 오마카세’라는 다소 어색한 이름의 새로운 음식 장르가 되었다.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코스로 즐기는 고급 외식이다.

「 셰프에게 맡기는 미식의 즐거움
일본 버블 경제기 시작된 문화
한국인 소울푸드 한우와 결합
다양한 조리 새로운 경험 선사

푸드로드

오마카세는 일본의 전통 음식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일본에서도 꽤 최근에 유행하게 된 문화 현상이다. 일본에서 오마카세의 원형이라고 하면 흔히 수산시장 인근 식당에서 그 날 어획한 해산물로 요리해 판매하던 것을 흔히 꼽는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식문화가 있는데, 부산·통영의 어항 인근에 있는 ‘실비집’ ‘다찌집’이 그것이다. 부산 국제시장 1공구에 남아 있는 실비집에서는 아직도 술을 한 병 주문할 때마다 ‘오늘의 안주’를 하나씩 그냥 내어준다. 대부분이 수산물이고, 정해진 메뉴는 따로 없다. 우연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어항 지역 특유의 식문화다.

일본에서 오마카세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버블 경제기다. 초밥은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고급 메뉴였고 초밥집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버블 경제가 만든 유례 없는 경제 호황은 초밥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신흥 부자들의 숫자를 급격히 늘렸다. 그들은 이전에는 가기 힘들었던 고급 초밥집에 두둑한 지갑을 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생선의 이름을 잘 몰라 주문하기도 어려웠으며, 가격 생각지 않고 고급 음식과 술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셰프님께 맡기겠습니다’의 오마카세다. 오마카세는 1990년대를 지나며 초밥에서 다른 음식군으로도 확장되며 일본 내에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오마카세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6년 한일 관광 무비자 면제 이후다. 온천 중심의 단체 관광에서 젊은이들의 배낭여행으로 일본 여행 방식이 바뀌면서 도쿄 츠키치 수산시장의 초밥집 방문이 ‘성지순례’화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오마카세 방식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후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오마카세를 지향하는 일식당이 문을 열었는데 역시 해산물과 초밥 중심이었다. 고급 호텔의 일식당을 비롯해 기존에 영업 중이었던 일식 관련 선술집들도 오마카세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물 건너온 오마카세는 한국식으로 변주(變奏)된다. 한우 오마카세의 등장이다.

2014년, 부산의 ‘선정생한우’에서 한우 오마카세를 처음 메뉴화하였고, 2015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본앤브레드’가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를 표방하며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미식이란 무릇 식재료의 다름을 즐기는 것이니, 다양한 부위의 한우를 다양하게 즐긴다는 것은 돈 벌면 한우 사 먹는다는 한국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미식 경험이었을 터다. 젊은 직장인들은 인당 20만원을 거뜬히 넘기는 한우 오마카세에 열광하며, ‘열심히 돈 모아 기념일에는 한우 오마카세를 사 먹자’는 문화가 형성될 정도였다.

한우 오마카세는 매일 달라지는 제철 식재료가 아닌, 한우라는 식재료를 섬세하고 미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본디 오마카세의 의미와는 꽤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재료들과 함께 끓이거나, 불에 살짝 그을리거나, 샌드위치로 만들어 내거나 하면서 한우의 다양한 매력을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선사한다.

최근 한우 구이집 ‘벽제갈비’의 김태현 대표와 한국화한 ‘한우 오마카세’에 대해 한참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이 새로운 식문화 개념을 우리의 것으로 더욱 발전시켜 가려면 표현부터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지금 본앤브레드와 벽제갈비에서는 오마카세 대신 ‘맡김차림’이라는 표현으로 한우를 다양한 방식으로 내고 있다. 내가 주장했던 것은 위트를 섞은 ‘다주세요’였지만.

경기 불황으로 한우 오마카세, 한우 맡김차림, 한우 다주세요 식당들이 줄폐업하고 있다. 한우 가격을 내리든, 경기를 살리든 둘 중의 하나는 해내야 이를 계속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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